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만화방] 구리귀신(13) 동경이를 아시나요?

일제강점기 시절 멸종한 개가 있다?

by 심야초

여러분은 반려동물을 키우시나요? 저희 집 본가에서는 시츄 2마리를 반려견으로 키우고 있답니다. 2012년생이니까 벌써 노견이 다 되었네요. 지금은 백화점이나 호텔, 펜션, 애견 카페 등 반려동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 참 많죠? 심지어 요즘은 유치원에도 가더라고요 :) 아무튼 이런 반려동물 문화가 길지 않은 것 같지만요. 실은, 우리 조상들도 예로부터 개를 가족처럼 아꼈습니다.


우리 조상들과 개


kc_r300745.jpg 오주연문장전산고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개를 정성스럽게 키우는 방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19세기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개가 여위고 힘이 없으면 미꾸라지 한두 마리를 먹여주고, 생 흑임자를 개 발에 바르고 비단으로 싸주면 천 리를 갈 수 있다"며 개 키우는 방법을 소개했는데요. 오늘날 개를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죠.


조선시대 왕들도 개를 사랑했습니다. 연산군은 강아지 턱 밑에 방울을 달아 놀라 뛰는 모습을 재미로 여겼고, 궁궐 안에서 사냥개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정도로 개를 많이 키웠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우리 민족과 개의 인연은 아주 깊습니다. 특히 신라시대부터 사육된 것으로 추정될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 토종견도 있는데요. 바로 '동경이'라는 이름의 개입니다.


꼬리 없는 개, 동경이를 아시나요?

64292A0563284C7C9CE507308A9F102D.jpg 동경이 출처: 경주시청

동경이는 경주의 옛 지명 '동경(東京)'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꼬리가 짧거나 아예 없고 귀가 앞을 향해 쫑긋하게 솟은 것이 특징인 강아지인데요. 신라 고분군에서 꼬리가 짧은 개 모양의 유물이 출토된 점을 고려하면, 5~6세기 신라시대부터 사육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헌상으로는 조선 순조 때 간행된 '증보문헌비고'에 "동경(경주의 옛 지명)의 지형은 머리만 있고 꼬리가 없는 형상인 까닭에 그곳에서 태어난 개는 꼬리가 없는 것들이 많았다. 그리하여 속언으로 꼬리가 없는 개를 '동경개(東京犬)'라고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동경이는 온순하고 친화력이 강한 성격이 특징인데요. 낯선 사람을 봐도 함부로 짖지 않고 잘 따를 정도로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강아지죠. 특히 꼬리가 짧다 보니 반가울 때 꼬리를 흔드는 대신 엉덩이를 흔드는 모습이 정말 귀엽습니다.


1930년대, 동경이에게 닥친 비극

그런데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동경이가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일제는 전쟁 물자 공급을 목적으로 견피, 즉 개가죽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방한복과 군용 장갑 등을 만들기 위해 개들을 잡아들였는데, 특히 동경이는 집중적인 학살의 대상이 되었어요. 기록에 따르면 대동아 전쟁 중 연간 30~50만 마리의 조선 개들이 죽임을 당해 가죽이 벗겨졌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은 "꼬리가 짧아 기형이다", "재수 없다"는 황당한 이유로 동경이를 처참하게 학살했습니다. 심지어 일본인들이 숭배하는 성스러운 동물 조각상 '고마이누(狛犬)'와 닮았다는 이유로 천대받기까지 했어요. "식민지에서 고마이누와 닮은 동물이 뛰어다닐 수 없다"는 게 일본인들의 주된 논리였습니다.

총독부는 백정들에게 '야견잡이 권'을 주고 개를 잡게 했고, 집에서 기르는 개도 일본인이 키우는 개와 교배시킨 표가 없으면 끌고 갔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집에서 기르는 개에게 표를 다는 것을 우습게 여겨 "죽은 개의 피가 강을 이루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한국의 토종개들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습니다.

이런 끔찍한 학살로 인해 동경이뿐만 아니라 삽살개, 제주개 등 우리 토종개들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해방 후에는 거의 자취를 감출 정도였습니다.


복원을 향한 노력

다행히 1990년대 들어 경주시와 학계가 복원 사업을 시작했고, 2006년 환경운동가 최석규 교수가 '한국경주개동경이보존협회'를 설립하며 동경이 복원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경주시와 협회가 함께 혈통 보존 육성 사업을 추진한 결과, 2010년 한국애견협회는 동경이를 '대한민국 토종견 4호'로 등록했고, 2012년에는 천연기념물 제54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경주시는 동경이 혈통 복원 및 육성을 위한 DNA 분석은 물론 혈통관리, 사양관리, 사육시설 등을 지원하며 동경이 보존에 나서고 있습니다. 현재 수백여 마리가 사육 중인 것으로 알려졌어요.

일제강점기 시절 끔찍한 학살을 당했던 만큼, 이제는 우리가 더 많이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1920년대 기차 안, 개와 사람

오늘 만화에서는 화물칸에 실린 개 한 마리와 구리귀신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당시 기차에는 '동물은 화물칸'이라는 규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도 신분이나 형편에 따라 화물칸에 실렸고, 개도 마찬가지였던 거죠. 함께 보실까요?


1925년 7월 13일, 원문으로 만나는 구리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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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귀신 (13) 부부생활《시대일보》1925.07.13


구리귀신(13) 부부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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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래저래 피로한 몸을 고간차에 슬며시 뉘었을 때

구리귀신: 억척이 아니었으면 이런 봉변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그것을 쌀 석 삼만 주어서. 아주 보내 버리지.


해석: 화물칸에서 잠이 든 구리귀신

지난 시간, 곡간차(화물칸)로 쫓겨난 구리귀신. 화물칸 한편에 몸을 눕힙니다. 피곤에 지쳐 잠이 들면서도 "억척이 아니었으면..." 하고 중얼거리는 게, 모든 게 아내 탓이라는 투덜거림이 섞여 있네요. "쌀 석 삼만"이라는 표현은 아내에게 들인 비용을 과장해서 말하는 구리귀신 특유의 허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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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음 정거장에서는 개를 동물이라고 하여 화물칸에 집어넣으니

구리귀신: 쿠루-룩. 씩 쿠루-룩. 씨-


해석: 화물칸에 실린 개

다음 정거장에서 개 한 마리가 화물칸에 실립니다. 당시에는 '동물은 화물칸'이라는 규정이 있었나 봐요. 구리귀신은 계속 코를 골며 잠들어 있고, 개는 조용히 화물칸 안에 자리를 잡습니다. 사람도, 개도, 똑같이 화물 취급을 받는 화물칸. 둘은 같은 공간에서 체온을 나누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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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속에 산홍이 대신 그 개가 구리귀신의 팔을 베고 잠들었을 때

구리귀신: 쿠루-룩. 씨-ㄱ. 산홍이 몸은 어쩌면 이렇게 고루 이쁠까? 고것 참 보들도 하지. 히... 쿠루룩, 쿠-ㄹ


해석: 개를 산홍이로 착각하는 잠꼬대

잠든 사이, 개가 구리귀신의 팔에 머리를 기댑니다. 구리귀신은 꿈속에서 이걸 산홍이로 착각하고 "몸이 고루 이쁘네, 보들보들하네" 하며 잠꼬대를 합니다. 개의 부드러운 털을 만지면서 꿈속에서 위안을 받고 있는 거죠. 피곤하고 상처받은 마음이 따뜻한 체온 하나로 잠시 위로받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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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눈 떠본 구리귀신은 제 신세가 개 팔아 석 양반임을 슬퍼하였다

구리귀신: 제기(랄). (내) 팔자도. 마누라를 얻어도 그 모양. 차를 타도 고간차(화물칸). 개하고나 같이 타고. 양반이 개 팔이 석냥 반이 되었구나... 하늘도 무심하지.


조선개 팔아 두 냥(兩) 반(半) : 개를 팔아 두 냥 반을 받았으니 양반(兩班)은 한 냥 반으로 개 한 마리 값만도 못하다는 뜻으로 못난 양반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해석: 현실을 깨닫고 자조하는 구리귀신

눈을 떠보니 꿈속의 산홍이는 개였습니다. 구리귀신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양반이 개파리 석냥반이 되었다"라고 자조합니다. '개파리 석냥반'은 표현은 찾아보니 개 팔아 두 냥 반이라는 표현이 있더라고요. 양반이 개 한 마리만도 못 하다는 뜻이라고 하는데요. 양반이라는 체면이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의미겠죠. 마누라는 바람을 피웠고, 본인은 화물칸에서 개와 함께 자고... 모든 게 억울하고 한탄스러운 구리귀신의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따뜻했던 건 착각이 아니었다

이번 에피소드를 보면서, 참 씁쓸하면서도 따뜻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리귀신은 화물칸에 실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만, 그 순간 곁에 있던 개는 그에게 진짜 위로를 건넸습니다. 비록 꿈속에서 착각했지만, 따뜻한 체온과 보들보들한 털의 감촉은 진짜였으니까요.

1920년대, 개는 사람 곁에 가까이 있었지만 동시에 '화물'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30년대 들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 토종개 동경이는 "꼬리가 없어 재수 없다"는 황당한 이유로 씨가 마를 정도로 참혹한 학살을 당했죠.


하지만 그 시절에도, 지금처럼, 개는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 존재였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반려견이라는 말을 쓰며 개를 가족처럼 대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건, 따뜻한 체온이 주는 위로의 힘인 것 같아요. 동경이처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멸종 위기에 처했던 우리 토종견들이 이제는 보호받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https://ilo-kitchen.com/

https://www.newstop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1577

https://m.animalplanet.co.kr/contents/?artNo=39719

http://www.koreatimes.com/article/1264526

https://www.woollimkorea.net/beginning-of-woollim/view.jsp?sno=240

https://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24704

https://kgukubooki.cafe24.com/series/?mod=document&uid=869

이선필, 『독한 세계사: 개를 사랑하는 이를 위한 작은 개의 위대한 역사, 은행나무(2020)

곽희원 외, 『조선의 은밀한 취향』, 인물과 사상사(2021)

신영주,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동물 애호와 문학적 형상, 『東方漢文學』제61집(2014)

황원경 외,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 KB경영연구소(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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