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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내가 들어왔다

자식과 나, 함께 성장하기

by 이니슨

'애가 다 크고 나면 나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할 때가 있다. 평생 자식만 바라보며 살다 그 자식들이 독립한 후에는 공허함과 외로움에 사무친다는 여러 부모 세대의 이야기가 이제는 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자식이 곧 인생인 부모, 특히 엄마들의 경우 공허함의 깊이는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그들에게 자신의 삶은 없었을 것이다. 오롯이 자식을 위한 삶이 있었겠지(자식과 함께 남편이나 부모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자식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한다). 내가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니 아찔했다.



내 인생에 나는 없었다


사실, 내 삶도 그랬다. 분명 내 인생인데 그 안에 나는 없었다. 나를 돌보는 건 뒷전이었다.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어떤 날은 꿈속에서조차 누구의 엄마가 있을 뿐 나는 없었다. 아이를 바른 어른으로 성장시켜 독립시키는 것. 목표를 향해 직구만 던지던 내게, 이젠 변화구가 절실했다.


'내가 있는 삶을 살고 싶어.'

'나도 주인공이 되고 싶어.'


내 삶에 목말라 있던 바로 그 시기에 DEEP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곳엔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내가 있었다. 내 이름으로 불렸고, 내 이름으로 공연을 했다.


Image by Ri Butov from Pixabay


2025년의 첫 모임 때. 총괄 선생님은 자기소개와 함께 지난해의 활동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을 마련하셨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순간 문득 마음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덕분에 제 이름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여러 회원들의 눈빛에 공감이라는 두 글자가 어른거렸다. 부모인 다른 회원들도 비슷한 마음이었구나, 생각하니 울컥 뜨거운 무언가가 목울대를 타고 올라왔다.



아이는 잘 자라고, 이제는 나를 키운다


올해 큰 아이는 14살, 작은 아이는 11살이 됐다. 지나고 보니 내가 그렇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제벌 잘 자라고 있었다. 특히 초등학생이 된 후로는 내 초조함과 불안함이 아이에게는 짐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이의 행복은 자신에게만 올인하는 부모가 아닌 각자의 삶을 즐겁게 영위하며 함께 있어주는 부모와 함께 있을 때 더 깊어지는지도 모른다.


Image by Jessica Kwok from Pixabay


내 인생에 나를 초대할 때


나는 바란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에게 쏟는 시간과 에너지, 정성의 10%라도 자신을 위해 쓸 수 있기를.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 오랜 시간이 아니어도 괜찮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는 것,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있는 것. 그 짧은 시간들이 나를 되찾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이제, 우리 자신의 삶에 스스로를 초대해야 할 때다.


DEEP에서 아마추어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며 나를 되찾았다. 내 인생에 드디어, 내가 들어왔다.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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