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주 여행 (6)
일전에 어떤 책에서 그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여행을 떠나 제아무리 색다른 경험을 하더라도, 막상 돌아오면 마치 두 개의 자석이 붙는 것처럼 떠나기 전의 생활과 돌아온 후의 생활이 딱 붙어 이어지게 되는데 그게 그 작가에게는 묘한 안도감을 준다는 거다. 나에게는 그게 묘한 안도감인지, 묘한 허무함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잘 즐기고, 잘 돌아왔다.
여행을 하면 돌아올 때 늘 하는 생각은 '영어를 좀 더 배워야지. 운동을 해야지.'이고, 이번에는 '수영을 배워야지.'까지 더해졌다. 그리고 역시, 음, 그렇다. 아직도 안 배웠다. 변하지 않는 생활만큼이나 변하지 않는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는 '다 해버리면 다음 여행 갔다와서 할 생각이 없잖아?' 정도랄까...
그리고 여담으로, 대자연과 그 여유로움도 좋았지만 가장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은 따로 있다. 캠핑카를 갓 렌트하고 장을 보러 마트에 들렀을 때, 건물 내에 있는 주차장에 들어가려고 했었다. 그때 주차장에서 나오던 한 아줌마가 엄청 인상을 쓰며 저리가라는 듯이 손을 휘휘 내저었는데, 차 안에 있던 우리는 '피해서 가면 되지, 왜 우리한테 비키라고 하는거지'라는 생각으로 순간 기분이 상했었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그 주차장은 차 높이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캠핑카는 위가 높아 그대로 진입했으면 렌트한 첫 날부터 수리비 물어주고 차를 볼 때마다 슬퍼하며 남은 여행을 보낼 뻔... 사실 아줌마는 엄청 친절했던 사람이고 (아마) 햇빛에 눈을 찡그린 것일텐데 순간적으로 오해해서 미안했다. 그 아줌마의 모습과 표정과 손짓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은 운전 잘하는 친구와 요리 잘하는 친구가 없었더라면 엄두도 못냈을 텐데, 해보지 않았더라면 많이 아쉬웠을 좋은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건 찡그린 주차장 아줌마라는게 함정...'_'a) 좋은 순간들이 많았다는 건, 내가 지금 잘 살고 있구나-라는 마음과 동시에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건가-라는 마음도 들게 한다.
어쨌든, 그런 답도 없는 고민을 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여행의 또다른 매력이니까, 나는 얼마 전에 또 자동차를 끌고 노르웨이 대자연을 돌아보고 왔다. '대자연 볼 만큼 봤어, 이제 뭐 색다를 건 없지.'라고 생각했으나 풍경 사진을 백장쯤 찍었고, '캠핑카도 끌고 다녔는데, 자동차쯤이야.'라고 생각했으나 흐앙! 어쩌지!라는 순간이 백번쯤 있었고, '여행도 많이 다니니, 설렘도 줄어드는구만.'이라고 생각했으나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숙소 열쇠를 못 찾아 헤매이는 와중에 쌍무지개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역시, 나는 아직 더 즐길 게 많이 남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