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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Dec 01. 2024

아줌마 뽀글 파마해주세요

나를 객관화하기

어째 머리숱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다. 세월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은 모양이다. 특히 머리숱으로 타인에게까지 그 변화를 확인시킨다. 내 몸으로 격세지감을 증명하는 기분이다.


머리를 빗고 나니 또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나 빠져있다. 머리를 감을 때도 한 움큼, 빗을 때도 한 움큼. 


'휴~ 또 이만큼이나 빠졌네;;'


군데군데 머리카락 대신 맨 살이 드러나 볼품없어 보인다. 게다가 숱이 적으니 머리 볼륨이 푹 꺼져 어쩜 이리도 볼썽사나운지..


출산 후유증 같은 건가.

스트레스 때문인가.

나이 먹어서 그런가.

유전인가.


친구가 듬성듬성 비어있는 내 머리통을 걱정하며 바르는 흑채를 추천했다. "이렇게 이렇게 바르면 돼. 이거 하면 좀 채워져 보여."라며 친구가 내 머리에 흑채를 비볐다. "어머 진짜네?" 비어있던 곳이 감쪽같이 채워졌다. 지만 감고 나면 도로 빈 공간으로 돌아올 테지.


한때는 한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머리숱이 많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머리숱이 탐스럽다며 부러워한 적도 있다. 사자같이 부스스한 머리숱에 툴툴거리기도 했었는데... 이젠 머리카락이 한 손에 다 잡히고도 여유가 있다.


빠지는 머리카락의 수만큼 볼품없는 몰골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온다.


파마를 해볼까?

웨이브를 넣어보면 어떨까?

더 아줌마 같아 보이면 어쩌지?

매직을 하면 숱이 더 적어 보이겠지?


Image by Olena from Pixabay


내 나이대의 엄마는 어땠었는지 오래된 기억을 꺼내봤다.


엄마는 자주 빠글거리는 파마를 했었다. "왜 머리를 그렇게 하는 거야?" 물으면 엄마는 "편하고 오래가니까."라고 했었다. 그게 싫었다. 아줌마들이 다 비슷하게 커트의 뽀글거리는 머리를 하는 게. 우리 엄마도 그렇게 하는 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한 아줌마들의 뽀글 머리는 '억척스러움'을 상징하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절대 그런 머리는 하지 않을 거라고 치를 떨었었다.


어른이 된 이후에야 엄마가 머리숱이 적어지면서 조금이라도 더 풍성해 보이기 위해 그런 파마를 했었다는 걸 알았다. 다른 파마에 비해 저렴하고 오래간다는 것도 그 이유였다. 그러니까 아줌마들의 뽀글거리는 파마는 억척스러움이 아니라 안타까움이자 애잔함 같은 것이었다.


사실 그간 난 내 나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은 여전히 20~30대이기에 4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나의 신체를 바로 보려 하지 않았다.


현실을 부정할수록 내 삶이 불쌍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니 다른 게 눈에 들어올리가 있나. 애달픈 나 자신만 있었다. 가슴이 쓰리고 우울했다.


얼마의 시간을 그렇게 보냈을까. 배우 서현진 님이 유퀴즈에 나와 하수구 같은 현실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나밖에 없다고 하는데 대학 수시에라도 합격한 듯 가슴이 뛰었다. 내가 있는 이 어둠에서 나갈 방법 역시 내게만 있을 것이다.


머리카락들 사이로 허옇게 드러난 속살을 직시하며 나이를 인정하기로 했다. 나 스스로를 후회와 원망과 우울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는 자기연민을 던져버리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40 대구나. 마음이 아무리 20~30대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고 있구나. 속살을 어떻게든 가리려고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다 결심했다. 파마를 해야겠어!!!


벼르고 벼르던 미용실에 갔다.


"파마해 주세요. 뽀글뽀글하게요. 머리숱 많아 보이고 오래가는 걸로요~."

(어깨를 살짝 덮는 길이는 유지하기로 했다.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이 머리가 아줌마들의 그 파마 스타일은 아니지만... Image by Feroza Khan from Pixabay

변화의 시작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가슴이 찌릿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았다. 대신 '뽀글 머리도 나름 괜찮은 것 같은데~? 좀 힙해 보이는 것도 같고.'라는 자기만족이 빈자리를 채웠다. 거울 앞의 내가 어색하지만 보기 싫은 정도는 아니다.


한 달 후면 43세가 된다. 내 인생에 서른은 없을 줄 알았는데 마흔도 있고 곧 쉰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이후도.


나이 들고 있는 나를 인정다.

이젠 더 건강하고 더 멋지게, 더 열심히 사는 방법을 찾고 있다. 나를 객관화하고 나니 새로운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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