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낯설다, 그래서 나는 과거를 보기로 했다.
공대생이 성공하는 길은 뻔하다.
창업이 아니면 취업.
도윤은 창업을 택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택할 수 없었다.
무언가를 발명하거나,
남들보다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특히, 창업은 노력을 넘어선 자본과 경영이라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이론을 다질 생각도 없었다.
그는 빠르게 일을 시작하고, 돈을 벌고, 세상을 배우고 싶었다.
무언가를 직접 끌고 가기보다는,
이미 커다란 판 위에서 움직이며
그 흐름을 몸으로 겪고 싶은 욕구가 더 컸다.
그래서 도윤은
가능한 한 가장 큰 판에 들어가기로 했다.
글로벌 기업에서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입사 초기,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나서지는 않았다.
그저 본질을 먼저 파악하고, 구조를 이해하려 했다.
어떻게 일하는가 보다,
왜 그렇게 일하는 가에 먼저 관심이 갔다.
초기 적응은 어려웠고 오히려 천천히 속도를 끌어올렸다.
그 무렵, 신입사원 연수 마지막 주차.
서울의 한 국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특강을 하러 왔다.
강의 주제는 ‘수출 산업과 환율의 관계’.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말도 빠르고 농담도 잘했다.
하지만 그 안엔, 정곡을 찌르는 통찰이 숨어 있었다.
“여러분이 입사한 이 회사가 지금 잘 나가는 이유?
그건 여러분의 선배들이 잘해서기도 하지만,
운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환율 그래프를 보세요.
5년 전, 10년 전엔 달랐습니다.
외부 환경이 여러분의 실적을 도와주는 시대예요.
하지만 그건 바뀔 수 있습니다.
바뀌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여러분 잘못이 아니어도,
여러분의 책임이 될 수 있어요.”
그 한 문장이 도윤의 시야를 뒤흔들었다.
“아, 잘 나가는 것도 내 덕이 아닐 수 있다.”
그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느꼈다.
세상은 내 노력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이 흐름은 언젠가 바뀐다.
결국 이러한 흐름에 잘 올라탄 것도 하나의 기회라는 것을 배웠다.
입사 2년 차에 도윤은 다른 공부를 시작했다.
경제 기사, 환율 동향, 글로벌 경기 사이클,
10년 전 뉴스를 거꾸로 읽고,
20세기 세계 경제사를 훑기 시작했다.
네이버 뉴스에서 주요 경제 이벤트의 변곡점에서 나온 기사를 모조리 찾아봤다.
그때 당시의 시장 분위기는 어땠는지, 어떤 자극적인 환경이 조성이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러한 어려운 과정에서도 큰 부를 이루었을 사람들도 상상해 봤다.
사실, 도윤은 연수초기 교수님의 이야기도 어느덧 잊고 살다가 다시금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다.
그냥 평생 잊고 지나갈 수 있는 1시간짜리 강의였지만 그를 자극하는 트리거가 된 것이다.
닷컴버블, IMF, 서브프라임, 오일 쇼크,
그리고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까지.
도윤에게 경제란,
투자의 기술이 아니라,
세상의 원리를 꿰뚫는 훈련이었다.
“미래는 낯설다.
그래서 나는 과거를 보기로 했다.”
그는 깨달았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세상은 성장한다.
인플레이션이 있다.
물가는 오르고, 화폐가치는 하락한다.
신용 화폐의 본질은 ‘신용’이며,
그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
근로자들이 더 일하게 만들 동기가 필요하다.
결국, 정책은 ‘자극’이어야 하고
세상의 시스템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원리와 공식들은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건 각자가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인생의 숙제였다.
그리고 도윤은 느꼈다.
이 본질을 이해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사회에 나온 이후의 갈림길이 완전히 달라진다.
도윤은 몹시 떨렸다.
공부를 하고 들여다보면 볼수록 어렴풋한 밑그림이 보이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1라운드는 학교에서 취업을 준비했고,
2라운드는 회사에서 급여를 받고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 3라운드는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시작되었다.
3라운드는 100년 이상의 역사 속에서 펼쳐진 거시경제를 읽고 이를 분석하여
그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세상을 확장하는 과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