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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Mar 10. 2023

마음속에서 찰칵하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들.

내 손으로 만드는 나만의 가족문화

1. 마음속에서 찰칵하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_일상 속 순간포착


다둥이 가족의 진정한 해방은 첫째 나이 기준이 아니라 막내나이 기준이랬다.

실제로 우리 집 막내인 둥이들이 세돌이 지나니 신세계다. 기저귀를 떼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게 가능해지고, (가끔은) 말로 설득이 된다. 둥이들도 자기만의 의견이 생겼고, 때론 말대답도 곧잘 한다. 자의식이 생기고 있는 거다. 우리 가족이 또 한 단계 훌쩍 큰 느낌이 든다.


일주일 전. 남편 직장일로 다시 부산에 갈 일이 생겼다. 두 달 전에 부산에 갔을 때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었던지라, 휴가를 더 내서 이번에는 3박 4일의 일정으로 부산에 갔다. 부산역에 내려서는 택시를 타고 다녔는데 우리가 어린아이 셋을 태우자 택시기사님들은 모두 신기해하셨다. 부산에서는 아이가 많이 없고 노인만 많다며,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과 걸어 다니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인사해 주고 귀여워해주셨다. 환대받는 느낌이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아침을 먹으러 걸어가는 길이었다. 트럭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를 보더니 아이들에게 웃으며 '아이고 이뻐라~' 하셨다. 그래서 아이들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자,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이런 이뿐이들은 어디서 왔나~?


그래서 내가 '저희는 서울에서 놀러 왔어요'라고 대답하려는데, 옆에서 셋째가 나보다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 뱃속에서 (나)왔어요!


셋째의 말에 트럭에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이고~ 명답이다!' 하셨다.

애들 손을 잡고 걸어가던 나와 남편도 미소를 지었다. 어쩜 이런 대답이 나올까. 기특하고 신기하다.


쌍둥이 만삭 때 둘째가 아래에 있고 셋째가 위에 있느라 셋째의 태동이 유독 잘 느껴졌다. 셋째는 뱃속에서부터 발차기를 뻥뻥하며 내 갈비뼈를 힘차게 찼다. 새벽에도 태동이 아파서 깰 정도였다. 쌍둥이 엄마들 중에서 실제로 임신 중에 갈비뼈가 부러지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살살 좀 차. 출산 전까지 매일 부탁했다. 그랬던 그 아이가 세돌이 지나, 엄마 뱃속에서 나왔다고 하다니.

  

부산의 따뜻한 날씨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에서 아이의 대답을 듣고 있으니 그 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어졌다. 마음속의 사진기로 찰칵! 하고 남기고 싶은 순간이었다.





2. 나만의 가족을 만들어서 좋은 점_ 가족문화 만들기


자식을 낳고 나만의 가족이 생기고 가장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내가 우리 가족만의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 같다. 어릴 적에 우리 부모님이 만든 가족문화와는 조금은 결이 다른 나만의 가족문화,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우리 집만의 문화를 만드는 재미를 요즘 느끼고 있다. 인제 갓 6살 4살 4살이 된 아이들과의 일상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얼마나 몸과 마음이 말랑말랑한 존재인가 느낀다.


내가 꿈꾸던 아이들과 있는 집의 모습을 요즘 문득문득 만나게 된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원고를 쓰다가 바스락 소리가 나서 깨어 나가 보니 거실에 첫째가 나와있었다. 다시 재우려는데 안 잔다고 하길래 그대로 두고 나도 거실로 노트북을 들고 나와 마저 하던 일을 했다. 첫째는 내가 뭘 하는지 보더니 책장에서 자기 책을 몇 권 골라와서 읽기 시작했다. 조용한 아침. 아이와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책을 읽은 한 시간 반 남짓의 시간이 평화로웠다.



나에게는 <나의 가족>에 대한 이상적인 그림이 있었고 그러한 그림이 은연중에 나의 말과 행동, 주변환경의 조성등에 영향을 준 것 같다. 아침에 거실로 나와서 책 읽고 있는 엄마를 보고 자기도 책을 꺼내 읽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내가 원했던 우리 가족의 모습이 이런 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공간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서로를 방해하지 않지만 함께 있으면서 위안을 얻는 것. 아이들이랑 함께 있으면서 그러한 그림을 실현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아이를 낳길 잘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 몸을 통해 나왔지만, 나와는 다른 인간인, 아이들과 함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공간과 시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면서도 뿌듯하다.




3.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_ 상상을 현실로.


어쩔 수 없지만 자동적으로 나의 유년 시절과 지금의 우리 가족의 모습은 비교가 된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항상 분주하게 바빴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금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없었던 그때의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면 안쓰럽기도 하고 그렇게 빡빡하게 우릴 대하지 말고 좀 더 따뜻하게 대해주시지 원망스러운 마음도 든다. 그 상황을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진 않다.


나는 아이들이 부모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옆에 있고 싶다. 너무나도 짧은 유년시절에 아이들과 찐하게 함께하고 싶다. 아이들이 부모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때에 사는 게 바쁘다고, 혹은 귀찮다고, 혹은 몸이 힘들다고 아이의 요구를 외면하고 싶지 않다.


반대로 이제는 혼자 해보겠다고, 밖으로 나가보겠다고, 재밌게 세상으로 나아가겠다고 나가는 아이의 발걸음에 괜찮겠냐며 걱정을 가장해서 괜히 매달리고 싶지도 않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바라는 게 있듯,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바라는 것도 당연히 있다. 내가 자유롭게 사는 동안 부모가 부모자신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아마 자식이 부모에게 바라는 모습일 거다.


어떻게든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고 나로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이들과 같이 있을 때에는 오늘이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함께 있는 시간에 푹 빠져있으려고 한다.  이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일을 매일 하려고 한다. 그래서 고되다.


나만의 안정된 가족문화를 만들고 그 속에서 아이들이 자기만의 모양대로 자라도록 도와주고 그리고 어느 순간 아이들이 떠날 때가 오면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내주는 것. 그것이 내가 꿈꾸는 내 가족의 모습이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  팽이가 돌아가기 위해서 구심점이 되는 축이 있어야 하듯 우리 가족의 문화를 만들고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나의 신념과 주관이 있어야 한다.

때로는 내가 어쩌자고 애를 셋이나 낳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는 내가 꿈꾸는 가족의 모습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곤 한다.


나의 상상은 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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