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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Mar 19. 2019

받아쓰기 후유증…
나는 SKY캐슬에 살고 있지 않는가

독박육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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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SKY캐슬에 살고 있지 않는가?'라는 물음에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큰 아이는 유치원 7세 막바지쯤 일주일에 한번 받아쓰기를 했었다. 미리 난이도별 출제 문제가 주어지고 공부를 한 후에 받아쓰기를 하는 식이었다. 한글 공부를 시키는 것이 유치원의 목적. 


난이도가 낮을 때, 그러니까 출제 문제가 간단한 단어일 때 아이는 받아쓰기를 곧잘 했다. 그런데 띄어쓰기, 문장 부호가 포함된 난이도가 되면서 아이는 받아쓰기를 어려워하기 시작했다. 받아쓰기 점수가 그걸 증명해준다.

한 번은 아이가 받아쓰기 70점을 받았다며 아쉬워하길래 말했다.


"10개 중에 7개 맞았으면 몇 개 틀린 거야?"
"...... 3개!"
"그럼 맞은 게 많아, 틀린 게 많아?"
"맞은 거"
"그럼 잘 한 거네~~"


그런데 어느 날은 30점을 받아온 것이다. 난이도가 좀 올라가긴 했지만 30점이라니. "엄마. 그래도 3개나 맞았어"라는 아이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론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나와 남편은 아이의 성적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말자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고작 받아쓰기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렸다.



<SKY캐슬>이라는 드라마를 즐겨봤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왜 저렇게 서울의대, 1등만 강요해!!'라고 분노를 하면서도 약간의 과장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에 드라마를 볼 때마다 크게 놀라고 있다. 그런데 나도 아닌 척하고 있지만 극중 영재 엄마나 예서 엄마처럼 아이의 성적에 집착하며 1등만을 강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졌다.


비록 SKY캐슬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나 역시 마음만은 SKY캐슬에 사는 엄마들과 같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성적에 목숨 걸며 1등만을 강요하고 다그치는 엄마.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를 압박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큰 아이의 영어교육을 놓고 고민이 많았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영어유치원은 아니지만 영어교육에 특화돼 있는 곳이다. 유명하다는 한 영어교육기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데, 유치원 졸업을 한 후에는 유치원 내 어학원에서 같은 영어교육기관의 교육과정을 공부할 수 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2년 동안 공부한 방식이기에 해당 어학원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면 아이는 익숙한 환경에서 늘 해오던 방식의 학습이 가능하다. 


그런데 교사의 이력이 신경 쓰이는 것이다. 교사가 원어민도, 유학파도 아니고, 영문과 출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순간 그 어학원에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시작됐다.


나는 평소 원어민 교사를 통한 영어교육을 고집하는 편이다. 문법보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듣고 말하는 실력을 키웠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그들을 통해 영어권 나라의 문화도 배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컸다. 문제는 아이의 흥미를 고려하지 않은 '내 생각'이라는 것이다. 내가 세운 기준에 교사와 이 학원이 부합되는지만 따지고 있었다.


그로잉맘의 SNS에서 '어쩌면 우리도 SKY캐슬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찔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니라고 자신할 수가 없었다. 지금껏 아이에게 해 왔던 내 모습을 되돌아보면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너 편하게 살라고 이러는 거야'라는 말로 아이에게 내가 정해놓은 목표를 강요하고,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다그치고 화를 내는 엄마가 될 게 뻔하다.




최근에 지인과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우리 ㅇㅇ가 자꾸 못한다고 하길래 '엄마 너무너무 실망했어. 엄마는 ㅇㅇ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실망이다'고 했더니 다시 해보더라고~"라는 지인의 말에 나의 남편은 조심스레 '실망했다'라는 표현은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살다 보면 나중에 그 아이는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남편의 말이었다.


남편은 집안의 장손으로서 '집에 정치하는 사람 한 명은 있어야 한다'는 강요를 받으며 자라온 터였다. 집안에서 원하는 학과 진학을 위해 재수를 하는 과정에서 혼자 지원학과를 바꿔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고 했다. 남편 역시 극중 아이들처럼 부모에게 강요받은 삶을 살았으나 본인의 의지대로 각성한 케이스다. 자신이 온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들이 바라고 원하는 대로 살았던 남편은 '실망'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런 부모이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나 역시도 내 아이에게 똑같은 방식의 강요를 하게 될 것이다.



"남의 시선 따위 뭐가 중요해! 나만 좋으면 되지!"라는 극중 세리의 말에 정답이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는 "그래. 잘한다!"라고 세리를 응원했지만 마음 한 편에서는 '그런데 나는. 내 아이를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고 지지해 줄 수 있을까'라며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시원스러운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자신이 없다. '저 정도는 아니지~'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이 내가 겨우 찾아낸 답이다.



큰 아이가 이제 겨우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도 이렇게 걱정이 크다. 겨우 드라마일 뿐이지만, 드라마를 보며 나에 대해, 아이에 대해 많은 반성을 하고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정말 SKY캐슬에 살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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