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반복되고, 상처도 반복된다
육아 TF 결성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보통 3개월의 수습기간이 주어진다. 서로의 호흡을 맞추고, 기준과 방식을 확인하는 시간. 육아 세계에 정식 투입되기 전, 내게도 3개월의 시간이 주어졌다. 원래라면 수습 기간 없이 남편과 바로 실전에 투입되었겠지만, 출근은 빠르고, 퇴근은 늦은 남편의 높은 육아 참여도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 그래서 우리는 산후도우미를 몇 주간 고용하기로 마음을 모았었다. 그런데 딸인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엄마가 먼저 말했다.
“내가 할게.”
낯선 사람이 집에 파견되는 대신, 엄마가 은퇴했던 육아 세계에 다시금 뛰어들었다. 그렇게 경력직 팀장 엄마와 육아 신입 딸로 육아 TF가 결성됐다.
왜 엄마인가
채용 공고도 없이 훅 들어온 자원 신청. 그럼에도 최종 선택권은 우리 부부에게 있었고, 신입 주제에 짧은 고민까지 거쳤다. 그리고 곧 주말 부부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개월의 기간을 왜 엄마와 함께할 결정을 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단순했다.
첫째, 엄마는 아이 셋을 키운 실전 경력이 있었다. 게다가 나를 돕겠다며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자격증까지 따 온 지독한 사람이었다. 나는 콩콩이를 위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둘째, 말보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필요했다. 아기는 설명을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 셋째, 내가 무너질 때 멈추지 않고 붙잡아 줄 사람. 그 역할은 엄마의 엄마만이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마지막 이유. 엄마는 내 편이면서도, 내 말에만 끌려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좋을 때는 물처럼 스며들고, 멈춰야 할 때는 벽처럼 서는 사람. 나는 그 단단함이 싫을 때가 있었고, 그래서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단단함이 없었다면, 우리는 첫 열흘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왜 엄마인가”의 대답은 결국 '버티게 하는 손'이었다. 엄마의 차가운 말이 때로 칼날처럼 느껴져도, 다음 장면은 늘 손이었다. 덮어 주는 손, 들어 올리는 손, 기다려 주는 손.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을 부르짖었던 나는 결국 그 손에 이끌려 콩콩이와 함께 엄마의 공간에 다시 발을 들여놓았다.
인터넷 vs 경험: 정답은 없다
그렇게 엄마와 나의 얼렁뚱땅 우당탕탕 합숙이 시작되었다. 신생아 돌보기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
요즘 부모들이 그렇듯, 나도 육아의 모든 것을 인터넷 센세에게서 배웠다. 남편과 나는 너 나 할 것 없이 육아 관련 내용이 나오면 서로 DM을 보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생후 초기엔 하루 8–12회, 2–3시간 간격으로 먹인다’, '방 온도는 20-25도 유지, 습도는 50-60%', '아이는 원하는 것에 따라 울음소리가 다르다', '가짜울음'과 '진짜 울음' 구별법, '이 시기에 수유는 꼭 몇 ml를 먹여야 한다더라'라는 카더라.
그 정보가 가짜든, 진짜든 인터넷은 곧 나에게 진리였다. 마치 이를 어기면 당장이라도 아이에게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인터넷의 넘쳐대는 홍수 속에서 허우적 댔다. 이런 정보들만 주야장천 쫓아다니다 보니 알고리즘도 꼭 이런 것만 눈앞에 들이대었다. 궁금한 점을 검색하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이미 한 질문이었고, 또 자칭, 타칭 육아 전문가는 "이래래! 저래라!" 하며 해답을 내놓았다. 없는 것이 없었다. 기록이 쌓일수록 불안은 줄었다.
반면, 엄마는 기억으로 배웠다. 아이 셋을 키우며 손이 먼저 익힌 방법, 잠을 달래는 호흡, 분유 온도를 가늠하는 손등의 감각, 바람을 막아 주던 담요의 두께. 엄마의 교과서는 핸드폰이 아니라 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부딪혔다. 나는 항상 엄마에게 핸드폰을 들이밀었고, 엄마는 장면과 몸의 기억으로 반박했다. 둘 다 틀리지는 않았지만, 둘 다 맞지도 않았다. 아기는 매뉴얼이 있다한들 어찌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딸을 찌르는 엄마의 말
그중에서도 요즘 엄마들이 친정엄마와 갈등을 겪는 단골 주제 중 하나는 머니머니해도 머니... 도 있겠지만 '온도'. 맘카페를 검색해 보면 이것 때문에 갈등 겪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생아 적정 실내 온도는 20-24도
적정 습도는 50-60%
이 정보의 출처는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곳에서 신생아 적정 온도와 습도에 대해 알려준다. 어디선가는 꼭 들어서 알고 있다. 그래서 출산을 앞뒀다면 가장 먼저 사는 육아용품 중 하나가 바로 온습도계일 것이다. 신생아맘에게 수유량, 수유텀만큼이나 태열은 극히 민감한 주제이다. 그 뽀얀 얼굴에 빨간 트러블이라니.. 맴찢 유발 1순위 버튼이다.
반면, 엄마의 경험상 적정 온도는 그보다 높았다. 둘 사이에는 늘 온도의 간격이 있었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있었다. 하지만 고마움이 먼저였던 난 토를 달지 않고 조용하고 은밀하게 엄마가 높인 온도를 다시 낮출 뿐이었다.
만약 우리 엄마가 북유럽에서는 아기들을 야외 취침을 시킨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
https://youtu.be/ECVSlW6iizc?si=W3fCY-pDkC3C1vJy
툭 - 끊어진 날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기어코 말로 칼을 빚어냈다.
태열 때문에 온도를 낮춘 밤, “너 때문에 아기를 춥게 하면 되겠느냐. 그런 네가 엄마가 맞느냐”는 모진 말. 나도 모르게 "그만 좀 해"라는 말이 나왔다. 임신할 때부터 철분이 모자라 코피를 달고 살았던 나.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아 모래처럼 무너지던 날, “그렇게 예민한데 젖이 나오겠냐”는 문장이 치명타처럼 들어왔다.
고마움이라는 방패를 이번에도 들어야 했던 걸까. 설명은 변명처럼 들릴까 봐, 나는 말 대신 밤을 길게 삼켰다. 그 밤은 길었다. 미워서 울고, 고마워서 울고, 미안해서 울고, 또 미워서 울었다.
상처는 사랑으로 덮어진다
같이 산다는 건 서로의 리듬을 배우는 일이고, 같이 키운다는 건 서로의 신념을 번역하는 일이다. 그날의 감정처럼 난, 엄마와 보내던 대부분의 날을 울면서 보냈다. 어떤 날은 미워서 울고, 어떤 날은 고마워서 울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날은, 고맙고 미워서 울었다.
미움과 미안함은 같은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꺼낼 때마다 둘이 함께 나왔다. 엄마의 말이 비수처럼 들리던 그날도, 다음 장면은 늘 손이었다. 아이 젖병을 끓이는 주름진 손, 딸에게 줄 미역국을 만들고는 어서 나오라며 부르는 손, 새벽 육아에 지쳐 자는 내 방에 들어와 이불을 덮어주고 내 등을 둥글게 문지르는 손.
엄마가 만들어낸 말의 상처는 엄마가 켜켜이 쌓은 사랑으로 덮어졌다. 모두가, 딸인 나조차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는 그 순간에도 엄마는 다시 품으로 돌아온 딸을 위해 함께 있는 3개월 내내 따뜻한 미역국을 끓였다.
아이와 나, 나와 엄마
그렇게 엄마와 내가 고군분투하는 사이, 콩콩이도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50일을 넘기자 통잠이라는 작은 기적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새벽에 아이가 잠이 들면, 엄마와 나는 식탁 의자에 등을 기대고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만큼은 같은 팀이었다.
아이와 나는 배우는 사랑을 반복했고, 엄마와 나는 번역하는 사랑을 반복했다. 같은 장면이 다른 해석을 낳았다. 아이를 안고 흔드는 내 팔이 규칙을 찾을 때, 엄마의 손은 경험으로 빈칸을 메웠다. 손은 물처럼 먼저 갔고, 말은 가끔 칼날처럼 뒤따랐다. 사랑은 뒤늦게 도착했고, 상처는 빠르게 도착했다. 그걸 인정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사랑과 상처가 서로의 등 뒤를 무한히 따라가는 구조, 그 반복이 계속된다는 것을.
육아에 완벽과 완결은 없다
육아에 완결은 없다. 대신 갱신이 있다. 미워서 울고, 미안해서 울고, 고마워서 울고, 그래도 웃는 날을 반복해 넘어가다 보면, 어느새 다음 화가 올라와 있을 것이다. 새벽은 또 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몇 번이나 새벽을 통과했다. 같은 편으로.
세 달간의 TF는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얻은 것은 있다. 여전히 같은 팀으로 남아 있는 것, 그게 우리의 성과였다.
엄마, 나는 내 아이에게 서툴 수밖에 없을 거야. 틀릴 때도 많겠지. 그때 나는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먼저 손을 움직이고 싶어. 가끔은 말이 먼저 나가겠지. 그러면 오늘 밤의 이 편지를 다시 읽을게. 고마워서 울고, 미워서 울던 그 시간을.
엄마가 나를 위해 잡아준 손잡이 덕에 문턱까지 내 힘으로 갔던 것처럼, 나도 콩콩이가 앞으로 열 수많은 문들의 손잡이를 잡아줄 거야.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말하고 싶어. 미워졌던 순간까지 포함해서,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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