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방탕생활
지금까지 구리귀신은 '부부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습니다. 아내 억척이와의 갈등, 불륜, 화재 사건, 유치장 수감까지... 모든 에피소드가 '부부'라는 틀 안에서 벌어졌죠. 하지만 이번 회차부터 제목이 바뀝니다. 바로 '방탕생활'입니다.
방탕(放蕩)이란 말은 '명사 주색잡기에 빠져 행실이 좋지 못함', '마음이 들떠 갈피를 잡을 수 없음'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아무래도 첫번째 의미를 뜻하는 거겠죠? 구리귀신이 드디어 아내의 그늘에서 벗어나 평생 처음으로 요릿집에 발을 들여놓았고, 그곳에서 기생을 부르며 유흥을 즐기게 됩니다. 1920년대 구두쇠 영감이 비싼 요릿집에서 돈을 쓰며 방탕한 생활을 시작한다니, 이것만으로도 큰 사건이죠.
그렇다면 구리귀신의 요릿집 첫 경험은 어땠을까요? 과연 무사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고대하던 산홍이를 만날 수 있을까요?
(1) 그 알뜰한 구두와 우산이 못이저들고 들어가다가 또 망신당하고
보이1: 이-그 온 방안에. 더군다나 비가진 우산과 구두가 웬일입니까?
보이2: 그건 못 합니다.
구리귀신: 응. 그래.
못이저들다: 정확한 뜻을 찾지 못했으나 맥락상 못 벗고로 해석
해석: 요릿집 규칙을 모르는 구리귀신
평생 처음 요릿집에 온 구리귀신은 비에 젖은 우산과 구두를 그대로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당연히 보이들이 난감해하며 막죠. "그건 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에 구리귀신은 어쩔 수 없이 "응, 그래" 하고 따르지만, 이미 한 번 망신을 당한 상태입니다. 고급 유흥업소의 규칙을 전혀 모르는 어설픈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네요.
(2) 비가 와서 모기가 방안에 든 것을 치(우)-라고 호령을 하고는
구리귀신: 이건 료리집에 모기가 웬일이야. 우리 집 뒷간만도 못하군. 얘들아 얼른 모기 치워라-
보이: 네-이.
해석: 고급 요릿집을 무시하는 구리귀신
방 안에 모기가 있다는 이유로 구리귀신은 요릿집을 "우리 집 뒷간만도 못하다"라고 깎아내립니다. 고급 유흥업소라는 요릿집을 뒷간과 비교하다니, 정말 무례한 발언이죠. 하지만 구리귀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보이들에게 모기를 쫓으라고 명령합니다. 요릿집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구리귀신의 당돌함이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입니다.
(3) 보이가 부를 기생의 이름을 물으니 꿈에 본 기생의 성(姓)을 (어떻게) 알 것인가
보이1: 산홍이를 부르라 하시니 그 많은 산홍이 중에 그 누군지 성(姓)을 알아야지요.
구리귀신: 그놈 별소릴 하는구나. 어쨌든 산홍(이)만 불러.
보이2: 어쨌든 산홍이면 다- 부르겠습니다.
해석: 성씨도 모르면서 기생을 부르는 구리귀신
구리귀신은 꿈에 본 '산홍이'를 찾고 있지만, 정작 그 기생의 성씨는 모릅니다. 보이가 "산홍이가 많은데 성씨를 알아야 한다"라고 설명하지만, 구리귀신은 그 말을 무시하고 "산홍이면 다 불러"라고 무리한 요구를 합니다.
이름만 같으면 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구리귀신의 단순함이 드러나는 장면이네요.
(4) 산홍이만 부르란 말에 보이는 서울에 산홍이란 기생은 모조리 불러
산홍1: 안령하세요.
산홍2: 안령하십니까
산홍3: 안령.
산홍4: 태평하세요.
구리귀신: 무엇! 이게 다- 산홍이냐?
해석: 예상치 못한 결과에 놀라는 구리귀신
구리귀신의 무분별한 명령 때문에 '산홍'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생들이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산홍이 1, 2, 3, 4... 여러 명의 산홍이들이 차례로 인사를 건네자 구리귀신은 깜짝 놀라 소리칩니다. "뭐! 이게 다 산홍이라고?"
당시 '산홍'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흔했는지를 풍자하는 코미디 장면입니다. 구리귀신은 자신이 원하던 단 한 명의 산홍이를 찾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수많은 산홍이들을 동시에 만나게 된 거죠.
이번 에피소드를 보면서 웃음이 나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습니다. 구리귀신은 평생 처음으로 요릿집에 가서 자유와 방탕을 즐기려 했지만, 요릿집의 규칙도 모르고 기생의 이름만 알고 성씨도 모르는 등 계속 망신만 당합니다. 새로운 문화와 낯선 공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겪는 어색함과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나죠.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처음 가는 곳에서 실수하고 당황합니다. 구리귀신의 실수가 웃기면서도 공감이 가는 이유죠.
다음 시간에는 구리귀신이 과연 자신이 찾던 산홍이를 찾을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소동이 벌어질지 함께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