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삶의 틀은 나를 확장시키지 못했다
도윤은 입사 1년 차가 끝날 무렵,
올해 받은 월급을 모두 더해봤다.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아니, 적은 돈은 아니지만 10년 뒤가 사실 그려지지 않았다.
입사 전엔 꽤 큰돈처럼 느껴졌던 연봉이,
실제로 살아보니 그저 적당히 써버리면 끝나는 정도였다.
헬스장을 등록하고,
어깨 통증 때문에 병원을 다니고,
학원을 다니고 옷을 사고,
주말엔 가끔 여행도 다녀왔다.
생활은 괜찮았다.
크게 부족하지도, 특별히 남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넉넉함이나 확장성은 없었다.
월급은 공과금과 보험, 카드값을 만나면
의미 없이 사라졌다.
“이 정도면 되지” 싶은 소비가 쌓이자
남는 건 늘 조금 아쉬운 통장 잔고였다.
도윤은 당시 경기도의 한 공업단지에 위치한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다.
회사는 바로 옆이었고,
식비와 교통비도 거의 들지 않았다.
비용 측면에서는 분명 현명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주말이 오면, 이상하게도 그는
‘소비’보다 더한 ‘삶의 낭비’를 느꼈다.
어딘가 나가려면 버스를 타고,
몇 번이나 갈아타야 겨우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퇴근 후 골방 같은 기숙사 방 안에서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래서 그는 차를 샀다.
운전이 서툴러도, 보험료가 부담돼도
무언가를 바꾸고 싶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돈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걸.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뭔가 부족했다.
도윤은 어느 날 결심했다.
“근무지는 당장 바꿀 수 없지만,
거주지라도 바꿔야겠다.”
도시는 불편했지만, 기숙사는 불안했다.
그곳에서 하루하루가 그냥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기숙사를 나왔다.
누군가에게는 큰 선택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평생을 지방에서 살아온 도윤에게는,
또 다른 낯섬이자 어색한 순간들의 반복이었다.
주위 친구와 가족들은 말렸지만 도윤은 결국 본인의 ‘이단아’적인 성향이 좋은 결과를 낸다는 믿음이 있었다.
출퇴근이 조금 불편해졌지만,
대신 그는 평일 저녁에 책을 살 수 있었고
밤늦게 카페에서 외국어 공부를 했다.
무계획으로 나간 산책길에선 새로운 골목을 발견했고
이름 모를 전시도 우연히 마주쳤다.
공간이 바뀌자,
삶의 결도 조금씩 달라졌다.
또한, 본인의 이러한 선택들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고자 하는 고집도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순간들을 더욱 소중히 하려고 노력했다.
이후 도윤은 ‘회사가 전부인 삶’에서
조금씩 발을 빼기 시작했다.
일은 당연히 열심히 했지만,
퇴근 후와 주말을 의도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 평일엔 하루 한 시간 공부하고
• 주말엔 작은 전시나 여행을 다니고
• 매달 한 번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 글을 쓰고, 정리하고, 기록했다
그 모든 행동 뒤엔
어떤 묵직한 깨달음이 따라붙었다.
“이 시스템 안에선,
그냥 ‘열심히’만으론 삶이 확장되지 않는다.”
학생 때는,
그저 회사에 들어가면 끝일 줄 알았다.
월급을 받으면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월급만으로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시간도, 체력도, 여유도
모두 일정 이상에서 멈춰버렸다.
그래서 그는 깨달았다.
더 벌어야 한다.
단순히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지’를 더 많이 갖기 위해서.
문제는,
“어떻게?”였다.
누군가는 주식으로,
누군가는 부동산으로,
하지만 그건 어딘가 내 삶과는 먼 세계처럼 느껴졌다.
반대로 지금 구조에는 넘을 수 없는 벽과 한계가 명확하게 있었다.
도윤은 생각했다.
“나는 빠르게 오르진 못하겠지만,
계단처럼 쌓아 올릴 수는 있을지도 몰라.
단단하게, 한 칸씩.”
그리고 그 결과물은 선형적이지 않고 거대한 계단식으로 다가올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기 위해 그는 알아보기로 했다.
• 10년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 20년 전, 돈의 흐름은 어땠는지
• 100년 동안 반복된 경제의 사이클은 어떤 구조였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그는 스스로 보기로 했다.
익숙한 소득은,
익숙한 삶은,
결국 ‘틀’이었다.
그 틀을 깨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확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익숙하지 않은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