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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패너 같은 명절

올해 추석도 고생하셨습니다

by 이니슨

명절은 아인슈패너 같다. 아인슈패너는 달콤함과 쌉싸름함이 이중적인 것 같으면서도 적절히 조화를 이뤄 특유의 맛을 낸다. 명절의 고됨은 불필요함을, 누군가를 향한 연민은 '그래도 할만한 것임'을 느끼게 한다. 그 둘이 조화를 이루기에 또 한 번의 명절을 무사히 건넌다.


아인슈패너 같은 명절 ⓒ픽사베이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기혼여성들의 예민 지수가 올라간다(기혼 남성, 미혼남녀 등 모든 세대가 다 예민해질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기혼여성에 대한 이야기만 하기로 한다). 차례상 준비에 손님맞이, 친정으로 가는 일까지 모든 것에서 신경 쓸 것이 많아진다.


체력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신적인 노동의 수준이 어마어마하다. 특히 여성들이 분주히 음식 준비를 하는 동안 남성들은 편히 앉아 갓 부친 전과 식혜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면 '너네 핏줄 차례상을 왜 내가 준비해야 하냐'는 불평에 불을 지핀다. 한 번 뒤틀린 심사는 제 자리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불덩이 더욱 깊은 곳으로 영혼을 내던진다.



집안 사정상 오랜만에 시부모님과 함께 한 명절이었다.

오랜만이었기 때문일까. 오랜만이니까 더 열심히 준비하자는 마음 한편으로는 정신적인 압박이 유독 크게 느껴졌다. 더욱이 명절 전 주 시부모님과의 식사자리에서 던져진 남편의 무책임한 말 한마디는 '이 집안에서 결국 나는 혼자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내 정신노동에 무거운 쇳덩이를 더했다. 명절이 이렇게 서글프고 서러울 수 있나 싶기도 했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스트레스가 심했던 이유다.


아침부터 서둘러 전을 부치고 점심을 해 먹고 나물을 하고 고기를 삶고 생선을 찌고 문어를 데치고 탕을 끓이고. 음식을 하고 치우는 건 어떻게든 버텨낸다 해도 정신적인 압박은 '며느리는 집안일에 당연하게 쓰이는 일꾼일 뿐인가' 생각하게 한다.



나의 시어머니는 몸이 편치 않으시다. 당뇨에 혈압 등등까지 더해져 쉽게 기운이 빠져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수시로 쉬어야 했다. 그런 몸으로 미리 장을 보고 새벽부터 음식을 준비하시는 모습을 보니 내 맘도 편치 않았다. 돌아가신 분들이 와서 음식을 직접 드시는지 어쩌는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인데 불편한 몸으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제사고 차례고, 대체 무엇을 위해 해야 하는 것일까. 강산이 수십번 변했어도 여전히 유교국가라는 명목 앞에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마음 때문은 아닐까.


게다가 올해 명절은 성균관에서 지난 과오를 고백하며 새로운 차례상의 표준안을 제시하지 않았던가. SNS에는 유명 집안의 종갓집 차례상이라는 사진들이 퍼졌는데 밥, 국, 나물, 고기, 포 정도로 꾸려진, 흔히 차례상이라고 하는 것들과 비교하면 단출하기 이를 데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 그게 정석일 것이다.



아인슈패너 같은 명절 ⓒ픽사베이


조상을 섬기는 마음은 음식의 가짓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조상을 잊지 않고 추억하는 것이 명절을 맞이하는 진정한 마음이다. '아이고아이고' 앓는 소리를 하고, 허리를 두드려 가며 가득 채우는 차례상이 무엇이 그리 중하단 말인가.


조상들은 후손들이 그렇게 고생해서 차리는 상을 받아야만 '그래. 너희가 아직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구나. 기특하니 내가 잘 돌봐주겠다.'라거나 '이번엔 전이 빠졌으니 30% 빼고 돌봐주겠다'며 조건을 내건단 말인가. 조상님의 마음이 부모의 마음과 같을진대, 기억하고 마음 써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일이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명절 이후에 높아지는 이혼률과 가족간 불화를 생각해 보면, 조상님들이 원하는 것이 진정 이런 것인가 분통이 터지기도 한다.




하루 종일 음식을 하고 마무리를 하는 저녁, 편치 않은 몸으로 싱크대에 서서 며느리 힘들세라 손수 그릇을 헹궈내는 시어머니의 옆에서 '어머님은 30~40년 동안 얼마나 고되셨을까' 싶은 것이 문득 연민이 느껴졌다. 옆에서 그릇들을 만지작 거리며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나누는데 시어머니는 "예전에 그렇게 도망가고 싶었는데 우리 ㅇㅇ(내 남편)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지."라셨다. 아, 순간 어머님의 일생이 몹시도 애틋해졌다.


장남의 아내로 시어머니에 동생들까지 다 챙겨야 했던, 그 시대 며느리의 모습을 추측해 보자니 마음이 쓰렸다. 남편에게 전해 들은 바만 생각해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을 것이다. 그런 마음에 시어머니 어깨를 주무르며 '내가 하는 고생은 고생도 아니다' 싶었던 것도 사실.

그런데, 그런 마음도 잠시. 다음 날 성묘를 다녀오며 내 안의 투덜이가 동면에서 깨어나듯 존재감을 드러냈다.

추석 당일, 차례를 지낸 후 산소로 출발했다. 평소라면 2시간이면 도착할 거리였지만 역시 명절 연휴였다. 오전 10시에 출발해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산소에 도착했고, 다시 밤 9시가 넘어서야 돌아왔다. 하루 종일 도로 위에 있었던 셈이다. 핏줄인 시아버지와 남편마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덕분에 또다시 유교 기반의 사상을 시작으로 명절의 불필요함까지, 온갖 불평들이 발화했다.


아인슈패너 같은 명절 ⓒ픽사베이

그러고 보면 명절은 아인슈패너 같은 이중성을 지녔다.

아인슈패너는 에스프레소나 진한 아메리카노 위에 달콤한 휘핑크림을 듬뿍 얹은 커피다. 첫 한 두 입은 크림의 달콤함이 강하게 느껴지다가 점점 쌉싸름함이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씁쓸한 맛이 크림의 느끼함을 중화시켜 전체적인 맛의 조화를 이룬다.

며느리에게 명절은 노동의 시간이다. '명절 같은 건 없어져야 한다'고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며느리 고생 덜 시키려는 시부모님의 마음과 같은 여자&며느리로서 느끼는 연민은 쓰디쓴 명절에 달콤한 크림 한 스푼을 더하는 듯 정신을 중화시킨다. 덕분에 또 한 번의 명절을 무사히 버텨낸다.




변함 없이 또 찾아올 명절. 여러분의 크림 한 스푼은 무엇인가. 어차피 회피할 수 없는 명절이라면 한 스푼의 크림을 찾을 수 있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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