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이거 왜 이렇게 어려워!!'
어려운 악보 앞에서 한숨이 나왔다. 요즘 매너리즘에 빠져있기 때문일까. 숨겨왔던 두려움이 온몸으로 왈칵 쏟아졌다. 마치 화장실 안에 있다가 갑자기 물 바가지를 뒤집어쓰기라도 한 듯 참담했다.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새 악보를 받았다. 두고두고 여러 번 본 영화의 OST다. 많이 들었던 곡이기에 첫 음을 잡는 게 어렵지 않았다. 멜로디도 제법 따라갈만했다. 그런데 곡의 1/3 지점에서 생각지도 못한 난간을 만났다. 이음줄이 문제였다. 그것도 반 박자에 줄을 바꿔가면서 8~9개의 음을 짚어내야 하는, 내 수준에서는 지금까지 중 최고난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빨리 멋지게 연주해내고 싶은데 아무리 연습을 해도 음이탈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연습을 할수록 짜증이 솟아났다. 마음에 짜증이 한가득이니 연습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악순환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했다.
다음 날, 바이올린 레슨을 받고 있는 2호의 도움을 받아 다시 활을 잡았다. 아이는 "이음줄은 한 음씩 각활(활을 한 번 움직여 한 음을 연주하는, 기본적인 연주 방법)로 연습하다가 두 개씩, 세 개씩 늘려가면 돼~"라며 시범을 보였다.
차근차근 한 음씩 연주하다가 하나씩 늘린다.
빨리 연주해 내겠다는 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한 음씩 짚어갔다.
하나씩, 천천히.
세 번의 이음줄 중 하나는 그럭저럭 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미숙하지만 가능성이 보였다. 온통 짜증으로 가득 차 까맣던 마음에 반짝 작은 불빛 하나가 켜졌다.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의 씨앗이 싹을 틔웠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에도 어려운 곡은 여럿 있었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싶었던 곡들도 결국 해냈다.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계속 반복하니 완벽하지 않아도 할 수는 있었다. 게다가 그렇게 어려운 곡 하나를 완성해 내면 그만큼 성장한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어려운 게 어디 이 악보뿐일까. 삶 속에서도 여러 어려움이 시도 때도 없이 앞을 가로막는다. 어떨 땐 껌처럼 철석같이 들러붙은 불행을 떼어내지 못한 채 온몸까지 끈적거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겁내고 뒷걸음질 치면 삶은 빠른 속도로 후진하고 만다. 대신 '이겨낼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부딪히면 더디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 결국 나를 만드는 건 내 마음이었다.
새 악보를 받은 지 2주가 됐다. 아직 연습이 많이 부족하지만 느리더라도 될 때까지 계속해보려 한다. 언젠가는 이 곡처럼 내 삶도 나만의 속도로 완성될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