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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ks Nov 21. 2018

[서호주] 캠핑장 이야기

서호주 여행 (4)

집이 없어도 살겠다.


잠을 잘 수 있는 차 한 대만 있으면, 호주에서는 캠핑장을 전전하면서 살 수도 있겠다-싶을 정도로 캠핑장이 잘 되어 있었다. (+ 비용은 전기를 꼽을 수 있는 캠핑카 자리 1개를 빌리는데 3인 기준으로 하룻밤에 평균 50불 정도였다.) 화장실, 샤워실도 다 잘 되어 있었고 부엌, 빨래방도 다 잘 되어 있었다. 뜨거운 물이 안 나올지도 몰라, 화장실에 휴지가 없을지도 몰라, 지저분할지도 몰라, 걱정했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딱 한 곳 빼고. 


더운 호주는, 파리가 많았다. 특히, 바람이 없고, 조개무덤이 유명한 Hemelin Pool이라는 곳에는 정말 내가 밤에 홀로 빛나는 전등인 것 마냥 파리가 꼬였다. 이놈의 파리들이 오랫만에 보는 사람이 반가운가보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려고 해도 욕이 나오게 되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마침 그곳의 캠핑장은 개발제한구역이어서 무척 시설이 좋지 않았다.


사진으로는 티가 안나서 억울하네!


예약하려고 전화했을 때 주인아줌마가 "물이 좋지 않으니, 직접 가져오세요."라고 해준 말을 듣고도, 물이 안 좋으면 뭐 수돗물 받아서 끓여먹지-라고 쉽게 생각한게 잘못이었다. 그 곳은 약간 노리끼리한, 금속향이 나는 물이 나와서 요리를 할 때도, 샤워를 할 때도 찝찝했다. (+ 그런 곳이어도 샤워장은 깨끗했다.) 그 전에 머물렀던 캠핑장은 무척 부내나는 휴양지 느낌의 Kalbarri였어서 더 비교가 되기도 했지만, 파리에 시달리고, 더위에 시달린 우리는 결국 이틀밤을 예약했지만 하룻밤만 자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Hamelin Pool의 캠핑장은 한쪽 다리가 약간 불편한, 친절하지만 표정은 약간 짜증이 뭍어있는 스타일의 아줌마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문득 그 아줌마의 인생이 궁금해졌다. Hamelin Pool은 해변가에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산소를 뿜는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돌들이 있는 곳이자, 자연보호구역인데 그 사실을 빼고 본다면 모두가 다 떠나버리고 캠핑장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시골 마을의 느낌이었다. 가장 가까운 시내도 2시간은 달려야 나오는, 물도 좋지 않고, 뭔가를 재배해서 먹을 수도 없는 환경의 그런 곳에서 평생을 살고 캠핑장을 운영하게 된 인생은 어떤 인생일까. 


좋아서, 하고 싶어서 남아 있다는 느낌보다는 '어쩔 수 없어서'의 느낌이 더 뭍어나서 였을까. 아줌마가 저녁 7시에 캠핑장 앞에서 스트로마톨라이트 무료 가이드투어가 있다고 친절하게 소개해주었지만, 결국은 피곤해서 못 갔는데- 무기력한 누군가가 애써 해준 호의를 거절한 것 같아 그게 뒤늦게 미안하다. 


스트로마톨라이트


그래도 집은 있는 게 좋다.


왜냐면, TV가 있고 인터넷이 있으니까..; 엄청 큰 캠핑카에 엄청 큰 TV도 같이 들고 와서 캠핑장에서 보는 사람도 있던데 (+ 그럴 거면 캠핑장에 왜 오는걸까가 hemilin pool 아줌마 인생만큼 궁금하긴 하다.) 어쨌거나 캠핑장에서는 저녁 시간이 심심했다. 지금까지 여행 중에 책을 들고 가서 다 읽고온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 여행은 무려 5일만에 책 한 권을 다 읽었다는 건 안비밀...


그리고 매일 밤 떠날 채비를 한다는 게, 같은 공간에서 마주치면 웃으면서 인사하지만 어차피 안 보게 될 사람들 속에 둘러쌓여 있다는 게, 왠지 모르게 허전한 기분을 주었다. 하지만 왼쪽 귓가에는 파도 소리가, 오른쪽 귓가에는 귀뚜라미 소리가, 배경에는 이승환 노랫 소리가 들리고 바닷 바람이 살살 불어오는 적당히 시원하고 건조한 곳에서 맥주 한잔을 하던 그 밤이 그립긴 하다.


이날은 맥주가 아니라 럼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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