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싶으면 빠꾸해! 근데, 지금은 말고

기다림은 내 몫 결정은 아기 몫

by 심야초
비주얼 깡패

이제 난 임산부 배지 없이도 자리를 양보받을 정도로, 누가 봐도 임산부의 외형을 갖춘 사람이 되었다. 확실히 숨이 조금씩 짧아졌고, 계단 몇 칸만 올라가도 심장이 앞서갔다. 하지만 입덧으로 혹독했던 임신 초기에 비하자면 말기는 정말 천국이었다. 소화는 안 되었지만 밥도 먹었고, 토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리고... 비주얼이 깡패랄까. 일할 때에 비해서 외출할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시선이 먼저 배에 향했고, 그때마다 누군가가 어깨를 쿡 건드리며 자리를 가리켰다. 그러면 나는 냉큼 “감사합니다” 하고 자리에 앉았다. 호의를 거절하기에는 내 몸상태가 마뜩잖았다. 사실 말기 외에 임신 대부분의 기간은 그 은근한 임산부 티 내기를 시전해야 했으니, 수고로움이 줄어들었다는 장점도 있었다. (물론 배려가 필수는 아니지만 초기에는 구토도 구토거니와 서있으면 차가 움직일 때마다 머리가 팽팽 돌아서 양보를 못 받으면 그냥 주저앉아서 갔다)


진짜 깡패

한 번쯤 임신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알듯이 뱃속의 아이는 야행성이다. 그래서 잘 때는 늘 모녀 전쟁이 펼쳐졌다. 사실 전쟁이라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 나는 늘 약소국의 처지였으며 콩콩이의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가뜩이나 배가 불러 자는 것도 힘든데 발로 계속 차기까지 하니 매일밤마다 죽을 맛이었다.

내 몸속의 작은 존재에게 막을 도리 없이 얻어맞아야만 하는 그 무력감이란...


한 번은 자다가 콩콩이가 갈비뼈 아래를 퍽 쳐서 헉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깬 적이 있다. 그때의 고통은 아직도 안 잊힌다. 살다가 처음 갈비뼈를 얻어맞았는데 그게 딸이라니...(그것도 태어나기 전)



"콩콩아, 너 나오면 보자..."

"(다시 한번 갈비뼈를 걷어차며) 나오면 어쩔 건데요? 엄마"

"...... 나오면 콩콩이가 엄마를 걷어찬 거의 두 배로 사랑해 줄게^^..."


맞다. 아무리 일방적으로 당한다 한들 갚을 방도는 없다. 부모는 자식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이길 수 없는 운명인가 보다.


가진통과 갈비탕

하지만 활동성과 반비례하게 콩콩이는 예정일을 꽉 채우도록 조용했다. 결국 유도 분만 일자를 잡았는데 정말 귀신같게도 40주 바로 그날 밤, 이슬이 비치더니 가진통이 시작됐다. 그 고통은 마치 배에 '쥐가 났다가 괜찮아지는’ 느낌의 조임과 당김이랄까. 아래쪽에서 둔한 압박이 올라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스르르 빠졌다. 파도 사이 짧은 평온의 반복.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급똥을 참아본 사람이라면 무슨 느낌인지 알 것이다.


병원에서는 5분 주기면 오라고 했기에 기다리자는 내 말과 다르게 남편은 현관 앞에서 신발을 벌써 신고 있었다. 정말 무적의 J였다.

진통이 온다 병원에 간다가 이미 그의 루틴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가자.”라는 말에 나는 “아직 아닌 것 같아”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우리는 분만실에 있었다. 그 결과는...

아직이요.
진통 주기가 짧아지면 다시 오세요.

아침까지 기다렸지만 얌생이 같은 콩콩이는 나오지 않았고 남편과 나는 집에 가서 기다리다가 배가 고파 갈비탕집에 들렀다. 김이 모락모락. 첫 숟가락을 뜨는 순간, 조임이 훅 들어왔다. 숟가락이 그릇 위에서 잠깐 멈췄다가, 지나가면 다시 후루룩. 진통 어플로 주기를 체크하며 왕갈비탕을 먹었다. 배는 아프고 국물은 뜨겁고, 식당의 공기는 평온했다. ‘이 타이밍에 갈비탕이라니’ 웃음이 났다. 한 숟가락, 잠깐 멈춤, 또 한 숟가락. 그렇게 그날은 흘렀다.

당시 엄마와 나누었던 대화


출산 2차전! 이번엔... 찐이다!

갈비탕을 때렸던 진통 2일 차.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파도 간격이 줄었다. 이번엔 진짜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참고 참고 또 참은 끝에 10분 주기까지는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다시 병원.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차가운 바람이 복도 바닥을 훑었다. 모니터에는 출렁이는 선과 숫자. 파도가 올 때마다 침대 손잡이를 꽉 쥐었다. 손등의 힘줄이 솟았다가 빠졌다. 진통 참기와 무통 주사, 내진의 반복. 하지만 자궁이 5cm가 열리도록 콩콩이는 전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나오기만 하면 된다.” 그 문장이 버팀목이 되다가, 다음 순간엔 짐이 됐다. 남편의 손을 잡고 진통이 오는 순간순간을 흘려보냈다. 몇 번의 심호흡이 오가는 동안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은 느리게만 흘러갔다. 대망의 클라이맥스는 촉진제를 맞던 순간.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남편과 하하 호호할 수 없었다.


이제는 진짜 수술해야 합니다.


촉진제를 맞은 이후에는 자연분만이고 뭐고 그냥 바로 "의사 양반 수술이요! 내가 잘못했소! 수술해 주세요!!!"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게 정말 진정한 진통이구나... 선생님께서 어서 빨리 나의 결정을 물어봐주기만을 기다렸다. 설명은 간단했고, 선택지는 사실상 하나였다. 응급 제왕. 그 이후 과정은 사실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병원에서는 어떤 서류를 건네고 남편이 작성을 했던 듯하다. 그런데...


마취 선생님이 1시간 뒤에 오십니다


수술 결정을 내린 건 오전 9시. 정해진 수술이 아니기에 마취 선생님은 빨라도 1시간 뒤에 온다고 했다.

여기서부터는 진짜 시간과 정신의 방에 갇힌 느낌이었다. 근데 높은 파도를 곁들인. 규칙은 촘촘해지고, 사이의 평온은 얇아졌다.


침대 난간을 잡은 손가락 관절에 하얀 선이 섰다. 등 뒤로 땀이 타고 흘렀다. 가까스로 시간을 보려고 눈을 간신히 뜨고 시계를 올려다보면 3분이 30초 같았다가, 30초가 3분처럼 길었다. 남편 손목을 잡은 손가락이 땀에 미끄러졌다. “괜찮아?”라는 남편의 말이 공기 중에서 느리게 떠다녔다. 내 대답은 없었다. 눈물을 힘없이 밀어내며 눈도 못 뜬 채 겨우 숨을 몰아쉴 뿐. 눈물을 닦아주는 남편의 손길과 함께 기계에서 들리는 아이의 심장소리만 귀에 쿵쿵 울렸다. “지금 수술실로 갈게요.” 그 말이 신호였다. 맞물려 있던 이와 어깨의 힘이 동시에 빠졌다. 그리고 곧, 나는 수술실로 향했고 눈을 감은 기억도 없이 눈을 떴다.


내 인생의 봄 이꼬르 콩콩이세여

눈을 떴을 때 나는 어디론가 실려가고 있었고, 도착한 곳은 회복실이었다. 배 위에는 돌덩이 같은 것이 올려져 있었고 다리에는 감각이 없었다. 토요일 밤에 시작된 파도가, 월요일 오전에야 육지에 닿았다. 아이를 잠깐 보여주는 손길이 스쳐 갔다.


3.48kg. 다른 아이들보다는 살짝 많은 체중. 아이는 고구마같이 빨갛고, 작았고, 따뜻했다. 수술은 생각지도 않았던 터라 상상했던 방식과는 달랐지만, 목적지는 같았다. 내 뱃속에서 정말 사람이 나왔잖아! 내 품 안에 작은 사람이 있었다. 저 조그마한 생명체가 내 갈비뼈를 망설임 없이 타격하던 그 무지막지하면서도 세상에 나오기는 거부했던 얌생이 같은 그 아이가 맞단 말인가. 너무... 너무... 작고 연약하고 소중하잖아...? 거친 파도 위에서 한 배를 탔던 우리의 호흡은, 이제 서로를 마주 보며 같이 쉬는 숨으로 바뀌었다.

그래, 콩콩아! 앞으로도 수틀리면 빠꾸! 아니다 싶으면 빠꾸! 그래도 이때는 큰맘 먹고 고! 해줬으면 좀 더 좋았을 것 같긴 해. 엄마가 참 콩콩이가 보고 싶어서 너무 애가 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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