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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Feb 11. 2022

의미 있는 것을 하고 있다는 감각

정신의 코어 근육 기르기


나를 잃지 않으려면 의미 있는 것을 하고 있다는 감각이 중요하다.

나에게 그러한 감각은 읽고 쓰고 생각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경험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SNS로 기록을 남기는 시대에 나는 점토판에 끌로 상형문자를 새기듯 노트에 연필로 꾹꾹 눌러쓰는 것을 좋아한다. 글을 쓰는 것은 그 행위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디지털로 기록을 남기는 것과 달리 종이로 된 노트에 연필로 쓰다 보면 생각나는 대로 끼적일 수 있고, 잠깐 멈춰 모퉁이에 그림도 그리고 모서리를 접어둘 수도 있어서 좋다. 나무의 질감이 느껴지는 듯한 종이에 샤프로 사각사각 글을 쓰는 행위는 마치 날렵한 조각칼로 뇌에 글자를 새기는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정말?



다 쓴 노트를 휘리릭 넘기다 보면 내 눈길을 잡아끄는 과거의 내가 있다.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고, 이런 말들을 했고, 이런 일에 기쁨을 느꼈고, 이런 일로 분노했구나. 새삼 다른 이의 일기를 보듯 나를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된다.

글쓰기에는 스스로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만나 머리를 맞대고 미래의 나를 위해 고민해 줄 수 있다.


기록하지 않으면 휘발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일상이 반복됨을 느낀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그저 내 우물에서 보이는 게 세상이려니 안주하고 보이는 것만 믿게 된다. 나는 그렇게 쪼그라드는 세계가 답답했다. 내가 사는 우물의 평수를 넓히고 싶었다. 허겁지겁 허기를 채우듯 책을 읽어 나갔다. 새로운 책을 찾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장 좋은 건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며 내가 이걸 읽은 게 맞나새삼 놀라는 일이 아닌가 싶다. 처음 읽을 때엔 생각의 씨앗을 뿌리며 읽었다면, 두 번째 읽을 때엔 뿌린 씨앗이 얼마나 자랐는지 보며 읽을 수 있었다. 처음 읽을 때 우물이 넓어지고 다시 읽으며 우물이 깊어진다.


아이들이 먹고 소화하고 배변하는 활동이 하나의 과정이듯, 읽고 생각하고 쓰는 과정도 자연스러운 순환이다. 우물의 평수를 넓히기 위해 읽은 책들이 지식의 소화기관을 거치며 흡수되고 발효되어 내 안에 쌓였다. 이것을 글로 쓰고 다시 정제된 글을 읽으면서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외부에서 내려다보게 된다. 의식이 생기고 생각이 또렷해질수록 생각하는 대로 살려고 하는 나를 발견한다.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된다.


소비를 통하여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인간의 정체성은 생산을 통해 형성된다


나는 이걸 이렇게 이해했다.

읽기를 통하여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인간의 정체성은 쓰기를 통해 형성된다. 

읽은 것, 읽으며 기록한 것, 기록한 것을 다시 읽는 것, 기록한 것을 다시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 정리된 생각을 다시 글로 풀어쓰는 것. 이 중 어느 것 하나 같은 게 없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책의 메시지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읽은 책을 떠올리며 궁금증을 만들어 보는 것, 글 쓸 소재를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굴려가며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정신적으로 소모되지 않는다.


마음껏 퍼내도 샘물은 다시 차오르듯 머릿속에 몽글몽글 질문이 차오른다. 질문에 성급하게 대답하기보다 질문을 살아내기. 일상에서 가슴에 물음표를 많이 달고 주변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메마른 감성에 물을 촉촉이 적시는 효과가 있다.


매일 책을 들추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글을 쓰며 하루를 돌아본다. 나의 내공이 쌓이는 시간. 정신의 근육에도 코어가 있다면 지금 내가 하는 루틴은 정신의 코어 근육을 기르는 시간이다. 소모임은 이런 나의 루틴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는 종이보다 얄팍한 나의 의지를 믿지 않고 굳건한 시스템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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