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부가 시작됐다
일시불 vs 할부, 그리고 선택
출산을 앞두면 대부분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사이에서 망설인다. 그리고 이를 일시불과 할부의 고통이라고 표현한다.
? : 고통은 막을 수 없어요. 하지만 할부는 가능합니다. 어.떻.게.하.시.겠.어.요? 어머님^^
나 : 저 그냥...일시불로 할게요...ㅠ
? : 앗, 제성ㅎㅎ.. 일시불과 할부 둘 다 결제해 버렸네요.^^*
내가 제왕은 생각도 안 했던 것은 오로지 회복력 때문이었다. "자연분만은 다음날 바로 걸어 다닐 수 있다!" 그 문장 하나가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그리고 아이 셋을 자연분만으로 낳았던 엄마의 영향도 컸다. 심지어 둘째였던 나는 딱 8분 만에 낳았다고 했다. 장장 일주일을 병원에 묶여 있는 그림을 떠올리면 어깨부터 무거워졌다. (병원마다 입원 기간은 다르지만 내가 다니던 병원은 수술 후 일주일 입원이었다) 그런데 난 결국 일시불+할부의 고통을 둘 다 겪는, 최악의 루트를 타게 됐다.
첫 대면: 네가 정녕 콩콩이니?
수술 후 첫날은 말 그대로 누워 있는 날이다. 그날의 기억이라고 하면 소변줄. 금식. 무통 주사. 페인 버스터. 그리고 간호싸쌤이 콩콩이를 데려온 순간.
출산한 엄마라면 이 순간만큼은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가뜩이나 부은 눈을 어떻게든 뜨려고 노력하는 아이의 눈, 남편과 닮은 귀, 허공에 허우적거리는 팔과 다리, 정말 작디작은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하나하나 정상임을 확인시켜 주는 시간.
열 달을 함께 한 몸에서 동고동락한 탓일까. "모두 다 정상이에요" 그 말이 끝나자, 눈물이 먼저 반응했다. 가슴속에서 뭔가가 벅차올랐다. 정말 장하다.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콩콩아 장해. 정말 장해. 콩알만 하던 너는, 어느덧 엄마의 귀를 때리는 힘찬 심장 소리로 나의 하루를 채우더니 너무나도 건강하게 그렇게 엄마에게 와주었구나.
그렇게 한 바탕 아이의 건강 여부를 확인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남편과의 시간이 시작된다. 출산을 앞둔 예비맘들에게 한 가지 팁을 주자면 미리 남편과 방귀쯤은 트기를 바란다. 이하 자세한 설명은 생략.
둘째 날부터 시작된 진짜 할부
누워 있는 나 대신, 그는 끊임없이 일어났다가 앉았다. 의료진들과 소통하고, 내 몸 상태를 살피고, 아이 사진을 보여주고, 이불을 펴주고, 아파 보이면 대신 버튼을 눌렀다. 내 손발이 되어준 그 덕분에 첫날에는 통증이 멀리 있었다. 누워 있으면 멀어지는 고통이라니, 세상에 이런 호사가 있나. 그건 ‘선이체’ 같은 거였다. 진짜 할부는 둘째 날부터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둘째 날은 드디어 소변줄을 빼고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얻었지만... not only에 but also였다.
허리를 드는 동작 하나에 배 안쪽에서 칼끝이 콕, 하고 스친다. 한 걸음마다 재생되는 짧은 번개.
"그럼 그냥 누워있으면 되지!"
그럴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어떻게든 일어나야 우리 콩콩이 얼굴도 보고, 콩콩이가 아니더라도 회복을 위해서는 아픔을 참고 걸어 다닐 수밖에 없다. 간호사쌤은 누워있을 때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자주 자리를 바꿔주라고 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나 스스로 나에게 칼빵을 놓으며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일어나라는 말이 이렇게 잔인할 줄이야.
그리고... 소변줄을 빼면 어떻게 될까요?
소변줄이 없다? = 화장실에 가야 한다!
부끄러움은 통증과 세트를 이뤘다. 화장실은 가까웠지만, 혼자 갈 수 없었다. 그리고 혼자 앉을 수도. 남편에게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수치스러운 장면을 보여줘야만 했다. 정작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옆에 계속 있겠다는 걸 끝끝내 내보내고는 끝나면(?) 오라고 했다. 이런 수치스러움을 반복하더라도 물은 마셔야 했다. 통증과 부끄러움에 차례로 도장을 찍고 조금씩 움직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복도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데, 하루가 걸린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 남편에게 신신당부했던 것이 한 가지 있다. 절대, 절대로 나를 웃기지 말라고. TV도 금지다. 농담 한 줄이 봉합선에 그대로 울렸다. 웃음이 칼이 되는 날이 있다면, 그날이었다. 그래도 한 번 남편 때문에 빵 터져서 울면서 웃긴 했다
'살민 살아진다'의 증명
남편은 극E였다. 작은 병실 안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건, 그에게는 벌칙 같았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옆에 있었다. “3일만 버티면 괜찮아져.” 맹장 수술 유경험자의 조언은 의외로 설득력이 있었다.
셋째 날부터, 통증은 약간의 틈을 허락했다. 넷째 날, 걸음이 짧은 문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섯째 날, 웃음 금지를 조심스럽게 풀었다. 여섯째 날, 부기가 한 톤 내려앉았다. 일곱째 날, 혼자 걸어서 실밥을 풀러 갔다. 이는 마치 인류의 진화 과정과도 같았다.
조리원 입성
조리원에 가자 방에 놓인 침대가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다. 푹신한 잠자리. 그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몰랐다. 하지만 ‘갇힘’은 계속이었다. 문은 바뀌었지만, 문 바깥으로 나갈 일은 여전히 금지였다. 그래도, 살 것 같았다. 적어도 푹신한 침대에 밖이 내다보이는 창문, 스케줄표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조리원 생활을 시작했고 조리원에 간 지 하루 이틀 뒤, 남편은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표정이 밝아 보이는 건 단지 내 기분 탓이었을까.
조리원은 수유를 위한 곳
하지만 코로나 시기라 식사도 방에서 각자, 프로그램도 안 가면 그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복도에서 스치듯 눈만 맞추다 끝나곤 했다. 같은 층에 있었지만 서로의 이름을 모른 채,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같이 있는 고립'이라는 말이 정확했다. 조리원 동기라는 단어가 만들어지지 못한 자리에는, 창문을 여는 습관과 커튼을 닫는 리듬만 쌓여 갔다. 어쩌다 마주치면 잠깐의 스몰토크만 있을 뿐.
그래도 바빴다. 조리원은 사실상 수유를 위해 조성된 공간이다. 내가 회복과 수유에 집중하는 동안 누군가가 나 대신 집안일을 해주고, 아이를 돌봐주고, 식사를 대신 차려주지 못하니. 낮에는 수유, 새벽에는 유축. 2, 3시간마다 해야 하는 루틴에 잠은 늘 부족했고, 모자란 잠은 낮과 밤에 틈틈이 보충했다. 민망한 것은 방에 점검차 직원분들이 올 때마다 내가 자고 있었던 것.
처음 젖을 물리던 순간은 감동이라기보다 대자연의 신비 쪽이었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가 어떻게 알고 입을 가져다 대어 무는 걸까. 몸이 누군가의 식사가 되는 일, 리듬이 서로에게 맞물려 돌아가는 일. 그 사실이 갑자기 거대해서 울컥했다. 나는 한낱 이 정교하게 설계된 우주에서 한 줌의 모래 같은 존재구나.
역시 과학은 위대(?)해! 뒤늦게 감정이 따라왔다. 콩콩이의 머리 냄새를 몰래 맡는 것도 좋았다.
이제, 우리집 현관문을 열자!
엄마의 뱃속에서 병원으로, 조리원으로. 그렇게 콩콩이는 세 번의 문을 지나왔다. 하지만 콩콩이가 다시 거쳐야 할 문은 하나 더 있었다. 이번에는 집. 그 문을 열면, 우리의 생활이 시작된다.
낮잠의 자리, 젖병의 자리, 빨래의 자리. 그리고 엄마의 자리. 같은 공간에서 다른 사람이 되는 일.
앞으로 콩콩이는 수많은 문을 열게 될 것이다.
젖병 뚜껑과 서랍, 그다음엔 현관과 교실, 그리고 언젠가는 마음의 문까지.
문이 열릴 때마다 세상은 한 칸 넓어지고, 엄마의 역할은 한 칸 뒤로 물러난다.
그 문턱마다 엄마는 손잡이를 잡아 주되, 문 안으로 먼저 들어가지는 않겠다.
넘어지면 일으키고, 멈추면 기다리고, 열려 있는지 조용히 확인하는 사람으로 남겠다.
오늘의 작은 두근거림이 내일의 큰 걸음이 되듯,
콩콩이의 문들은 천천히, 그러나 정확히 열릴 테니까.
그러니 콩콩아, 많은 문을 열어라.
낯선 공기와 새로운 빛이 들어오면, 우리는 또 다른 생활을 배우게 된다.
엄마는 문밖에서 숨을 고르며,
지금 엄마가 출근할 때 네가 해주는 말처럼
“다녀와”와 “잘 왔어” 사이를 지키고 있을게.
6화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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