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바로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만...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하나씩 툭툭 비밀을 털어놓는 태도였다.
처음에는 “사실 저... 탈모가 있어요.”라며 조심스럽게 털어놓더니, 어느 날은 “주식으로 꽤 날렸어요. 그래도 지금은 안 해요” 하고 웃었다. 또 한 번은 “내가 지금 돈은 없지만 연봉이 이만큼은 됩니다.", "몇 년 전 LH 임대를 넣었는데 당첨되었어요. 그동안의 추세대로라면 지금 순번으로는 2년 정도 뒤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라며 진지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이 사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만날 때마다 새로운 정보들이 쏟아지니 나름 재미도 있고(?) 오늘은 또 무슨 비밀을 털어놓을까 도파민이 터지기도 했다.
집이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
그렇게 툭툭 비밀을 나누는 사이, 어느새 우리는 후루룩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누구네처럼 오랜 계획이나 신중한 결정 없이, 이 사람과는 뭐든 속도가 붙고 그냥 착착 진행되는 기분이었다. 프러포즈, 식장, 어머님과의 만남... 뭔가 하나씩 정확히 정해 가는 게 아니라, 만날 때마다 새로운 정보와 돌발 상황이 생겼다. 그리고 바로 그 돌발 상황의 하나가, 예상보다 빨리 굴러온 신혼집 입주였다. 2년은 기다려야 된다던 그 집에 갑자기 들어가게 된 것이다.
서류며 식은 다 미정인데, 순식간에 입주일이 다가왔다. 일단 결혼 날짜를 서둘러 잡았고, 1년 정도 같이 살다가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결혼식 준비보다 혼수 준비를 (그것도 급하게) 더 먼저 하게 되었다. 일하면서도 없는 시간을 쪼개 매일 밤을 새우며 혼수 리스트를 짜고 보러 다니고 포기하고 예약하고 카드를 긁고 또 보러 다니고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며 혼수용품을 준비했고, 시간이 부족한 우리는 대부분을 인터넷에서 구매했다.
그렇게 어느새 다가온 입주 당일.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일주일 먼저 입주했고, 그 뒤에 내가 들어갔다.
내가 입주한 첫날, 침대도, 밥솥도 채 세팅 안 된 신혼집에서 하루 종일 짐 정리만 하다 지친 우리는(남편은 나에게 짐이 왜 이렇게 많냐며 화내기도 했다)
“고생했으니 맥주 한 잔 하자!”는 공통된 의견에 따라 동네 맥줏집으로 향했다. 그곳의 이름은 <달빛맥주>.
맥주잔을 부딪히며 “이게 신혼인가?, 전우인가?”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TMI_남편은 실제로 직업군인 출신이다) 막상 그날은 피곤해서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짐과 싸우다 맥주 마신 기억만 있을 뿐.
그 뒤로 일에 치여 바쁜 하루를 보내던 나의 생활은 그대로였고, 플러스로 예약한 가구를 차례차례 받고, 닦고 쓸고 짐을 정리하고 지쳐 쓰러지는 일상이 더해졌다. 신혼이란 이런 걸까 싶었다.
아이가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났을까. 추석이 찾아왔다. 아직 결혼식은 올리기 전이었지만 예비부부였던 우리는 양가에 첫인사를 다녀왔다. 그런데 늘 정확하던 루틴이 며칠이 늦었다. 특별히 속이 더부룩하다거나 소화가 안 된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추석 때 과식(?)하기도 했고 살짝 피곤해서 그런가 정도로 넘겼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신 테스트기를 해봤다.
허어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남편이 다가왔다. "왜? 진짜 임신이야??" 정말 드라마 같은 순간이었다. 테스트를 하자마자 너무 선명하게 드러난 빨간 두 줄은, 누가 봐도 확실한 임신이었다. 나는 남편의 물음에도 대답을 못하고 한참 얼떨떨한 채로 임신 테스트기만 들여다봤다. 결과를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임신을 한 것이다. 내가? 정말? 임신이라니?!
아니 그럼 어떡하지 결혼 예정일이 내년 6월인데 동생 결혼식이 10월이라 결혼식을 당길 수도 없고 아이는 5월이 출산 예정일이라 그럼 식을 미뤄야 하는데... 아이를 낳고 식을 해야 한다고? 직장 동료들에게는 또 뭐라고 하지, 일은 어떻게 하지. 그럼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신혼집 첫 입주, 그 첫날의 외식이 이렇게 빠른 소식으로 이어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맥줏집 이름이 하필 <달빛맥주>라, 태명은 ‘달빛이’가 될 뻔도 했고, '한방이'가 될 뻔도 했다.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해도 바로 콩콩이(연애할 때 미래의 아이를 부르던 애칭)가 생기진 않을 수 있다. 결혼하면 영양제도 잘 챙겨 먹고 운동도 하자고 했던 대화가 무색하게도 우리는 바로 아이를 가졌다.
그렇게 우리는 신혼집 입주를 먼저 했고, 아이를 낳았고, 예식을 제일 나중에 했다. 식을 올리기도 전에 부모 준비를 먼저 시작한 예측 불가 순망진창 결혼 생활. 그날 이후 남편과 나는 매뉴얼 없는, 인생의 새로운 챕터에 들어섰으며, 태명은 콩콩이로 최종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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