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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Feb 11. 2022

다둥이는 어떤 마음으로 키울까

다둥이 엄마의 육아 신념

첫째를 가졌을 때엔 새로 사야 할 것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대양으로 나아가려고 낑낑대며 육지를 떠나는 배처럼 막막하고 뭐든 시작이 버거웠다.

모든 게 초보였던 나는 육아서를 고시 공부하듯 읽으며 하루는 <프랑스 아이처럼> 혼자 탐색하게 내버려 두었다가 하루는 <전통육아의 비밀>처럼 포대기로 종일 업었다가 아주 줏대 없는 육아를 했더랬다.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웃기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힘든 육아는 제대로 된 육아가 아님을 몰라서 힘든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이 연약한 생명체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에 늘 긴장하고 목덜미가 뻣뻣한 채로 아기를 바라보았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아이에게 남아 긴 평생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압도되어 앞이 깜깜한 적도 종종 있었다. 가끔은 자는 아이의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며 나에게 와줘서 고맙다고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했다.


아주 청승도 그런 청승이 없었다.


나의 세계는 그저 이 아이라는 태양만 바라보며 주위를 꾸준히 도는 하나의 행성이 되어 버렸다.

이 생명을 온전히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 미션을 하나씩 해치워가면서도 다음엔 또 뭘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대는 일상들... 예쁜 모습을 실컷 즐기기에도 아까웠는데 왜 그리 종종 댔는지. 

순둥이 하나 키우며 아기를 재우고 남는 그토록 많은 시간들을 왜 외롭다고 여겼었는지...

지금은 너무나도 간절하게 기대하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인데, 그저 아쉽다.


쌍둥이를 낳고는 육아에서 어깨 힘을 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긴장을 자주 풀고 무리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에너지를 바닥까지 끌어다 쓰려고 하지 않고 나를 위해 일부는 꿍쳐두었다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힘들면 주위에 도움을 구체적으로 요청한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가장 쉬운 일임을 기억한다. 집에 있다고 해서 24시간 집안일만 (생각) 하진 않는다. 쌍둥이 신생아 시기엔 내가 할 수 없는 일에는 죄책감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자연분만 포기, 모유 수유도 초유만 먹이고 포기, 24시간 독박 돌보기 포기(산후도우미 도움), 이유식도 남편에게 이유식 제조기 설명서를 쥐여주고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돌 이후엔 사 먹였다.

이 과정에서 내가 부족한 엄마라거나 못해줘서 미안하다거나 하는 감정이 진심으로 들지 않았다는 게 첫째 육아와의 차이였다.


이젠 스스로를 납득시킬 필요가 없다. 

나의 선택들이 나와 아이들과 우리 가족에게 최선임을 아니까.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되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아이들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한번 해본 일이라 그런지 쌍둥이여도 첫째 때보다 수월한 부분도 많았다.(이래서 회사에서 다들 경력직을 우대하나) 첨부터 쌍둥이 육아였다면 난감했을 일들도 우리는 이미 첫째 때 해본 가락이 있어서인지 어찌어찌 두루뭉술하게 해치우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조금씩 분리가 된 현실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라는 몸을 거쳐 세상에 나온 이 아이들을 떨어진 탯줄만큼의 거리를 두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꼬물꼬물 살고자 하는 모든 움직임들이 신기하고 신비로웠다. 내 몸을 통해서 나왔을 뿐, 나와는 전혀 다른 두 인간인 새 생명체들은 바라볼수록 황홀했다.

어쩌면 이렇게 작고 귀여울 수가 있을까. 어떻게 내 몸이 이렇게 두 생명체를 동시에 키워낼 수 있었을까. 삼신할머니 감사합니다 엉엉엉. 산후우울증은 이렇게 감격과 절망의 올가미에서 나를 울렸다가 웃겼다가 했다.


아이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기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뱃속에서 아늑하게 떠다니기만 해도 배부르고 등 따시던 것과 달리 세상은 울어야 먹을게 입에 들어오고 축축해진 기저귀를 갈아주는 곳이니. 

집안 곳곳은 언제나 응애응애 소리가 경보음처럼 울려 퍼졌다. 하나를 안고 달래고 있으면 다른 하나를 안아줄 팔이 없어 그냥 내가 울고 싶어지는 쌍둥이 신생아 시절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순간순간 예뻤고 순간순간 버거웠지만, 이미 올라가 본 등산길처럼 얼마나 남았는지 알고 가는 길이라 막막함은 조금 덜했다. 팬데믹 초기라 분유 배달이 안 될까 봐 이른 단유를 살짝 후회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배송 시스템은 내 걱정을 그리 오래 하게 하진 않았다.


조리원을 나온 후 첫 3달은 출퇴근 산후 도우미와 다음 3달은 남편이 이직 사이에 일을 쉬며 함께 초기 6개월의 난관을 넘겼다. 그다음 6개월은 혼자서 쌍둥이 육아를 해보며 매사에 잘하려고 하기보단 과락만 넘기자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생각보다 할만하구나 싶었다. 너무 걱정하던 일이 막상 부딪히면 오히려 생각보다 강적이 아니었네 하는 묘한 안도감이 드는 것과 비슷했다.


대강철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나의 육아 신념이다.

기본적으로는 대강하고 중요한 것만 철저하게 하자는 말인데 직장 선배가 회사일은 대강 철저하게 하면 된다는 말이 신규였던 내게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었다.


육아도 그러하다. 나는 우아하게 하나의 접시를 돌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접시가 세 개가 된 상황이니 정신이 없는 게 당연지사. 일단 접시 세 개가 잘 돌아가고 있으면 오케이! 하나가 뭔가 잘 안된다 싶으면 집중해서 보고 문제 해결하기 모드로 바꾸면 된다.


육아 번아웃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나를 위한 에너지를 비축해야 하고 그러려면 매 순간 긴장하고 있을 순 없다.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만 잘하면 된다. 

차키를 잃어버려도 아침에 먹을 게 없어 바나나만 먹여도 깜빡하고 어린이집 가방을 놓고 등원시키고 왔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부족한 엄마가 아님을 이제는 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루를 보냈느냐이니 그 외의 것들은 대강 넘어간다.


사소한 일은 사소하게 보고 중요한 일은 중요하게 보는 연습.

그것이 대강 철저의 마인드. 


조금 덜렁이여도 빈틈이 많아도

충분히 다둥이 육아를 할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할 수 있어서 요즘의 나와 우리 가족의 모습이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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