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이 내게 알려준 것

의도치 않은 초대의 결과

by 심야초
청첩장은 인간관계의 기준이다

뒤늦은 결혼식에 뒤늦은 청첩장. 문구 한 줄 고르다 멘탈이 먼저 나갔다. 어차피 레퍼런스를 따를 것을 나는 출산 후 잔디가 된 머리를 왜 그리 쥐어뜯었던 것인가. 그리고 결국 중요한 건 누구에게 보내느냐였다. 오래 볼 사이인지와 근황을 편하게 건넬 사이인지, 그 두 가지면 충분했다. 연락이 1년 넘게 끊겼으면 그게 답이다.


미안함으로 초대를 던지면, 기대라는 부작용이 따라온다. 그래서 명단부터 줄였다. 확정은 지금 서로를 아는 사람들이다. 보류는 망설임이 남은 사람들이다. 미발송은 나와 멀어진 사람들이다. 기준을 세우니 마음이 조용해졌다. 결혼식에 초대를 하며 알았다. 청첩장은 부탁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우리 사이를 지금 시점으로 확인하는 장치. 이참에 애매하던 인간관계 정리도 하고, 오히려 좋잖아?

의도치 않은 초대

청첩장을 전달하기 위해 친구들을 만난 날이었다. 청첩장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는데 장난기 많은 친구가 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모바일 청첩장이 삽시간에 퍼져갔다. 전혀 보낼 생각이 없던 사람들에게까지. 막상 모청이 날아간 카톡방들은 조용한데, 마음은 시끄러워졌다. OMGOMGOMGOMG



내 의견과 상관없이 이미 링크는 멀리 갔고, 그 자리에서 오발송 목록을 만들었다. 결국 같은 톤으로 사과를 보냈다. 친구가 장난친 거라고 부담 없이 넘어가도 된다고 먼저 적었다. 그리고 결과는 간단했다. 내가 보낼 생각이 없던 사람 중 참석자는 한 명도 없었다. 개중에는 몇 달 동안 안읽씹한 사람도 있었다. 안읽씹은 뭔데...? 하지만 기대가 없으니, 타격도 없었다. 덕분에 기준만 더 선명해졌다.


그런데 직장도 애매했다. 입사한 지 한 두 달 만의 결혼식이었다. 그래서 굳이 초대하지 말자고 마음을 정해 두었다. 그런데 상대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일정만 담담히 전했다. 일정이 가능한 몇 명이 참석했고, 참석하지 못한 다른 분들은 축의금을 보냈다. 말보다 행동이 정확하다는 것을, 이번에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 같이 일할 사이인지라 어쩔 수 없었겠지만서도 결혼식에 온 사람이든, 오지 않은 사람이든 축하의 마음을 전한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했다.


꼭 온다던 빈자리

말은 가볍지만 약속은 무겁다. 꼭 온다던 사람들이 있었다. 먼저 초대해 달라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본식 당일, 아무 말 없이 오지 않은 이름들이 생겼다. 내가 먼저 갔던 자리였고, 축의금까지 보냈던 사이였다. 그래서 더 어색했다.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나보다 친분이 낮은 사람에게는 축의금을 보내고, 나에게는 조용히 지나간 사실이 마음을 긁었다. 심지어 그 축의금을 전달했던 사람이 나라면...? 거기서 알게 된다. 사람은 각자의 사정으로 움직이고, 관계는 각자의 기준으로 정리된다.


하지만 섭섭함은 잠깐이었다. 의외로 오래 남은 건 빈자리의 이유가 아니라, 앉아 준 이들의 얼굴이었다. 와 준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오지 못했더라도 축의로 마음을 보낸 사람에게도 마음이 간다. 그리고 불참의 이유를 보내준 이조차 애달프게도 고맙다. 그래서 남은 결론은 단순하다. 청첩장은 기록이 된다. 내 기대와 현실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기록. 그리고 그 조용함 속에서 관계가 선명해졌다는 기록. 나는 꼭 약속을 무거이 여기는 사람이 되리라.


오늘의 부적

그렇게 한바탕의 짧고 굵었던 청첩장 전달식 일정들이 지나가고, 어느새 결혼식 전날 밤이 찾아왔다. 컨디션을 위해 억지로 눈을 감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잠은 자긴 자야 했다. 잠들기 전, 다시금 내일 동선만 한 줄로 남겼다. 몇 시에 아이를 맡긴다. 몇 시에 샵에 간다. 몇 시까지는 식장으로 이동한다. 나머지는 비워 둔다. 비워야 덜 흔들린다. 그렇게 생각만 반복하다 새벽이 왔다.


아이를 시댁에 맡겼다. 샵 의자에 앉았다. 거울 속 얼굴이 낯설었다. 숨부터 길게 들이마셨다. 그래도 내쉰 숨이 길어질수록 몸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우연히 샵에서 데뷔 초의 라이즈를 목격하기도 했다. 연예인 같은 포스가 낭낭한데 도대체 저들은 누구인가라는 호기심만을 가지고 있던 차, 게러기타와 러브119로 빵 뜬 그들의 뮤비를 보고 '아, 내가 봤던 그 잘생남들이 이들이었군'하는 생각을 혼자 했다. 당시에는 누군지 몰랐는데 이상하게 긴장이 빠졌다. 별일 아닌 장면이 오늘의 부적이 됐다. 오늘은 많이 잘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은 넘어지지 않는 쪽을 고른다. 다음만 기억한다. #괜찮다 #무사히 #성공적


인생은 늘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지

예상 밖의 문제는 늘 조용히 온다. 피팅 때는 멀쩡했던 드레스의 지퍼가 멈춘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 잘못은 아니다. 살은 출산 후 빠지고 있었다. (많이는 아니지만) 온화했던 헬퍼 이모의 안색이 어두워졌고 손이 빨라졌다. 내 호흡은 더 빨라졌다. 거울 속 등판이 반쯤 열린 채로 멈췄다. 이 정도의 파격 등장이라면 그거는 그거대로 센세이셔널한데. 이모는 핀을 찾았다. 나는 시간표를 떠올렸다. 이거 참 식을 미룰 수도 없고. 허허... 한 단어로 멘.붕.


결국 이모님은 드레스샵을 한 번 더 가야 했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래도 오늘 일찍 왔잖아. 몇 분 기다렸을까. 이모님이 새로운 드레스를 들고 왔다. 드레스는 정직했다. 몇 번의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지퍼는 올라갔다.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식을 마친 뒤 이모는 비용을 사양했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래도 받는 게 맞았다. 그날 다시 샵을 뛰어갔다 오느라 이모님의 거칠어진 숨값이었다. 수고에는 대가가 있다. 대가는 마음을 가볍게 한다.


도착한 대기실 공기가 약간 떨렸다. 드레스가 몸을 감싸는 느낌이 낯설었다. 허리는 단단했고 등은 차가웠다. 내가 나 같지 않았다. 이모님의 손이 바빴고,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어색한 웃음과 함께 대기실에 들어오는 사람들과 계속 사진을 찍혔다.


대기선 끝에 섰다. 드레스는 예쁜 무게였다. 무게는 예쁜데 가볍지는 않았다. 치맛단은 바닥을 스쳤다. 바닥은 반짝였고, 반짝임은 미끄럽다. 지금, 나. 여기서 넘어지면 개쪽밖에 남지 않는다. 절대 넘어지며 안 된다. 한 손은 치맛단을 고정했고 다른 손은 마음을 붙잡았다. 발의 간격을 반 뼘으로 맞췄고, 발목을 세웠다. 힐의 중심을 찾았다.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멀티플레이에 약한 나의 표정은 끝까지 완전하지 못했다. 그건 기록으로 남겨도 된다. 사진 속 미소는 반쯤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어색한 미소는 실패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증거다. 그 순간을 버티고 있었다는 기록이다. 보아라, 이것은 넘어지지 않으려는 사람의 얼굴이다.


룩앳미 낫미

문이 열렸고, 음악이 시작됐다. 평소 어깨를 낮추라는 필라테스쌤의 말을 기억하며 어깨는 조금 내리고, 턱은 반 뼘만 당겨서 없는 없는 쇄골을 억지로 만들어냈다. 익숙한 얼굴들에 반가움을 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발만 움직였다. 발이 말을 대신했다. 보폭은 일정했고, 발목은 아슬아슬하게 버텼다. 그 사이에 몇 번의 숨을 더 길게 폈다. 지나가 보니 입장은 짧았다. 짧았지만 길었다. 짧아서 길게 남았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멀어졌다가 가까워졌고, 환호가 파도처럼 들어왔다가 빠져나갔다.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나만의 싸움이 시작됐다. 아니, 그 순간은 파도 위보다는 거친 파도 아래 바닷속을 잠수하는 느낌이랄까. 의식은 무의식 저편으로 건너갔다가 여러 번 연결됐다. 간신히 물밖으로 고개를 내민 나는 내 자리만 챙겼다. 사진사와 눈이 마주칠 때는 그나마 좀 더 나은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식장에서의 남편은 상당히 긴장한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었지만, 내 코가 석자라서 그를 신경 쓸 여유 따윈 없었다.

대망의 양가 부모님과의 인사 시간. 그제야 부모님이 보였고, 눈동자를 굴려 시선을 살짝 빗겨 보내 눈물을 뒤로 미뤘다. 좋아, 여기까지는 계획대로다. 울지 않기 위해 엄마 눈을 피하는 게 목표였다. 계획은 간단했다. 포옹은 짧게. 눈은 어깨로. 숨은 길게. 현실은 다르게 왔다. 어머님 품에 안기는 순간 눈물이 터졌다. 어머님도 울었다. 서로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메이크업은 살짜쿵 무너졌지만 표정은 편안해졌다.


좀 더 싹싹한 며느리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 시간이 떠올랐다. 미안함이 먼저 올라왔다. 항상 따뜻하게 대해 준 어머님이 떠올랐다. 고마움이 그다음에 올라왔다. 두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단단한 마음이 잠깐 비좁았다. 그래도 좋았다. 그 사이가 바로 가족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인사는 차례대로 이어졌다. 손은 작게 흔들었고 고개는 깊게 숙였다. 지나가고 나서 알게 된다. 성공적인 결혼식의 기준은 예쁨이 아니다. 그날의 목표는 하나였다. 완벽 말고 무사통과. 그 목표는 달성됐다.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내가 주인공인 날. 이날의 기록은 화려하진 않았다. 대신 정확했다. 비록 시작은 지퍼에 막혔지만 걸음은 지나갔다! 그걸로 충분조건 달성!


본식 직후, 바로 처리할 것들

식이 끝났다고 하루가 끝난 건 아니었다. 먼저 현장 결제부터 닫았다. 잔금 결제. 누락이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감사는 바로 보냈다. 가족에게 먼저 보냈다. 오늘 같이 서 주셔서 고맙다고 적었다. 그다음은 결혼식에 와준 사람들. 와줘서 고맙다. 덕분에 무사했다. 결혼식에 참석은 못했지만 축의금을 보내준 사람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마무리는 감사한 줄이다. 감사 한 줄이 제일 오래 남는다.


몸도 마무리를 시작했다. 드레스를 벗고 숨을 길게 폈다. 물을 마시고 당을 조금 보충했다. 친할머니 다음은 외할머니. 아이와의 짧은 재회를 마친 뒤 다시금 엄마에게 아이를 보냈다. 이제는 공적인 남편이 된 사람과 함께 우리의 보금자리로 돌아와 신발을 벗고 발을 눕혔다. 그래, 너도 나도 오늘 고생 많았다.


인생의 큰 산을 드디어 넘었다!


오늘의 기준과 오늘의 리듬과 오늘의 고마움. 내일은 다른 장이다. 오늘 밤 우리가 열고 닫은 캐리어는 그 장을 여는 시작이었다. 이제 닫는다. 내일은 우리만의 첫 휴식으로 넘어간다.


결혼식이 내게 알려준 것

관계는 문장으로 선명해진다. 청첩장은 부탁이 아니었고, 지금의 우리 사이를 확인하는 장치였다. 그래서 애매한 관계는 말없이 정리됐다. 덕분에 고마운 얼굴이 더 선명해졌다. 결혼식은 하루였지만 많은 장면이 몰렸다. 사진 속 어색한 나의 미소는 그날을 무사하게 보내기 위해 무던히도 버틴 증거다. 빈자리는 잠깐 아팠지만 앉아 준 자리는 오래 따뜻했고 마음은 거기에 머물렀다. 그리고 나는 약속을 가볍게 하지 않겠다. 했으면 꼭 지켜야지!


그리고... 결혼식은 생애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스토리를 두 번은 못하겠다.


다음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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