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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Feb 11. 2022

습관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

공동체의 힘

아이들을 돌보면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겠다는 다짐은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 집에 와서 집안일을 시작함과 동시에 사라진다. 나만의 시간은 집안일을 하고 나서 남는 시간에 하는 게 아니라, 어떤 다른 일보다 우선해야 하는 시간이다. 억지로 틈을 벌려 자리를 맡아놔야 생기는 시간이지 주어지는 시간이 아니다. 


만들고 싶은 습관이 있다면 그 습관을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집안일에 시스템이 필요하듯, 나만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좋은 습관을 지속하려면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때의 시스템은 루틴을 함께하는 공동체의 힘으로 굴러간다. 아무도 읽지 않는 세상에서 혼자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토끼들의 세상에 사는 거북이가 된 것과 같았다. 다들 달려갈 때에 혼자 느릿느릿 기어가는 느낌이다. 심지어 자주 멈춘다. 지름길을 두고 빙 둘러 가는 길을 찾는 것 같았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쳐서 다시 돌아올 뿐이었다. 혼자 가는 길은 발에 채는 조그만 자갈도 깊이 박힌 바위처럼 느껴진다. 함께 가다 보면 툭툭 걷어차고 갈 수 있는데도. 혼자서 책을 읽는 것은 당장 내가 그만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취미였지만,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부터는 의미 있는 활동이 되었다. 나를 격려해 주는 공동체를 직접 만들어 보고 꾸려가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 없던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창조라고 볼 수 있다.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이루려면 공동체가 알아서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나는 온라인으로 책 모임을 만들어 3년째 이끌고 있고 독서토론 모임과 글쓰기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다. 모두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므로 나처럼 아이를 키우느라 이동의 제약이 있는 엄마들이 주로 함께한다.

내가 이끌고 있는 독서모임의 시스템은 간단하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으로


1. 일정한 루틴을 공표하기(매일 하루 두 쪽 읽고 한 줄 이상 리뷰하기)

2. 리뷰 후 셀프 투표(매주 투표 창 열고 주말 자정에 종료)

3. 지키지 못했을 경우에는 기부하기(벌금이 아니라 기부를 통해 사회환원)


이 세 가지만 정해져 있으며 매일 각자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의 리뷰를 올리고 그날그날 투표한다. 일요일 자정까지 책 리뷰와 투표를 마치면 투표 종료 후 루틴 달성을 못한 사람은 기부하기를 한다. 혼자서 골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판이 깔려있는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신나게 같은 취미를 공유할 수 있었다. 책을 읽다가 너무 좋았던 부분이나 갸우뚱했던 부분을 같이 이야기 나누기에 온라인 책모임은 더없이 좋은 플랫폼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기에 더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 혼자라면 잊어버릴 수 있지만 함께라면 매일 서로를 격려하며 꾸준히 걸어갈 수 있다.


책 모임이 읽은 것을 토대로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말하는 것이라면 글쓰기 모임은 백지에 나의 생각을 선보이는 것이라 처음에는 이런 걸 써도 되나 머뭇했다. 내 의견을 드러내는 경험이 별로 없었을뿐더러, 아무래도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그랬던 것 같다. 수치심을 무릅쓰고 솔직하게 내밀한 나의 생각을 글에 쏟아붓고 다른 사람에게 내 글을 보여주는 연습을 하면서 서서히 부끄러움도 무뎌졌다. 어차피 다른 사람은 내 글을 나만큼 열심히 보진 않는다.


글은 타임캡슐이 아니다. 

묻어두고 나중에 열어봐야지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를 이해해 주고 격려해 주는 공동체에 공유함으로써 한 번이라도 더 말해야 또렷해진다. 글쓰기 모임에서 받은 격려와 글에 관한 피드백 덕에 여기까지 왔다. 브런치에 나의 생각을 올려 얼굴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까지도 내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나는 글쓰기 모임에서 얻었다.


공동체를 통해 취미를 함께 공유하면서 자동으로 생긴 루틴들은 이제는 나를 매일 굴러가게 하는 바퀴가 되었다. 매일 두 쪽씩 책 읽기와 매일 글쓰기는 혼자 하면 작심삼일을 넘기기 어려운 일이지만, 함께하는 공동체와 시스템을 구축하면서부터는 어느 순간 '자기 전 이 닦기'처럼 안 하고 자면 찝찝한 루틴이 되었다.


습관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구나. 

결국 하루를 어떻게 시스템화했느냐가 내 일상의 만족감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하원하면 나는 풀 충전된 상태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지속가능성'은 요즘 나의 삶의 화두이다.

나는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꿈꾼다. 

육아는 하루 이틀 하는 일이 아니니까. 지속 가능한 일상을 꾸려가며 우리 아이들이 독립할 때까지 건강하게 완주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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