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때문에 퇴사했습니다

호르몬의 노예가 된 방송작가의 생존기

by 심야초


입덧이 이런 거였어?

콩콩이 소식을 듣고 며칠 뒤, 보건소에서 임산부 배지를 받고 나서야 '아, 이제 정말 임산부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그 순간부터 뭔가 달라진 기분이었다. 이걸 보면 누구나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설렘도 잠시, 곧 지옥이 시작되었다. 내가 냄잘알 개코가 된 것이다. 입덧이라는 이름으로.


사실 그전까지 입덧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가끔 밥 먹다 '욱' 하는 정도? 좀 울렁거리는 거겠지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밥을 먹다가 이상함을 느꼈다. 평소 좋아하던 음식이 갑자기 역겨웠다. 처음엔 '어? 뭐지?' 싶었는데,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냉장고 근처만 가도 역했고, 길 가다가 맡는 음식 냄새들이 하나둘씩 불쾌해졌다. 심지어 치약덧, 남편덧까지... 내가 이렇게 냄새를 잘 맡을 수 있던 사람이었다니! 근데 왜 냄새만 맡으면 토하는 건뒈?!


호르몬, 니가 뭔데 날 울려?

입덧이 시작되자 몸무게가 쑥쑥 빠지기 시작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근 세 달간 밥을 거의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겨우겨우 입에 들어가는 건 과일 몇 조각이나 참크래커 같은 과자 정도가 전부였다. 먹은 게 없어 매일같이 위액을 토해댔다.

게다가 잠은 미친 듯이 쏟아졌다. 오후만 되면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아니 나 이런 건 드라마에서 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완전히 호르몬의 노예가 되었다. 토하고 자고 토하고 자고를 반복했다. 하지만 방송작가의 일정은 그런 내 몸 상태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방송일은 항상 똑같은 요일. 마감은 언제나 정시에 찾아왔고, 회의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출근길 = 고문길

당시 나는 투잡을 하고 있었다. 공연 프로그램과 건강 프로그램, 두 곳을 오가며 일했다. 출근이 진짜 고행이었다. 버스만 타면 말 그대로 토했다. 그래서 가방에 위생봉투를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토하는 게 부끄러웠는데, 나중에는 그냥 무덤덤해졌다.

심지어 토하는 노하우도 생겼다.(이런 노하우... 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하철도, 자차도 버스보다 덜할 뿐 마찬가지였다. 지하철이 이렇게 다양한 냄새가 있는 곳일 줄이야.

그래서 나는 입덧약을 항상 달고 다녔다. 지금은 건강보험이 적용된다고 하던데, 당시에는 한 알에 약 2천 원 정도의 사악한 가격이었다. 그걸 장장 세 달 정도 먹었으니 첫 만남 이용권의 대부분은 이 입덧약과 입덧 수액에 쓰였다. 팔에 바늘을 꽂고 누워서 링거액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면서 '이게 맞아? 임신이 원래 이런 거라고?! '싶었다.


한 프로 두 임산부

그런 상황에서도 웃긴 일이 있었다. 건강 프로그램에 나와 비슷한 시기에 선배언니가 임신한 것이다. 결혼한 이는 드물고, 하물며 임신은 더더욱 드문 이 바닥에서 한 프로그램에 임산부가 둘이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예전 막내 시절에도 나만 빼놓고 선배 언니들이 다 기혼자이거나 예비부부였는데 혹시 이런 나... 큐피드의 요정일지도...?)


그런데 선배 언니는 입덧이 별로 심하지 않았다. 촬영할 때 우리는 늘 김밥을 먹었는데, 냄새만 맡아도 토했던 나와 달리 그 언니는 "나는 그냥 좀 속이 더부룩한 정도야"라고 하면서 김밥도 잘 먹었다. 부럽기도 하고 정말 입덧은 복불복 케바케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음에는 김장 편이에요

그런데 이런 상황이니 회사에서도 눈치가 보였다. 갑자기 일어서서 화장실로 뛰어가거나, 회의 중에 창백한 얼굴로 앉아있으면 동료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괜찮아?" "물 마실래?" 하며 배려해 주는 마음은 고마웠지만, 그럴수록 더 미안했다. 생각해 보면 그래도 참 인복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다음에는 김장 편이에요.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김장이라니. 배추, 마늘, 생강, 고춧가루, 젓갈... 그 모든 냄새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상상만 해도 속이 뒤틀렸다. 평소라면 군침이 돌았을 텐데, 지금은 완전히 공포였다. 집에 가서 남편에게 말했다.

"건강 프로그램 그만둘 것 같아."
"왜? 무슨 일 있어?"
"김장 편 한다고 하는데, 진짜 못하겠어. 냄새만 생각해도..."

남편은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일인데, 그 정도면 참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 말에 순간 서운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참으라'는 소리를 듣다니. 하지만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임신 전에는 입덧이 이렇게 심각한 건지 몰랐으니까.


결국 건강 프로그램은 그만두게 되었다. 언니도 같은 입장이니 쉽게 이해해 줬다.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래도 공연 프로그램은 시즌제였기 때문에 마지막

촬영까지는 어떻게든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몇 달만 참으면 되는데 일을 내팽개칠 수는 없었고 무엇보다 프리랜서에게 일을 그만둔다는 건 수입이 바로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버텨라! 이 순간도 언젠가는 끝날 지어니

그 후 몇 주간은 정말 생존기였다.

출근길에 버스 안에서 토를 참으면서 '제발 다음 정류장까지만' 하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도착해서도 컨디션은 이미 나락 of 나락. 일이 제대로 될 리도 만무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하며 웃어넘기려 했지만 속으로는 매번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죄송했다. 친구들이 "임신 축하해!" 하며 축하해 줄 때도 속으로는 '이게 축하받을 일인가' 싶었다.


남편도 시간이 지나면서 내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점점 알게 되었다. 어느 주말 하루 종일 자고 토하며 침대와 화장실을 오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특히 위액을 토하는 내 모습을 보며) "진짜 많이 힘들구나" 하는 걸 느끼는 것 같았다. (그걸 꼭 눈으로 봐야만 아냐고! 참 괘씸해!) 그 후부터는 더 세심하게 챙겨줬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몇 달이 지나 대망의 16주가 지나자 다시 체중은 증가하기 시작했다.

만세!




임신은 정말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책에서 읽은 것처럼, 주변에서 들은 얘기처럼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경험은 나에게 적용되지 않다는 것.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이렇더라, 저렇더라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나 스스로 돌파해나가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생존'에 가까웠던 시기 같다. 하루하루 버티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냈고, 비실이가 되어가는 엄마와 달리 콩콩이도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입덧이 끝나갈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뭔가 해냈구나.'

완벽하지 않았지만,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뭔 쌉 소리야!라고 생각했지만 "그때가 제일 좋을 때다", "즐겨라!"라는 말도 너무나 맞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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