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마음을 비우는 중

잘 비워야 잘 채울 수 있듯이

by 이니슨

옷장을 열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언젠가는 입겠지’라는 말로 묻어둔 옷들이 몇 년째 그대로 걸려 있었다. 좁은 공간에 옷을 욱여넣은 탓에, 정작 입을 옷마저 구김 없는 것이 없었다.


꼬깃꼬깃 걸려있는 옷들을 훑다 결심이 섰다.


"안 입는 것들은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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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빼서 입어야지'했던 옷을 시작으로 몇 년간 공간만 차지하고 있던 옷들을 하나씩 꺼냈다. 다시 입겠다고 생각했지만 색이 바랬거나 변해 입기 힘든 옷.


그건은 희망보단 미련에 가까웠다.


남산만큼 쌓인 옷들을 헌옷수거 업체를 통해 폐기했더니 치킨 한 마리 사 먹을 만큼의 공돈이 생겼다.


버릴까 말까 망설이던 옷들을 버리고 나니 옷장에 여유가 생겼다. 보고 있자니 오래 묵힌 숙제를 해결한 듯 속이 후련했다. 좁은 공간에 구겨져있던 옷들도 이제야 온전히 제 자리를 찾아 더 잘 보관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때로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숨쉬기 위해 비워야 한다.


어쩐지 비움의 미학이 결국 소중한 것을 더 소중하게 대하는 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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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비워야 할 것은 옷장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물건을 넘어, 나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까지도.


오래 묵힌 마음과 관계는 때로는 나를 지탱하지만 비우지 못한 것들은 상하기 마련이다. 어떤 것은 그대로 고여 스스로를 갉아먹기도 한다.


'언젠가는'이라는 기대로 악착같이 잡고 있던 미련이 낡아서 끊어지는 아픔을 수차례 겪어낸 후에야 깨달았다. 비우는 데에는 채우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망설임을 딛고 내가 지금 비워내야 할 마음은 무엇일까. 끊어내야 하는 관계는 무엇일까.


요즘 나는 옷장이 아닌 마음 하나를 비우는 연습을 하고 있다. 타인의 날카로운 말 앞에서 쉽게 무너져 내렸던 나 자신에 대한 기억이다. 특히 가깝다고 믿었던 사람의 차가운 말과 표정은 옷장 틈새에서 튀어나온 낡은 옷처럼 불쑥 떠올라 고요했던 나를 헤집어 놓는다.


그 기억들을 하나 둘 비워내자 상처를 부정하지 않되 그것에 매몰되지 않는 단단함이 차오르고 있다. 미움과 괴로움이 빠진 자리에 비로소 내가 머물 공간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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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은 언젠가 또 새로운 옷들로 채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잘 비워야, 비로소 잘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비움 #미니멀라이프 #인간관계 #자존감 #마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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