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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Feb 11. 2022

나는 내가 다둥이 엄마가 될 줄 몰랐다

똥꿈 스포일러

어마어마한 똥이 변기에 가득 차 있었다. 넘치려는 듯 꿈틀꿈틀 대는 똥덩어리들을 바라보며 밸브를 누르면 넘칠까 안절부절못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식은땀이 송골송골하며 화장실에서 깨어난 듯 꿈이 생생했다.


"여보 나 똥꿈꿨어!! 어마어마하게 큰 똥!!"


남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로또 사야겠네~”


와 인생에 이렇게 한 번은 부귀영화의 기회가 오는구나... 라며 신나게 로또 판매처를 찾아보다가 혹시나 하고 똥꿈을 검색했더니 웬걸 재복이 있는 아이의 태몽일 수도 있다고. 나의 부귀영화냐 아이의 부귀영화냐를 두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심했다. 그래, 나는 뭐 이 정도로 만족하고 아이의 재복을 밀어주자! 그날 나는 로또를 안 샀고, 며칠 후 임신을 확인했다. 올레! 간절히 기다리던 둘째 임신 소식은 그렇게 똥꿈으로 먼저 스포 되었다.


나의 첫째 딸은 순둥이였다. 백일이 되니 눕혀놓으면 밤에 깨지 않고 쭉 잤고, 낮에도 혼자 사부작사부작 놀다가 조용해서 가보면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이유식은 또 어찌나 잘 먹는지, 새로운 재료를 넣어도 거부 없이 넙죽넙죽 받아먹는 아기라 먹는 모습만 봐도 마음이 푸근해졌다. 내 논에 물들어오는 것과 내 자식 입에 밥 들어오는 거 보는 게 제일 기쁘다던데... 논은 한 마지기도 없지만 농부의 그 마음은 알 것 같았다. 딸이 말을 하기 시작하자 우리는 매일 심장이 녹았다. 아기의 혀 짧은 소리 한마디에 우리 부부의 입꼬리는 내려올 생각을 못 했다. 자식이 사랑스러우면 부부 사이가 좋아지는 걸까. 우리는 우리를 닮은 아이가 또 갖고 싶어졌다. 살면서 맛볼 수 있는 기쁨 중에 세상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기쁨만 한 것이 있을까. 이 광대한 우주에 별처럼 빛나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만큼 가치 있는 일이 있을까. 나는 그렇게 앞날에 드리우는 그림자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간절히 둘째를 꿈꿨다. 그런데 셋째라니...

똥꿈을 꾸고 임신을 확인했는데 이상하게 피검사 수치가 높더니 아기집이 두 개였다.


"쌍둥이 시네요"

첫째 때도 다닌 병원이라 의사 선생님이 내 눈치를 보며 말씀하셨다.


"네? 쌍둥이라고요?"

남편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입꼬리가 자꾸 씰룩댔다.


'오. 피자 하나를 시켰는데 두 판이 왔네?'

철없는 나는 내 가임 능력에 비해 효율적인 임신에 감탄하느라 남편의 얼굴이 흙빛으로 바뀌는 걸 몰랐다.


"일단 비밀로 하자."


다 큰 어른 둘은, 법적인 부부로서 합법적인 계획 하에 추진한 일을 각자의 부모님에게 비밀로 하기로 약속했다. 첫째를 갖기 전에 초기 유산을 한 적이 있었기에 안정기가 될 때까진 설레발치지 말자고 약속했는데 어쩌면 말하고 나서의 후폭풍이 걱정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약속이 무색하게 입덧 때문에 친정엄마에게 들키고 말았다. 엄마의 촉은 무당 저리 가라다.

" 너 임신했냐?"

" 어... 엄마, 나 쌍둥이래."

아차 싶었지만 엄마의 눈빛에 늘 이실직고다.

"뭐라고? 어쩌려고?"

나중에 들어보니 엄마는 그날 우황청심환을 드시고 주무셨다고. 첫째 때 임신했다고 하니 잘했다고 꼬옥 안아주시던 그 엄마가 아니었다. 임신 12주가 넘고 시부모님을 집으로 초대해 초음파 사진을 보여드렸다. 어머님은 사진은 못 보시고 축하해!라고 하시고 아버님은 싱글벙글 웃으시며 한참을 초음파 사진을 보시다가  "이거 두 개 아니냐?" 말씀하셨다. 나는 말없이 애매하게 웃기만 했다. 어머님이 무슨 소리냐고 하시며 사진을 보시다가 눈이 동그래지면서 우리를 쳐다보셨다.

"쌍둥이래요." 남편도 바로 이실직고했다. 앞이 깜깜해지신 표정으로 어머님이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어떡하니.."

양가 모두 아버지들을 싱글벙글하시고 어머니들을 어떡하니가 첫인사였다. 우리 둥이들의 등장은 그렇게 양가에 비상사태임을 알렸다.


쌍둥이 임신 기간은 매일이 살얼음판이었다. 1 자궁엔 1 태아가 맞는 것 같단 생각을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했다. 남산만 한 배가 아니라 중기에 이미 백두산이었고, 더 나올 수 있을까 싶었던 배가 발사를 앞둔 미사일처럼 곧 터질 듯 커져만 갔다. 24주가 되자 수축이 자꾸 잡혔고 이미 출산 경험이 있는 나는 애들이 흘러내릴 수도 있다는 말에 자궁 밑을 묶는 맥도날드 수술(맥 수술)을 했다. 산부인과 진료는 늘 기분이 안 좋지만, 맥 수술은 기분이 안 좋은 걸로 끝이 아니었다. 뭐랄까, 고문을 받는 느낌이랄까... 이게 진짜 고문이라면 나는 이미 기밀을 다 실토했을 것 같았다. 이번 임신이 마지막이라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뱃속의 아이들에게 우리 끝까지 버텨보자고 매일 기도했다. 너희가 건강하게만 태어나 준다면 엄마 아빠가 멋지게 키워 줄 테니 걱정 말라고. 37주에 수술 날짜를 받아왔는데 친정 아빠가 보시더니 수술시간을 당길 수 있냐고 물으셨다. 아마 사주 때문이리라. (아빠는 사주를 볼 줄 아신다.) 대학병원이라 수술 시간을 변경하기 어려울 테니 아주 나쁘지 않다면 그냥 예정대로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36주 4일 신랑과 둘이서 저녁을 먹고 오는 길에 산책을 하다가 도저히 걸을 수가 없이 배가 아팠다. 안 되겠다 싶어 그날 카페는 못 가고 밥만 먹고 집에 왔는데, 새벽에 주르륵 무언가 샌다. 이건 양수다. 첫째 때도 36주에 양수가 터졌는데 그땐 내가 이불에 실수한 줄 알고 급하게 화장실을 갔다가 뭔가 이상해서 긴가민가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우지끈 뚝 하는 느낌과 주르륵하는 느낌에 바로 양수가 터짐을 알았다.


경험이란 이렇게 몸에 선명하게 기억을 남기나 보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일어나. 양수 터졌어.” 놀란 토끼 눈으로 일어난 남편과 달리 나는 차분하게 일사천리로 지시했다.

“출산 가방 챙겨놓은 거 있으니까 그거 들고 내려가서 차 빼놔요. 엄마한테는 내가 전화해서 00이 자고 있으니 와 있어 달라고 할게." 양수가 터진다고 해서 애가 바로 나오는 게 아님을 알았지만, 그래도 양수가 줄줄 새서 서있기 힘들어 종종걸음으로 조심조심 차에 탔다. 내가 다니던 대학병원이 집에서 코앞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응급실에 들어가서 양수임을 확인하자마자 급작스럽게 진통이 시작되었다.


나는 몰랐다. 경산은 진행이 빠르다는 것을. 곧 나오기라도 할 것처럼 진진통이 걸린 나는 남편의 손을 쥐어뜯었다. ‘살려주세요’ 소리는 오히려 너무 아프면 잘 안 나온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새벽 3시가 넘어가니 곧 애들이 나올 수도 있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교수님을 기다리는데 아빠의 문자가 왔다. ‘지금 시간대에 태어나면 사주가 최고다’라고. 아 진짜... 나는 지금 똥 누러 온 게 아니라고요... 지금 끙차 하면 애가 순풍 나오는 게 아닌데... 아빠의 문자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사주가 좋다니 아픈 와중에도 기분이 좋았다. 너희가 최고의 사주를 타고 나오려고 지금 양수를 터뜨렸구나. 기특한 것들. 교수님이 오실 때까지 나는 이미 진통이 걸린 상태로 무통 빨도 잘 안 받아 계속 고통스러워하며 남편 손을 뜯었다가 남편 머리를 쥐어뜯었다가 했다. 주기적으로 파도처럼 오는 진통은 몸이 트럭 밑으로 깔렸다가 나왔다가 하는 듯했다. 드디어 교수님이 오시고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드리고 하반신 마취를 했다. 하반신 마취만 하고 제왕 절개하는 기분은 두 번째인데도 이상했다. 가슴 아래로 통증은 안 느껴지는데 움직임은 느껴진다. 이리 당기고 저리 당기는 기분. 전원이 켜진 채로 본체를 열어서 전선을 끄집어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으앵 소리가 나고 하나가 나왔다. 곧바로 하나 더 꺼낸다. 으애앵. 더 큰 소리가 난다.


"애들은 건강한가요?"

나는 첫째 때와는 달리 울지도 않고 차분히 물어보았다. 소아과 선생님이 빠르게 검사해보고 일단은 괜찮다고 건강하다고 하셨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양쪽에 젖도 물려주셨다. 나오자마자 엄마 젖을 물다니.

“둘 다 건강합니다.” 아 드디어. 이젠 잘 수 있다. 아이들을 꺼내고 잠든 채로 다시 꿰매고 회복실에 있다가 깨어났다. 아픔보다 기쁨이 크다. 쌍둥이인데도 2.99킬로, 2.89킬로로 단태아만큼 크게 나와 니큐에 가지 않아도 된단다.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너무 고마워. 일단 낳았으니 큰 산은 넘었다.

나는 그렇게 다둥이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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