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만화방] 구리귀신(14) 평생 처음 가본 요릿집

일제강점기 경성의 고급 유흥, 요릿집

by 심야초

1920년대 경성의 고급 유흥, '요릿집'이란?

요즘 남자들이 접대나 회식을 핑계로 룸살롱을 가듯이, 1920년대 경성의 권력자들과 부유층 남성들은 '요릿집(料亭)'을 찾았습니다.


요릿집은 한자로 요정(料亭)이라고 쓰는데, 일본어 りょうてい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어를 한국식으로 읽은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으로 들여온 문화였는데요. 단순한 음식점이 아니라 고급 음식과 술, 그리고 기생의 공연과 접대가 결합된 복합 유흥 공간이었습니다. 주색잡기에 빠진 사람들의 술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 접대 공간이었으니 온갖 음식에 술과 여자가 따랐죠. 오늘날의 룸살롱이나 유흥주점과 비슷하지만, 가격대는 훨씬 더 높았습니다.



경성의 대표 요릿집들

1920년대 경성에는 유명한 요릿집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곳은 명월관이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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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경성 명월관본점 현관 출처 : 수원광교박물관

1906년 지금의 동아일보 사옥 자리에 세워진 대한제국 최초의 궁중 음식 전문 요릿집이었습니다. 궁중 요리사 출신 안순환이 개업했고, 1918년 흥산 주식회사가 매수했다가 다시 이종구에게 넘어갔습니다.

이 외에도 국일관(1921년 종로구 종로 2가 관수동), 식도원(1922년 남대문), 태서관(공평동), 조선관(서린동), 천향원(인사동) 등 조선식 요릿집과 더불어 가게츠(花月, 화월이라는 뜻) 같은 일본식 요릿집들도 함께 영업했습니다.

이런 요릿집들은 대광간(큰 연회장)과 무대를 갖추고 있어서 대규모 연회가 가능했고, 기생들은 권번과 연계해 호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일부 요릿집은 객실 22개와 200명을 수용하는 연회실을 갖추고 종업원을 60명이나 두기도 했습니다.


요릿집의 가격은?

1930년대 경성 관광 안내에는 6인분 기준으로 1상에 6원, 9원, 12원 등급으로 가격이 매겨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공장 노동자의 일당이 58전, 월급이 20원 미만이었다는 걸 고려하면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었죠. 그래서 요릿집은 정재계 인사나 상류층 남성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고급 유흥 공간이었습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일본인 부유층들이 조선 궁중음식을 맛본다며 요릿집을 찾기도 했는데요. 이는 당시 유명 요릿집들이 궁에서 수라상을 만들던 대령숙수들을 영입해서 고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정정치의 무대

192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요릿집은 단순한 유흥업소가 아니라 정치인, 권력자, 기업인들이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며 접대를 하던 곳이었습니다. 이른바 '요정정치'의 무대였죠.

1943년에 발표된 한복남의 대중가요 <빈대떡 신사>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바로 요릿집입니다.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에 들어가서 요리를 먹었다가 돈이 없어 뒷문으로 도망치려다 주인에게 붙잡혀 매를 맞는다는 내용이에요. 후렴구가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릿집이 무어냐 기생집이 무어냐"입니다. 이 노래 가사만 봐도 당시 요릿집이 얼마나 비싸고, 또 기생이 있는 유흥의 장소였는지 알 수 있죠.

그런데 이런 고급 유흥 공간에 구리귀신이 평생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1925년 7월 14일, 원문으로 만나는 구리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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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귀신 (14) 부부생활《시대일보》1925.07.14


구리귀신(14) 부부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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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피한 여행을 하고 온 구리귀신은 백간집에서 혼자 한탄하다가

구리귀신: 제기(랄). 집이라고 쓸쓸도 하다. 비도 줄기차게 온다. 심심도 하니 생전 처음 료리집에 가서 놀아나 볼까?


백간(百間) 집: 100개의 칸을 가진 규모. 큰 대저택을 뜻하는 관용적 표현.


해석: 텅 빈 집에서 홀로 있는 구리귀신

망신스러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구리귀신. 넓고 큰 집(백간집은 100칸짜리 대저택을 뜻하는 과장된 표현인 듯 합니다)에 혼자 있으니 더욱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밖에는 비까지 줄기차게 내리고요. "평생 처음으로 요릿집에나 가볼까?" 하고 혼잣말을 합니다. 구리귀신 같은 구두쇠가 비싼 요릿집에 간다니, 그만큼 외롭고 심심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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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척도 보이지 않는 우중(雨中)에 료리집 거동을 우산 하나로

구리귀신: 꿈에 본 산홍이가 정말 있을까? 허청대고 불러보지. 꼭 있었으면.


허청대다: `허정거리다(다리에 힘이 없어 잘 걷지 못하고 비틀거리다)'의 거센말


해석: 폭우 속 요릿집으로 향하는 구리귀신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비가 퍼붓는 가운데(우중), 구리귀신은 우산 하나만 들고 요릿집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산홍이는 지난 회차에서 여러 번 나왔던 여성의 이름인데요. 구리귀신이 환상처럼 생각하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요릿집에 기생이 있으니 혹시 그 산홍이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모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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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료리집을 들어서자 보이들이 손들을 짝짝 벌리니

보이1: 고안나이(ご案内).

보이2: 고안이.

구리귀신: 고것 안내? 라니. 들어갈 때면 돈 받소? 대체 얼마요?


ご案内(고안나이): ‘안내(모시겠습니다)’라는 의미의 일본어 접객어

보이: 하우스 보이, 접객남종을 뜻하는 당대 표현


해석: 일본어 인사를 오해한 구리귀신

요릿집 문턱을 넘자, 보이들(접객을 담당하는 남종)이 손뼉을 치며 "고안나이!"하고 맞이합니다. ご案内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뜻의 일본어 접객 인사말인데요. 구리귀신은 이걸 '안내료'를 요구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 '안내'라는 게 뭐요? 들어갈 때 돈을 받는다는 말이오? 도대체 얼마요?" 하고 묻는 모습이 정말 웃깁니다. 일본어 접객 문화를 잘 모르는 구리귀신의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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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료리집에 들어갈 때는 보이에게 돈을 주는 것이 힌법식인 줄 알았다

구리귀신: 텅구리 자네가 료리집 현관에서 손 벌리게 되었으니 벌써 거지가 됐나. 자- 십 전이니 나눠 갖게.

보이1: 그게 뭔지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해석: 입장료로 착각하고 돈을 건네는 구리귀신

구리귀신은 요릿집에 들어갈 때 보이에게 돈을 주는 것이 '힌법식(합법식인 듯 합니다)'인 줄 착각했는데요. "텅구리(보이의 이름인 듯), 자네가 요릿집 현관에서 손을 벌리게 됐다니 벌써 거지 신세가 된 건가? 자, 십 전이니 나눠 가지게." 하며 동전을 건넵니다. 보이는 당황하며 "그게 뭔지 잘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답하는데요.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하는 당황스러움을 표현하는 것 같네요.


100년 전 문화적 오해

이번 에피소드를 보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건, 일본어 접객 인사를 안내료로 착각하는 구리귀신의 모습이었어요. 1920년대는 근대화가 급격히 진행되던 시기였고, 일본 문화가 많이 들어왔던 시기였잖아요. 그래서 경성의 요릿집에서는 일본어 인사말이 자연스럽게 쓰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구리귀신처럼 이런 신문물과 외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겠죠. "평생 처음 가본 요릿집"이라는 제목처럼, 그에게는 모든 게 새롭고 당황스러운 경험이었을 겁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새로운 문화와 관습 앞에서 때로 당황하고 오해하곤 합니다. 구리귀신의 실수가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공감이 가는 이유죠.

다음 시간에는 구리귀신이 요릿집 안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함께 보시죠!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539876&cid=69239&categoryId=42967

https://ncms.nculture.org/legacy/story/2943

http://www.financialr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132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93788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006071266005383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02/2015070202069.html

https://www.youtube.com/watch?v=Z2whrYx-wYw

https://m.monthly.chosun.com/client/amp/viw.asp?ctcd=F&nNewsNumb=201611100064

1930년대 세태소설에 나타난 경성부민(京城府民)의 식생활 문화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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