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주 여행 (5)
나에게 있어 여행의 매력이란, 마음 가는 대로 해도 좋다는 거다. 어디에 꼭 도착할 필요 없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마음 가는 곳에 내려도 되고,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하지 않고 조금 모자란 소리를 해도 되고, 뭐가 뭔지 모르니 내 선택이 옳은 걸까를 걱정하지 않고 결정해도 되고. 서호주의 대자연은, 그리고 의식주가 가능한 캠핑카는 그런 매력을 십분 살릴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유명한 관광지들도 좋았다. 우리는 몽키미아를 찍고 내려왔는데- 해변가에 서서 돌고래를 볼 수 있고, (+ 밥도 줄 수 있다) 돌고래를 보는 우리 옆에는 펠리컨들이 사람인냥 자연스럽게 왔다갔다 하고, 바다 바로 앞의 레스토랑에서는 갈매기가 사람인냥 우리 테이블에서 감자튀김을 같이 먹기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핑크레이크도 좋았다. 생각없이 도로를 달리다보면 자연에서는 보기 힘든 색이 갑툭튀해서, 나도 모르게 차를 세우게 되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와 사진을 넘겨봤을 때 가장 좋았던 곳은 계획에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가서 유유자적했던 호수, 그리고 일정이 어긋나 중간에 시간이 뜨는 바람에 갈 곳이 없어 다시 방문했던 바닷가였다. 호주의 뜨겁고 건조한 날씨 덕분에 우리는 마음껏 수영하고, 몸을 말리고, 고기 구워먹고, 또 수영하고, 낮잠자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물론 불에 타는 마른 오징어가 된 기분이 가끔 들 정도로 볕이 뜨겁긴 했지만..;)
대자연에서 노닥노닥하는 것만 좋았던 건 아니다. 캠핑카 안에 드러누워 책을 읽는 순간도, 매일 밤 친구들과 같이 듣던 송은이와 김숙의 팟캐스트도, 매번 다른 종류의 맥주를 골라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그리고 사실 대자연을 누릴 수 있었던 건, 캠핑장과 캠핑카의 시설이 좋았던 것도 한 몫했고, 여행 다니기에 딱 좋은 쾌적한 날씨도 한 몫했지만, 익숙한 생활을 그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 예를 들면, 맥주라던가..) 우리 중에는 맥주를 즐기는 사람이 나 밖에 없었는데, 매번 Liquor shop에 들러 사뭇 진지하게 원산지를 따져가며 맥주 쇼핑을 하는 나를 기다려준 친구들에게도 새삼 심심한 감사를. ㅋㅋ
수두루빽빽한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을 때마다, 출퇴근 시간이 좀 피곤해도 좋으니 탁 트인 전망이 있고 아침에 까치집을 한 머리를 하고 마당에서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그런 집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만 한다. 아마, 꿈으로만 만족하지 않고 정말로 원했다면 지금쯤 그렇게 살고 있겠지.
그랬다. 9박 10일이면 충분했다. 인터넷이 될 때마다 회사 메일을 확인하고, 틈틈이 인스타를 하며 혹여나 남겨두고 온 사람들이 내가 없다는 걸 잊지 않을까-하며 보냈던 시간을 포함해서 9박 10일이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