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유연한 인간이 됐다
MBTI 성격유형 중 I와 E의 가장 큰 차이는 '외향적'이냐 '내향형'이냐의 차이라고 한다.
에너지를 쏟는 방향이 외부에 있을 때 외향형, 내부에 있을 때 내향형이라고 하는데, 보통 내향형인 I는 '자기만의 시간', '소수의 깊은 대인관계', '적은 말수', '선생각 후행동' 등의 특징이 있고, 외향형인 E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 '폭넓은 대인관계', '많은 말수', '선행동 후생각' 등의 특징이 있다고 한다.
나의 MBTI는 ENFP다.
내 MBTI 유형을 들은 10년 이내의 지인들은 '어? 너 이거 아닌데? 다시 해봐!'라고 한다. 그런데 어쩌겠나. 열 번 검사하면 열 번 다 ENFP인 것을.
온라인 상의 테스트 결과는 실제 전문가를 통한 심층적인 테스트 결과와 다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결과가 같더라도 세부적인 차이가 있단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MBTI 결과에 나도 의아한 면이 없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10년 이전부터 나를 알아온 지인들은 ENFP라는 내 성격유형에 동의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시만 해도 나는 부인할 수 없는, 전형적인 E의 소유자였다.
전문가들은 MBTI는 성격의 유형을 나누지만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결혼, 출산, 육아가 내 성격 유형을 바꿔 놓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내겐 여전히 E의 성향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I의 성향이 더해진 정도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는 어쩌면 E를 숨기고 사는 I일지도 모르겠다고. 실제로 결혼, 출산, 육아는 많은 경우 내게 I이길 요구했다. 예를 들면, 신혼여행 후 시가에서 가장 먼저 들은 말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이었다. 한마디로 '생각도 하지 말고, 불만도 갖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라'는 의미 아닌가. 그것을 어길 경우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무한대로 늘어난다. 철저하게 I이길 요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시집살이가 더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성격을 감추고 그와는 반대의 삶을 살아야 했으니.
대학시절 믿었던 친구의 배신도 내 성격에 I의 성향을 심어 넣는 데 크게 한몫했다. 사람에 대한 불신을 심어줘 나 스스로 사람들로부터 두터운 벽을 쌓게 만들었으니까.
아이를 키우면서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혼재한 속에서 뒷말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튀지 않는 게 좋다는 여러 조언들을 들으며 벽은 더 두꺼워졌다. 아무래도 E는 I에 비해 뒷말을 듣게 될 구실이 더 많다 느껴지기도 했다. 나이 들면서 새로운 사람 사귀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육아 에세이 도서 <내향육아>의 저자도 아이를 낳고 외향적이어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어디 이뿐일까. 기억할 수도 없는 여러 환경들이 내 성격의 변화를 요구했고, 그렇게 해야만 했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E를 억누르며.
이렇게 자신의 성향과 반대되는 성향을 요구받으며 자신의 성향을 숨겨야 하는 경우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 회사, 사회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성향보단 요구받는 성향의 사람이 되기 위해 분투할 것이다. 나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반대되는 성향을 요구했거나 나로 인해 누군가의 성향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고.
한 때는 외부 요소들로 인해 내 성향을 감춰야 한다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왜 내가 나로서 살 수 없냐고 불평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각각의 성향은 하나의 유형일 뿐이지 완벽한 것은 아니지 않나. 내게 없는 부족한 점을 다른 성향의 영향으로 채울 수도 있는 일이지 않나 싶은 것이다.
예를 들면, E로서의 나는 있는 말 없는 말 다 시끄럽게 해대서 종종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는데 깊게 생각하고 말하는 I의 성향이 더해지면서 좀 더 진중해졌다. 또 E로서 대인관계가 넓지만 얕았는데 I의 성향이 더해지면서 좁아도 깊이 있는 관계가 가능해졌다. 이뿐 아니다. E로서 사람들을 만나서 노는 것에서 에너지를 얻었지만 I 성향의 영향을 받아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게 되면서 코로나19 시대도 잘 버텨내고 있다.
그렇다고 내 성향을 버리고 새로운 성향의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내 성향의 부족함을 다른 성향으로 채워 더 유연한 인간이 되면 된다는 것뿐. 물론 이런 변화가 내 의지였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주변의 요구였으면 또 어떠랴. 처음엔 타인에 의해 내 성향을 억누르고 요구받는 성향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게 힘들고 싫은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더 유연하고 사회적인 사람이 됐으니 장점도 크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가능한 장점을 찾으려고 하는 긍정적인 E로서의 내 성향과 좀 더 신중한 I가 만난 덕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