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는 금요일이다.
덕분에 snack box를 싸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은 늦잠을 자도 된다는 얘기건만 몸이 기억하는 생체 리듬덕에 6시에 눈을 떴다.
따뜻한 이불속에서 더 자려고 뭉그적거리며 애를 써보지만 점점 명료해지는 정신 때문에 결국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직 아이도 아이 아빠도 자고 있기 때문에 집안은 어둡고 고요하다.
제일 먼저 양치질을 하고 거실로 나와 커튼을 걷어 창밖을 본다.
새벽 6시의 폴란드 주택가는 조용하다. 멀리 몇몇 집에 불이 켜져 있고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이곳 사람들은 부지런히 일어나 일상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을 테지...
해뜨기 전의 어두컴컴한 주방에서 주섬주섬 초를 켠다.
부드럽게 다소곳이 타는 촛불은 마음도 눈도 편안하게 해 준다. 형광등보다 몇 배는 작고 약한 밝기지만 그 촛불의 에너지는 굉장하다.
차를 마시기 위해 전기포트에 물을 가득 받는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최대한 조용히 차도구를 세팅한다.
'오늘 찻잔은 이걸로.. 자사호 받침이 어디 갔더라.. 해괴해 놓은 차봉투가 이거였나.. 아! 83대숙전을 마셔보자..'
뜨겁게 부글부글 끌어 오른 물이 잠잠해지길 잠시 기다렸다가 찻잎을 넣은 자사호에 가득 붓는다.
세차한 물로 찻잔을 데우고 첫 번째 탕을 우린다.
손으로 대략 집어넣은 찻잎이 많았는지 짧은 시간에도 탕 색이 진하게 나왔다.
한입 호로록 마시니 뜨거운 차가 목에서부터 가슴을 지나 몸의 중앙을 훑고 지나간다.
두 번째, 세 번째 탕을 마시며 차가웠던 배가 데워지고 열감이 온몸에 퍼진다.
새벽 쌀쌀한 공기에 단단히 두르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낸다.
명상 어플을 켜고 명상 안내자의 음성을 듣는다.
"모든 걸음은 과정이며 그 과정을 걷는 순간이 다음 순간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내가 경험하는 일상이 조금 어렵더라도 이것이 결말이 아닌 하나의 과정이기에 우리는 감사히 그다음의 시작을 열어볼 수 있습니다.
Connecting the dot. 점을 찍어서 선을 잇는다.
결국 오늘 내가 한 일들이 그것의 크기와 상관없이 내 삶의 선을 구성하는 하나의 점이 되어줄 겁니다.
오늘 내게 하루가 주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그리고 조금 힘들더라도 그만큼 어려운 점을 겪었더라도.. 그래서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선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삶에 대한 감사는 지금 이 순간 내 발 밑에서 시작됩니다.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들에...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들에...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들에..."
출처: 도착과 마무리에 대한 감사 명상 / 안내자: 환희지
창 밖에 해가 뜨고 있다.
깜깜했던 밤하늘의 지평선 너머로 붉은빛이 강렬한 에너지를 뿜으며 올라온다.
어둠은 어느새 푸른빛으로 밝아지고 있었다.
여기 이 공간 안에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가진 것들 안에서 나는 이미 충분하고 적당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들에...
짧은 순간 뱃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던 깊은 감정은 감사함이었을까 아니면 겸손함을 넘어선 무아였을까.
오늘 나의 점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