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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Nov 23. 2024

고교 비평준화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3년 일찍 입시 전쟁

"OO고등학교에는 뚱뚱한 애가 하나도 없대."

"어? 진짜?"

"응. 저긴 (중학교 내신)점수 높은 애들만 들어갈 수 있잖아. 체육도 잘해야 하는데 살집이 있으면 아무래도 좀 불리하겠지? 그래서 그런 얘기가 있더라."


순간 온몸의 세포들이 쭈뼛쭈뼛 솟아나는 듯했다.


내가 사는 이곳은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이다. 중학교 내신 점수가 입학할 수 있는 고등학교를 결정짓는다. 학생들이 특정 학군 내에서 성적에 관계없이 학교에 배정받는 평준화와 완전히 반대되는 방식이다.


소수점 이하의 숫자로도 원하는 학교의 입학 여부가 갈린다고 하니 이 얼마나 피 말리는 일인가. 그래서 학생들은 지필평가, 수행평가 등 온갖 평가에서 조금이라도 더 점수를 얻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한다. 학교 때부터 지독한 경쟁에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시험기간에 카페인 음료를 들이켜며 밤을 새우기도 한다는 이야기에 쯧쯧 혀를 찼었는데 그게 이제 나와 아이의 일 닥쳤다.


Image by Gillian Callison from Pixabay


큰 아이가 내년이면 중학생이다. 아이를 출산할 때 엉덩이에서 로켓이 발사되는 듯한 느낌이 아직도 생생한데 지나고 보니 시간이 참 빠르기도 하다.


얼마 전 아이의 중학교 배정 원서를 작성했다. 주소지에 해당되는 학군의 중학교 6곳을 1 지망부터 나열해서 제출하는 것이었다.


"1호야. 너는 어디 학교 가고 싶어?"

"ㅈㅅ중학교!"

"왜 거기 가고 싶은데?"

"애들이 다 거기 간대. 나도 그 학교가 좋다고 들었고."

"아~ 그렇구나. 그럼 2 지망은 어디 쓸 거야?"

"그건 ㅎㅅ중학교. 집 앞이니까."


아이가 1 지망에 쓴 ㅈㅅ중학교는 동네에서 공부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학교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좋다. 우리 집에서는 도보로 20~30분이 걸린다. 2 지망의 ㅎㅅ중학교는 집 바로 앞이라 등교하는 데 5분이면 되는데 상당수의 학부모들이 기피하는 학교 2위다. 이유는 공부를 잘 안 시킨다는 것. 물론 모든 학부모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런 분위기다. 


지역 내의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그나마 서울 내의 대학교를 노려 볼 수 있다고 한다. 당연히 그 안에서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겠지만 학교들의 대학 진학률을 보면 그런 모양이다. 이들 학교에 들어가려면 중학교 내신 점수부터 잘 챙겨야 한다. 점수가 부족하면 원서조차 쓸 수 없고, 지역을 벗어나 먼 거리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녀야 한다.


그러니 중학교부터 지역 내 고등학교 진학률이 높은 곳, 공부 잘 시키는 곳을 선호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 좋다. 대학진학률이고 뭐고 다 떠나서 가까운 곳에 학교들이 있는데 특별한 목적 없이 내신 점수가 부족해서 멀리 다녀야 한다면... 한탄스럽기만 하다. 결국 공부 공부 공부해!! 잔소리를 하며 압박하게 되는 악순환이 예고된다.


중학교 2학년 2학기면 아이가 지역 내의 학교에 갈 수 있는지 70~80프로는 판가름이 난다고 선배맘들은 얘기한다. 공포스럽기가 놀이공원 귀신의 집 뺨친다.


"1호야. ㅈㅅ중학교는 공부를 엄청 빡세게 시킨다는데 괜찮겠어?"


내 물음에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쩐지 걱정이 앞선다.


Image by Mahmud Shoeb from Pixabay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내가 살아온 세상보다 더 끔찍한 경쟁을 해야 한다고 한다. 사람끼리는 물론이고 AI와도 경쟁해야 한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두통이 느껴진다.


청소년기만큼은 협력하고 도우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사회에 나가기에 앞서 우정을 쌓으며 단단한 마음을 다질 수 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3년도 모자라 중학생 때부터 입시 전쟁에 돌입해야 하니 너무 일찍 경쟁 구도에 놓이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어떤 글에서는 평준화와 비평준화를 정치적 성향과 연관지어 좌파와 우파로 나누기도 하던데, 그조차도 당황스럽다.


한 동안 동네 고등학교가 평준화된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별다른 얘기가 없는 걸 보면 뜬소문이었나보다. 평준화 지역으로 이사라도 해야 하나... 평준화 지역에 사는 분들도 나름의 마음 고생이 있을까.


중학교 입학 원서 고구마 한 상자를 입에 털어 넣은 듯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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