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탕생활도 쉽지 않다
지난 화에서 구리귀신은 평생 처음으로 요릿집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이제 부부 생활은 완전히 끝나고 방탕 생활이 시작된 거죠. 하지만 요릿집 문화를 전혀 모르는 구리귀신에게 방탕은 쉽지 않았습니다.
비에 젖은 우산과 구두를 벗지 못하고 방 안에 들어가려다 망신당하고, 모기가 있다고 "우리 집 뒷간만도 못하다"며 요릿집을 모욕했습니다. 그리고 꿈에서 본 산홍이를 찾겠다며 성씨도 모르는 채 "산홍이면 다 불러"라고 무리한 요구를 했죠. 그 결과 같은 이름의 산홍이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구리귀신을 당황하게 만들었는데요. 이번 화는 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이번 화의 내용을 이해하려면 먼저 식민지 시절 조선의 '인사상담소'가 무엇이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이른바 '문화통치'를 표방하며 사회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는데요. 1921년 총독부 내무국에 사회과가 신설되면서 각 도에도 내무부 사회과가 설치되었고, 빈민 구제를 넘어 '방빈(防貧) 사업' - 즉, 빈민을 만들지 않기 위한 예방 사업 - 이 시작됩니다.
이 방빈사업의 핵심 시설 중 하나가 바로 인사상담소(일종의 직업소개소)였는데요. 1920년 6월 평양에서 처음 공설 인사상담소가 설치된 것을 시작으로, 인천(1920년 8월), 원산(1922년 4월), 경성(1922년 8월), 신의주(1922년 8월), 부산(1923년 8월) 등 주요 도시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사상담소는 실제로 무슨 일을 했을까요? 1928년 <동아일보> 기사에는 경성부 인사상담소에서 일본인이 '조선어멈'을 고르는 광경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십여 명의 어멈이 늘어 안진 곳에 나타난 일본 남녀… 이것들 가운데에는 마음에 맛는 것이 업는 걸요 하면서 사무원에게 다시 부탁하는 사람도 잇섯고…"
'조선어멈'은 일제시대 일본인 가정에서 가사일을 돌봐주던 조선인 가정부를 가리킵니다. 1928년 당시 가난한 가정의 부녀자들은 한 달에 수백 명씩 경성부 인사상담소를 통해 취직했는데, 1927년 1년간 인사상담소 구직자 1788명 중 1007명이 일본인 가정에 취직했습니다. 즉, 인사상담소를 통해 취직한 사람들 중 대부분이 가정부(하인)로 일했던 것입니다.
고위 관직이 아닌, 하인 소개소
중요한 점은, 인사상담소가 결코 고위 관직자를 소개하거나 추천하는 기관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개인 집 하인을 소개하는' 인력소개소였죠. 당시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이 급속히 진행되는 속에서 구직자 수 증가에 비해 구인 수와 취직자 수는 늘어나지 않았고, 생활난과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인사상담소는 빈민들의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그럼 이 내용 기억하시면서 이번 화를 감상해 보실까요?
(1) 구리귀신이 슬며시 욕하는 바람에 그 많은 산홍은 토라져 나가
구리귀신: 너희가 다- 산홍이라지? 그러면 한 몸에서 나왔을 게니 대체. 네 부친은 도합 멧죽이나 되니. 응?
산홍1: 온 별소릴 다- 듣네. 왜 우리가. 개새끼인가.
산홍2: 자- 다들 가자-
앵돌아지다: '토라지다'의 방언(충청)
해석: 화를 내며 나가버린 산홍이들
구리귀신은 많은 산홍이들을 보고 "너희 아버지는 멧죽이나 되니"라며 모욕합니다. (정확한 뜻은 찾지 못했지만 산홍1이 "왜 우리가 개새끼인가?"라며 분노하는 것으로 보아 몇 마리처럼 짐승을 나타내는 단위인 듯합니다) 산홍2가 "자, 다들 나가자"며 화를 내고 돌아서 나갑니다. 구리귀신의 모욕에 분노한 기생들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2) 그때 구리귀신은 제 꾀를 제가 칭찬할 때
구리귀신: 내 수단도 이만하면..... 홍. 가는 건 좋지만 내가 모르는 소릴 했느냐. 꼭 옳은 말씀이지... 하하하..
산홍3: 온. 기생을 대대로 해 먹으니까 별 깡, 이 같은 (황당한) 소릴 다-들어.
해석: 반성 없는 자화자찬을 하는 구리귀신
기생들이 화를 내며 나가도 구리귀신은 전혀 반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한 말이 옳다고 자화자찬합니다. "내 수단도 이만하면 (괜찮은데)", "다 옳은 말이지"라며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죠. 자리를 떠나는 산홍3은 "기생을 대대로 해 먹다 보니 별소리를 다 듣는다"라며 말을 합니다.
(3) 정말 꿈에서 본 산홍이가 들어와서 어찌나 좋던지
보이: 산홍이는 이 분입니다.
산홍: 안령하서요. 늦어 미안합니다.
구리귀신: 이게 과연 꿈에서 본 산홍과 틀림없군. 흥...
해석: 드디어 나타난 진짜 산홍
드디어 구리귀신이 찾던 '진짜 산홍이'가 나타납니다. 보이가 정중하게 소개하고, 산홍이도 "안령하서요(안녕하세요). 늦어 미안합니다"라며 공손한 인사를 건넵니다. 구리귀신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이게 과연 꿈에서 본 산홍과 틀림없군"이라며 만족합니다. 앞서 여러 산홍이들을 모욕하고 내쫓은 것은 까맣게 잊고, 자신이 원하던 산홍이가 나타나자 단숨에 기분이 좋아진 모습입니다.
(4) 인사상담소에 도장관 부탁한 것까지 말하다가 또 코를 떼여(무안을 당하여)
구리귀신: 난 인사상담소에 부탁한 바, 미구에 도장관 후보인 성 구리귀신이야.
산홍: 얼써! 인사상담소는 개인집 하인만 소개하는 곳이라나. 흥
코를 떼다: 무안을 당하거나 핀잔을 맞다.
미구(未久): 얼마 오래지 아니함.
해석: 허세가 들통나고 코를 떼이는 구리귀신
기분이 좋아진 구리귀신은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나는 인사상담소에 미리 부탁해 둔, 머지않아 도장관 후보"라며 마치 곧 높은 벼슬에 오를 것처럼 허풍을 떱니다. 그러자 산홍이 단칼에 "얼씨! 인사상담소는 개인 집 하인만 소개하는 곳이라더군요"라고 받아칩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인사상담소는 실업자와 빈민을 위한 직업 소개 기관이었지, 고위 관직을 추천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산홍의 한마디에 구리귀신의 허세는 완전히 들통나며, 구리귀신은 또 한 번 코를 떼이며 망신을 당하게 됩니다.
방탕의 끝, 끝없는 자기기만
이번 에피소드를 보면서 웃음이 나오면서도 씁쓸했습니다. 구리귀신은 평생 처음으로 요릿집에 가서 방탕을 즐기려 했지만, 요릿집의 규칙도 모르고, 기생들을 모욕하고, 허풍을 치다가 계속 망신만 당합니다. 그런데도 구리귀신은 결코 반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고, 자기를 칭찬하며, 더 큰 허풍을 떱니다.
"내 수단도 이만하면 훌륭한데" "다 맞는 말이지"라며 자화자찬하는 구리귀신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익숙합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합리화로 일관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허풍으로 자존심을 세우려는 모습 말입니다. 산홍이가 '인사상담소는 하인만 소개하는 곳'이라고 팩트 폭격을 날리는 순간, 구리귀신의 허세는 완전히 무너집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또 다른 허풍과 자기기만으로 자신을 포장할 것입니다.
100년 전 경성의 구리귀신은 낯선 공간에서 끝없이 실수하고 망신당하지만, 결코 배우지 않습니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 사고에 갇혀, 타인을 모욕하고, 허세를 부리다가 무안을 당하는 모습은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 약점을 보여줍니다. 요릿집이라는 낯선 공간, 기생이라는 낯선 존재, 도시의 새로운 제도(인사상담소)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 방식대로만 행동하다가 연이어 망신을 당하는 구리귀신. 그의 방탕생활은 시작부터 허망한 끝을 예고하고 있는데요. 다음 시간에는 구리귀신의 방탕생활이 어떻게 이어질지, 또 어떤 망신을 당할지 함께 보시겠습니다.
조경희, 「1920년대 식민지조선 사회사업의 성격과 그 한계」, 『역사와 담론』 제80집, 2016.
유숙란, 「잊혀진 여성 '조선어멈' 그리고 '식모'」, 『여성신문』, 2008년 9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