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니슨 Dec 07. 2024

초등 급식실에서 배운 볶음우동

맛있는 것 앞에서 생각나는 사람

"굴소스 넣고 볶으면 돼요~. 고기는 수입산 안 되고 무조건 한우. 투뿔!"

그래서인가. 소고기가 듬뿍 든 볶음우동이 유독 맛깔스럽게 반짝였다. 냄새는 또 어찌나 좋은지.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데 고소함까지 풍기니 절로 허기지게 만드는 냄새였다. 


맛있는 것을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내 두 아이.



Image by GraphicMama-team from Pixabay


12월 말까지 점심때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급식 배식이 내 일이다.


내가 일하는 초등학교에는 세 개의 배식대가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내 소속팀이다. 매일 아침 담당 배식대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메뉴를 확인한다. 맨 앞의 김치류(가끔은 과일이나 요구르트 혹은 우유 같은 디저트류)부터 가장 마지막의 국류까지.


급식실 앞에 그날의 메뉴가 써붙어 있지만 텍스트로 보기만 하는 것보다는 시각&후각으로 느낄 때의 감흥이 더 크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초등학생이 된 것처럼 기대에 차 가슴이 두근댄다.


"음... 이 냄새는 간장 베이스 같은데~~"


반찬 중 하나가 담긴 밧드 앞에 서서 냄새에 집중했다. 단짠의 냄새가 나는 것을 봐서 볶음같은데 생선은 아닌 것 같고. 닭고기인가? 메뉴를 추측하며 밧드의 뚜껑을 슬쩍 열었다.


"볶음우동이구나~~!! 소고기도 들었네!!"


메뉴명은 '한우볶음우동'이었다.


"애들이 엄청 좋아하겠다~. 추가 배식도 많겠고~!!"


면에, 단짠에, 소고기. 보통의 경우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건을 두루 갖춘 메뉴였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 배식 중 체감 평소보다 2배 정도의 아이들이 많이! 더 줄 것을 요청했다. 추가로 받기 위해 나온 아이들도 1.5배는 더 많았던 것 같다(개인 추측).


내가 일하는 학교의 급식은 3차에 걸쳐 진행되는데 1차 배식 후 볶음우동 담당 직원 분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인기 메뉴일 것을 짐작은 했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좋아했던 것이다.


먹어보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는 맛이었다. 나조차도 맛있어 보이는데 아이들에게는 더 그렇겠지.


"볶음 우동 엄청 맛있나 봐요~.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굴소스 넣고 볶으면 돼요~. 고기는 수입산 못 써서 무조건 한우. 투뿔!"


조리사 분께 재료와 간단한 조리법을 들으며 머리로 집의 냉장고 안을 헤아려 봤다. 아이들이 저렇게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또래의 내 아이들이 생각난 것이다. '굴 소스는 조금이지만 남아 있는 게 확실하고. 소고기는 없으니까 패스. 대신 남겨놓은 가쓰오부시가 있으니 그걸 넣으면 되겠다. 우동면만 사가자!'


2차, 3차 배식에서도 볶음우동의 인기는 끊이질 않았다. 5, 6학년은 다른 학년에 비해 추가배식 나오는 횟수가 적은데(6학년인 1호의 말에 따르면 귀찮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날은 평소보다 꽤 많은 아이들이 볶음우동을 더 먹기 위해 배식대를 여러 번 찾았다.


저녁 메뉴가 확실해졌다. 볶음우동!!! 우리 아이들도 분명 좋아할 거야~!! 마법의 치트키, 굴소스를 믿어보자.


좋은 것을 보면 보여주고 싶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먹여주고 싶은 것.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런 것이라고 한다. 급식 인기 메뉴를 보며 아이들을 떠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겠지.

우동면을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물 반 컵과 굴소스를 넣고 볶았다. 달큼하면서도 구수한 향이 퍼졌다. 다진 마늘을 더하니 풍미가 더 좋아졌다. 비록 투플러스 한우를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우동면에 간이 잘 배도록 볶다가 가쓰오부시 뿌려 한 번 휘저으면 끝!!


면 하나 들어 맛을 보니 "음~ 이 정도면 맛있네~~". 치트키가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한 모양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쌀밥에 계란말이와 볶음우동, 깍두기로 저녁밥을 차렸다. 볶음우동을 준비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더니 아이들은 평소보다 더 반짝이는 눈빛으로 "면이 이븐하게 잘 익었네요", "합격입니다"라고 평가했다. 두어 번의 리필은 볶음우동이 얼마나 맛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래서 귀찮고 힘들어도 집밥을 해먹이고 싶어지는 건가. 맛있게 잘 먹는 아이들을 보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도 같고. 금의환향한 사람처럼 의기양양해졌다.  


어느 날엔 급식에 X코바 치킨을 연상케 하는 모양과 냄새의 닭고기가 반찬으로 준비됐다. 고춧가루는 보이지 않지만 빨간 양념이 저학년들의 "안 받아요", "안 먹어요"를 부추기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예상 밖으로 "더 주세요", "많이 주세요"가 어떤 날보다 잦게 들렸다.


오늘 저녁은 X코바 치킨이다!!귀가하며 냉동 닭다리살을 샀다. 간장과 굴소스, 케첩, 다진 마늘 등으로 소스를 만들어 구운 닭다리살과 떡에 넣고 볶았다. 새콤 달콤 짭조름한 냄새가 퍼지는 만큼 즐거운 저녁이었다(비록 X코바와는 많이 달라 보일지라도).


맛있는 것을 보면 아이들이 생각난다. 맛있게 먹으며 이븐하게 잘 익었다고 합격을 외칠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즐거워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