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다시 준비 갈 완료

육아하고 일하고 결혼식 준비하는 사람

by 심야초
멈춘 톱니를 다시 굴리다

출산 후 나는, 멈췄던 결혼식 준비도 다시 굴리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 그리고 웨딩 플래너가 있는, 3인의 단톡방이 오랜만에 다시 살아났다. 정해 둔 건 튜디오, 레스, 이크업, 딱 세 가지. +신부님 호칭 재획득.

그리고 녹이 슬락말락하는 - 사실은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 또 다른 톱니바퀴에도 슬쩍 기름칠을 했다. 다시 방송일을 시작한 것이다. +작가님 호칭 재획득.


사실 난, 아이를 낳고 나면 회사에 취업할 생각이었다. 프로그램이 사라지면 바로 백수가 되고,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자리를 이제 그만 겪고 싶었다. 그 당시에 나는 일이 곧 내 삶이었다. 일과 삶이 분리가 안 되니, 삶에서 불쑥불쑥 일이 튀어나왔다.


누구를 만나도 항상 눈은 동태눈깔, 정신은 딴 데 가 있었다. 연락은 항상 오는 연락만 받고, 2, 3일 뒤에 답하기 일쑤. 누구를 만나도 업무 연락이 올까 봐 항상 마음은 조마조마. 대화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뇌가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러니 친구가 남아나나..


쉬는 법을 배우니, 더 이상 그 불구덩이에 다시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주말은, 일주일에 이틀, 아니 하루만이라도 온전히 쉼을 가지고 싶었다. 쉼이라고 쓰고 육아라고 읽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아이.

나중에 어린이집을 가더라도 등하원을 해야 할 텐데, 내가 밤을 새운다면 아이는 누가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올 것인가. 몸을 갈아 넣으면 넣는 대로 돈이 들어오며, 도파민은 터질지언정 불안정한 방송일보다는 비록 도파민과 쩐은 협소하더라도 안정적인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다. 조건은 단 하나! 주말 워라밸&칼퇴 선호. 재택근무도 가능하면 더 좋고. 취업이 안 되면 공무원에 도전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안 되면 아르바이트라도.


그런데 로아와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올 즈음되던 어느 날, 의외의 곳에서 연락을 받았다.


지금쯤 아이를 낳았을 것 같아서요

"지금쯤 출산했을 것 같아서 연락했다"는 그곳은 예전에 내가 임신했을 때 면접을 봤던 한 프로그램이었다. 면접을 본 지 약 9개월 만에 연락이 온 것이다. 어떻게든 이어질 인연은 이어지는 것인가.

전화 한 통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한 달에 두 번 출근. 이 조건이 마음을 흔들었다. 그날부터 내 이름은 셋. 어머님, 작가님, 간간이 신부님. 세 호칭이 한 기기에서 번갈아 울렸다. 피곤했지만, 이상하게도 다시 살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를 보면서 일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말이 안 되는 짓이었다. 동료들에게도 죄인, 아이에게도 죄인이 되었다. "아이 키우면서 일하기 힘들지 않으냐."는 물음에는 항상 "우리 아이는 순해서 일하기 어렵지 않아요"라고 답했다. 잘 자고 잘 먹는 로아가 다른 아이들보다 키우기 상대적으로 편한 것도 사실이긴 했다. 하지만 육아는 육아. 동료들에게 죄인이 될 때에는 아이 핑계를 대기 싫어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고, 아이에게 죄인이 될 때에는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해맑게 웃는 아이를 부여잡고 엉엉 울기도 했다.


출근은 비록 한 달에 두 번, 녹화일 뿐이었지만 나머지 스무아홉 날은 결혼식 준비-육아-일 3단 콤보였다. 낮잠 들기 직전 “작가님, 10분만 통화 가능하세요?”가 뜬다.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로아가 깬다. 통화를 끊고 토닥이면, 이번엔 플래너 알림이 분다. “신부님, 본식 드레스 2차 픽스 D-14 리마인드 드려요.” 알림을 읽는 동안, 젖병은 식는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날이 있다. 데드라인과 낮잠이 정면충돌하던 날. 눕히기만 하면 울음이 터지는 등센서 때문에, 결국 아기띠를 꺼냈다. 몸 앞에 아이, 앞엔 책상, 손 아래엔 키보드. 5분마다 고개를 들어 숨을 확인하고, 7분마다 허리를 폈다. 아이에게 타자 소리는 자장가였을까. 카피 한 문장을 밀어 넣고, 로아의 하품 한 번을 받아냈다. 그날의 원고는 문장 사이사이에 작게 흔들렸지만, 그래도 보냈다. 보내고 나서 로아를 눕히자, 이번에는 내가 하품을 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시시각각 바뀌었다. 엄마→작가→예비신부. 탭 전환이 빨라질수록 하루가 덜 무너졌다. 낮에 원고를 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서, 나는 또다시 밤을 새우며 글을 썼다. 완벽 대신 통과. 오늘도 빵꾸가 안 나고 무사히 통과하기만을 바라는 날들이 계속 쌓였다. 웨딩 촬영은 출산 3개월 뒤, 예식은 그 두 달 뒤. 달력만 보면 널찍하고, 하루로 들어가면 쫓겼다. 그래도 마감이 있으니 속도는 붙었다.


이런 날이 몇 번 쌓이고 나니, 아이 밥은 제시간에 꼭 챙겨도 정작 엄마 밥은 건너뛴 날이 더 많았다. 배에서 소리가 나면 물 한 컵으로 넘겼다. 그다음 컵은 커피였다. 이런 상황에서 살이 어떻게 찔 수 있겠는가. 그래서 체지방률은 요지부동이었지만, 살은 묘하게 빠졌다. 다이어트에 노오력이라고 부를 만한 걸 한 기억은 없다.


끝도 없는 조율의 숲

결혼 준비는 체크리스트를 지우면, 그 자리에서 새로운 리스트 두 개가 돋아난다. 웨딩촬영용 의상을 선택하면, 헤메 타임이 튀어나오고, 리허설 동선을 잡으면, 사회·축가와 컷 리스트가 뒤에 선다. 일정표를 보면서 “이 정도면 끝났다” 싶은 순간, 언제나 “청첩장은요?”와 같은 새로운 안건이 등장했다.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될 대로 되라라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맡길 수 있는 건 전부 웨딩플래너에게 맡겼다. “이건 추천대로, 저건 기본 패키지대로, 변수는 최소로.” 플래너가 던지는 선택지 사이에서 고개만 끄덕였다. “네, 그걸로요.” 표정과 체력 1순위 원칙은 그대로, 세부는 전문가 손으로. 메시지는 짧아졌고, 호흡은 길어졌다. 통과의 정확도도 올라갔다.


어차피 내 일도 아닌데 다른 사람의 웨딩드레스니, 청첩장의 재질이나 문구를 기억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고 나발이고. "그냥 평범하게. 이상하지만 않으면 된다." 이 생각을 붙들자, 목록이 줄어들진 않았지만, 마음이 덜 흔들렸다. 통과가 계속되면 완성은 도착한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드레스 투어의 동행 법칙

대망의 드레스 투어 1회 차에는 남편을 데려갔다. 감탄사는 풍성했고, 정보는 가벼웠다. “예쁘다.” “응, 다 예쁘네.” 그래서 2회 차는 엄마와 동생을 모셨다. 의견은 많았고, 꽤 유용했다. 먼저 결혼식을 했던 결혼 선배이자 동생은 그림도 잘 그려주었다. “이게 언니 얼굴형에 더 산다.” “움직일 때 실루엣이 사는 건 이거.”

그리고 본식 드레스 픽스 날은 다시 남편과 갔다. 최종 선택은 내가 하니까. 어차피 답정너. 선택은 신부의 몫. 피팅룸의 조용한 공기, 지퍼가 올라가는 소리, 어깨에서 힘이 빠지는 순간을 기억한다. 그래도 본식 드레스는 마지막까지 고민의 고민을 하긴 했다.


한복은 커플 말고 시밀러룩으로

양가 입장 조율은 또 다른 차원의 퍼즐이었다. 혼주 한복을 보러 가던 날, 피팅룸 거울 앞에서 색이 모든 걸 말했다. 우리 엄마는 파스텔이 얼굴을 환하게 띄웠고, 어머님은 원색이 기운을 살렸다. “네가 볼 때는 어떤 게 나아?”라는 형님의 질문에 잠깐 진땀이 났다. 결론은 빨랐다. 같은 옷 대신 어울리는 조합. 시밀러룩st로 각자 얼굴이 사는 색을 골랐다.


"요즘은 이렇게도 많이들 입어요^^"라는 직원의 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나란히 서 보니 화면이 안정됐다. 꼭 커플로 맞출 필요는 없다. '같음'보다 '어울림'이 관계를 편하게 한다는 걸, 30분 만에 배웠다. 두 분 모두 거울을 보며 미소 지었고, 그걸로 충분했다. 본식 당일, 둘의 의상은 과장 없이 조화로웠다.



결혼 준비는 결국 ‘내려놓기’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스드메만 들고 다시 굴리기 시작해서, 아이를 안고 키보드 앞에 앉고, 리스트를 반쯤은 지우고 반쯤은 넘겼다. 완벽은 끝내 오지 않았지만, 통과는 매일 왔다. 그리고 그 통과들이 쌓여 하루가, 한 편이, 한 장면이 되었다. 끝까지 쥐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놓아도, 그래도 이상하지는 않게 하루하루는 굴러갔다.


"이상하지만 않으면 된다”라는 합의에 서자, 선택이 가벼워졌다. 남은 건 화려함이 아니라 숨 쉴 틈, 완벽이 아니라 여유였다. 다음 장면은 촬영장, 하이라이트는 표정. 남는 건 결국 사진과, 덜 지친 얼굴, 그리고 “그래도 무사히”라는 한 줄. 그래서 오늘도 꽉 쥐지 않고, 필요한 것들만 가볍게 들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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