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볼 때 아빠는 가정적인 사람이다. 그 시대의 여느 아빠들과는 달리 청소며 설거지까지 알아서 하시는 편이다. 학창 시절에는 매일 아침 아빠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등교했던 나다.
때로는 "집에 여자가 몇인데(내가 이걸 하고 있어야 해)!"라며 볼멘소리를 하시기도 했지만 다른 가정의 아버지들과 비교했을 때 가정적임이 평균 이상이었던 건 확실하다.
결혼 후 남편이 처음으로 친정에서 저녁밥을 먹었던 날. 자진해서 설거지를 하겠다는 아빠 때문에 남편이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어쩔 줄 몰라 엉덩이를 들썩이던 남편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렇다고 아빠의 가정적인 모습이 배우 최수종 급의 다정함은 아니다. 그저 집안일을 '스스로' 하신다는 것 정도였다. 엄마와 아빠가 맞벌이였기에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빠가 엄마가 고생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엄마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마음을 말로 표현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빠는 당신의 마음을 엄마에게 말로 표현하는 것에 굉장히 인색했다. 아니, 어려워했다. 30년 이상 제사를 모신 엄마에게도 '수고했다', '고생했다', '고맙다'는 말 조차 잘하지 않으셨으니까.
엄마의 생신이 다가오면 아빠는 꼭 내게 전화를 하신다.
"네 엄마한테 뭘 해주면 좋겠니?"
"미역국을 끓여줘요. 엄마가 엄마 생일에 스스로 미역국 끓여 먹기는 좀 그렇잖아~"
"미역국은 내가 맛있게 못하잖니~"
"그럼 꽃다발은 어때?"
"네 엄마가 저번에 꽃 사 오는 건 돈 아깝다고 하던데?"
"돈이 아까울 순 있는데 그래도 좋을걸? 엄마가 또 언제 꽃을 받아 보겠어?"
"그런가?"
"아니면 손편지를 써요, 아빠~"
"아유~ 내가 편지를 어떻게 쓰니."
아빠는 엄마 올해 생신에도 선물을 놓고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셨다. 결국은 가까운 시장에 가서(엄마 아빠의 성정상 백화점에 가지는 않는다) 구두 한 켤레를 사주셨다고 한다.
결혼기념일이 다가올 때도 마찬가지다. 아빠는 엄마에게 마음을 표현할 길을 몰라 꼭 내게 전화를 해서 묻곤 하신다.
언제던가. 코로나19로 인해 가까워도 잘 만나지 않던 엄마 아빠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빠에게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며느리 입장에서 잔소리(?)를 늘어놨다.
"아빠. 엄마가 매번 제사 모시는데 '고맙다'는 말은 했어요?"
"아니.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니?"
옆에서 엄마가 혀를 찼다.
"그럼 말을 해야 알지. 네 아빠가 어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니?"
엄마의 불평이 쏟아져 나오기 전에 내가 끼어들었다.
"아빠. 말로 안 하면 아빠가 고마워하는지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게 또 그런가?"
아빠는 굉장히 머쓱해하셨다.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빠는 엄마에게 참 고맙다는 고백을, 우리 앞에서 하셨다. 차마 엄마 옆에서는 할 수 없었던 아빠의 진심이었다. 아빠는 엄마가 아니었으면 가족을 이렇게 이끌고 올 수 없었을 거라고 하셨다. 아빠가 결혼 전부터 일을 열심히 하셔서 돈은 벌었지만 모을 줄은 몰랐는데 엄마가 차곡차곡 모아준 덕분에 지금까지 우리 가족이 배곯지 않고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빠는 젊었을 때 가내수공업으로 은수저를 만들어 서울의 주요 백화점, 호텔 등으로 납품을 했었다. 그러다가 IMF가 터졌고, 우리 가족은 IMF의 직격타를 맞고 말았다. 아빠는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은수저 공장에 나가 일을 했다가 택시 운전도 했다가... 돈을 벌기 위해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엄마 역시 가정주부로 아빠의 뒷바라지를 하고 가정을 돌보다가 여러 식당을 돌며 설거지와 서빙을 하는 고된 생업의 길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비단 돈 문제뿐만은 아니다. 무서운 시어머니에 기 센 손윗시누이 둘까지. 엄마의 결혼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때 엄마는 꽤나 힘든 속앓이를 해야만 했다.
아빠는 이런저런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시며 여전히 미안함과 고마움을 갖고 계시다. 그런데 엄마에게 말로는 차마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말을 엄마가 없는 사이에, 우리 앞에서 하시면서 쑥스러워하셨다.
그건 찐이었다. 그동안 차마 말로 할 수 없었던, 아빠의 진심이었다.
그날 밤, 이번엔 아빠가 자리를 비운 사이 엄마에게 아빠의 그 이야기를 전했다. 엄마는
"아이고 됐다 그래. 네 아빠가 그럴 사람이 아니야"
라며 김새는 말씀을 하셨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보니 내심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진심은 상대에게 말로 표현해야 전해지지만 그날 엄마는 나에게 '처음으로' 전해 들은 아빠의 진심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건 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