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나는 어떤 얼굴일까. 어떤 표정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까. 대화에 비언어적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동네 도서관에서 하는 작은 음악회에 다녀왔다. 음악회라고는 학창 시절 숙제 때문에 억지로 참여했던 '어린이를 위한 음악회',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 정도가 전부인 데다 그마저도 졸고 오기 바빴던 나다.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를 5~6년 쳤지만 그뿐이었다. 음악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한 적도 없다. 벼락치기로 공부했다가 시험을 치른 후 증발시키는 게 당연했던 교과였으니까.
나이가 들면 취향도 변한다더니, 클래식과 재즈를 즐겨 듣는 40대가 됐다. 여전히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그 음악에서는 늘 좋은 향기가 난다. 그 기운 덕에 구린 내 진동하던 내 마음에도 조금씩 향기가 더해진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어우러지는 현악기 앙상블이었다. 아마추어 연주가들의 재능기부로 이뤄지는 공연이었는데 소박하지만 마음은 유명 셀럽들의 파티보다 더 화려하고 감사했다.
제목은 잘 모르지만 많이 들어봤던 음악을 직접 연주로 들으니 뜨거운 감동이 밀려왔다. 특히 맨 앞 좌석의 바이올린 연주가는 형언할 수 없는 황홀함을 더했다.
아마추어이기 때문인지 악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여타 연주자들과 달리 그의 시선은 지휘자의 얼굴과 손끝, 관람객의 눈으로까지 이어졌다. 더 놀라운 것은 표정을 비롯한 온몸으로 연주하는 모습이었는데 덕분에 곡의 느낌을 더 잘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으니 감동이 배가 되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비교를 하는 게 미안하지만 다른 연주가에게선 느낄 수 없던 음악의 깊이가 더해졌다.
덕분에 음악의 파도에 자연스레 올라탈 수 있었다. 음악이 흐르는 곳마다 물보라가 치듯 흔적이 남았다. 정말이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연주는 단순히 듣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는 거구나, 알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우리의 언어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생각이나 느낌을 말이나 글로 전달한다. 단지 그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말과 표정, 태도 역시 언어의 하나였다는 생각을 하니 그간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그동안 타인에게 어떤 표정으로 말을 걸었을까. 내 표정엔 그들을 향한 애정과 공감 등의 감정이 깃들어 있었을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은 순간들이 펼쳐진다. 더욱이 말과 표정, 몸짓이 일치하지 않았던 적이 한두 번이던가. 말로는 "알겠어."라고 하면서 표정이나 태도는 미심쩍어하거나 짜증을 내는 식으로. 어쩌면 이렇게 비언어적인 요소로 타인에게 폭력을 가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특히 아이에게 이런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숙제를 다 했냐고 물을 때 아이가 "다 했어요."라고 하면 나는 "그래? 알겠어. 잘했네~"라고 말하며 의심하듯 쳐다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은 '대충 하고 했다고 하는 거 아니야?' 싶었다. "엄마는 너를 믿어."라는 말을 할 때도 표정이 없었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어떠 마음이었을까, 이제야 돌아본다.
감정표현이 서툰 아이와 상담센터를 다니던 초기 상담사도 표정을 강조했다.
"저 나름 열심히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표정도 그러셨나요?"
"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적잖이 당황했다. 부끄럽지만 표정이 없었거나 오히려 반대인 경우도 많았다는 것을 잘 안다.
비단 아이에게뿐이 아니다. 사람들을 만나며, 유독 편한 사람들에게는 말과 표정이 달랐던 나를 인정한다.
돌아보면 나 역시 같은 이유로 마음이 소란했던 경험들이 있다. 유난히 사람들의 표정이나 말투에 예민한 탓에 눈치를 보는 습관이 생겼고, 타인과의 만남에 자주 지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비언어적인 표현으로 상대에게 다양한 감정을 전한다. 그게 부디 긍정의 방향으로 이어지기를, 그랬었기를 바란다.
바로 오늘,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 표정은 어떤 감정의 얼굴이었을까. 상대의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깊이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