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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ks Nov 26. 2018

[서호주] 도착 후 이야기

서호주 여행 (6)

잘 즐기고, 잘 돌아왔다.


일전에 어떤 책에서 그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여행을 떠나 제아무리 색다른 경험을 하더라도, 막상 돌아오면 마치 두 개의 자석이 붙는 것처럼 떠나기 전의 생활과 돌아온 후의 생활이 딱 붙어 이어지게 되는데 그게 그 작가에게는 묘한 안도감을 준다는 거다. 나에게는 그게 묘한 안도감인지, 묘한 허무함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잘 즐기고, 잘 돌아왔다. 


마지막 밤


여행을 하면 돌아올 때 늘 하는 생각은 '영어를 좀 더 배워야지. 운동을 해야지.'이고, 이번에는 '수영을 배워야지.'까지 더해졌다. 그리고 역시, 음, 그렇다. 아직도 안 배웠다. 변하지 않는 생활만큼이나 변하지 않는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는 '다 해버리면 다음 여행 갔다와서 할 생각이 없잖아?' 정도랄까...


그리고 여담으로, 대자연과 그 여유로움도 좋았지만 가장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은 따로 있다. 캠핑카를 갓 렌트하고 장을 보러 마트에 들렀을 때, 건물 내에 있는 주차장에 들어가려고 했었다. 그때 주차장에서 나오던 한 아줌마가 엄청 인상을 쓰며 저리가라는 듯이 손을 휘휘 내저었는데, 차 안에 있던 우리는 '피해서 가면 되지, 왜 우리한테 비키라고 하는거지'라는 생각으로 순간 기분이 상했었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그 주차장은 차 높이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캠핑카는 위가 높아 그대로 진입했으면 렌트한 첫 날부터 수리비 물어주고 차를 볼 때마다 슬퍼하며 남은 여행을 보낼 뻔... 사실 아줌마는 엄청 친절했던 사람이고 (아마) 햇빛에 눈을 찡그린 것일텐데 순간적으로 오해해서 미안했다. 그 아줌마의 모습과 표정과 손짓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잘 즐길테다!


이번 여행은 운전 잘하는 친구와 요리 잘하는 친구가 없었더라면 엄두도 못냈을 텐데, 해보지 않았더라면 많이 아쉬웠을 좋은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건 찡그린 주차장 아줌마라는게 함정...'_'a) 좋은 순간들이 많았다는 건, 내가 지금 잘 살고 있구나-라는 마음과 동시에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건가-라는 마음도 들게 한다. 


어쨌든, 그런 답도 없는 고민을 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여행의 또다른 매력이니까, 나는 얼마 전에 또 자동차를 끌고 노르웨이 대자연을 돌아보고 왔다. '대자연 볼 만큼 봤어, 이제 뭐 색다를 건 없지.'라고 생각했으나 풍경 사진을 백장쯤 찍었고, '캠핑카도 끌고 다녔는데, 자동차쯤이야.'라고 생각했으나 흐앙! 어쩌지!라는 순간이 백번쯤 있었고, '여행도 많이 다니니, 설렘도 줄어드는구만.'이라고 생각했으나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숙소 열쇠를 못 찾아 헤매이는 와중에 쌍무지개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역시, 나는 아직 더 즐길 게 많이 남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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