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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Mar 22. 2023

새 학기가 시작되자 아이가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버퍼링이 걸린 아이 기다려주기

새 학기가 시작되자 아이가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앞이 잘 안 보이는 건지, 눈이 피곤한 건지, 눈꺼풀을 감았다 떴다 하며 눈에 힘을 주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일주일쯤 지나면서 아이는 잘 다니던 유치원도 안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작년에 다니던 유치원이고, 작년에는 잘만 다녔던 아이였기에 깜짝 놀랐다. '유치원에서 무슨 일 있어?' 물으니 힘들다고 했다. 태권도도 빼고 집에 데리고 있어 보니 눈을 깜빡이는 횟수가 잦았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왜 이러지?


뭐든지 잘 따라오고 키우기 수월한 아이인 첫째였기에 갑작스러운 변화에 나는 당황했다. 눈을 깜빡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비염이 있어서 그런 건가 싶어 이비인후과도 가보고, 책을 많이 봐서 그런가 싶어 눈을 쉬라고도해보고, 잠을 더 재워보기도 했는데도 별 차이가 없었다. 남편은 보더니 약한 틱일 수도 있다고 했다. 남편도 틱이 있기 때문에 유전일 수도 있다는 말에 괜히 마음이 더 안 좋아졌다. 왜 그런 걸 물려받았을까.


아이가 눈을 자주 깜빡이는 모습을 보니 속이 답답해지면서 동시에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돌아보게 되었다. 최근에 내가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준 게 있었나?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이랑 유치원을 너무 오래 다녀서 그런 건가? 끝도 없는 질문들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최근에 생긴 변화는 6살이 되면서 같은 유치원이지만 반이 바뀌었다는 정도의 환경변화뿐인데... 급기야 아이는 동생이 하는 말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어눌한 말투까지. 게다가 동생들을 재우려고 하면 자기가 엄마 옆에서 자겠다고 성화였다. 동생처럼 아기로 다뤄달라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생각해 보니 첫째는 내가 둥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에도 말을 더듬어서 나를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어떤 말을 시작하려고 하기 전에 바로 말이 나오지 않아 힘겹게 말을 더듬다가 단어를 뱉고 했었다. 나는 동생 스트레스인 줄 알고 첫째를 부둥켜안고 미안하다며 울기도 했다. 그때 필요이상으로 자책을 한 것 같은 게, 지금은 너무나도 말을 유창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은 늘어나는데 아직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시기라 그런 현상이 일어났던 거였다.  


돌아보니 이런 순간들은 아이를 키우다 보면 너무 자주 만난다.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생각이 반복해서 드는 순간들. 그때그때 열심히 최선을 다해 키웠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질문에는 나도 모르게 움츠려든다. 나의 모든 행동들을 돌아보며 하나씩 검열해 나간다. 혹시나 내가 임신 중에, 신생아 때, 어린이집 다닐 때, 유치원 다닐 때, 최근에, 이러이러해서 아이가 지금 이러는 게 아닐까? 원인을 찾다 보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여러 일들이 마음에 걸린다. 잘못이라 여겨지면 나도 모르게 반성이 되고 주춤해진다.


아이를 키우다 보며 만나는 여러 가지 일들은, 지나고 보면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일들이었음에도 그 순간에는 혼란스러움과 자책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순간들이 많다. 말을 더듬던 일도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아이가 음음~ 하며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던 것도 시간이 지나자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눈 깜빡임도 어쩌면 아이의 몸과 마음이 급격하게 자라고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버퍼링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컴퓨터가 버퍼링이 걸렸을 때라면 껐다 켜거나 하겠지만, 아이가 성장 중에 버퍼링이 걸린다면 부모로서는 차분하게 기다려줄 수밖에 없다. 아이를 다그치거나 부모가 스스로 자책하느라 애먼 에너지를 낭비하는 건 도움이 안 된다.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뿌옇게 보이는 흙탕물도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불순물들이 가라앉고 맑은 물만 동동 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 옆에서 바라보며 시간을 함께 보내고 아이의 버퍼링이 차분해지기를 기다릴 뿐이다. 물론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의료적인 치료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호들갑을 떨지 않고, 자책을 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 우선이다.


이제는 그냥 이러한 순간들을 만나면 잠시 멈춰서 뒤돌아본다. 내가 가는 길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길인지, 그냥 맹목적으로 가는 길인지 돌아본다. 열심히 달리기만 하다가 잠시 멈춰 서서 머뭇거려 본다. 머뭇거림은 자신감의 부족이 아니다.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방향이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인지 한 번 더 확인을 해주는 기회다. 아이를 키우며 만나는 이러한 머뭇거림의 순간마다 나침반을 보듯 나의 목표와 철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아이의 눈을 좀 더 유심히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에게 좀 더 귀 기울이려고 한다. 아이가 버퍼링이 걸린 순간을 하나의 신호로 삼아 잠시 멈춰 숨을 고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어? 


스스로 행복을 만드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 


아이에게 행복한 어른의 모습이란 어떤 삶인지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며 겪는 성장통에 호들갑 떨지 않고 묵묵히 옆을 지키는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 또 이런 순간들이 세 아이를 키우며 무수히 많이 맞이할 거다. 각오하고 예상하고 준비했다 치더라도 매번 당황하고 긴장하겠지만 그러한 과정들도 모두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사랑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스스로 행복을 만드는 어른으로 자라도록 나부터 매일의 행복을 만들어야겠다. 아이들을 한 번 더 따뜻하게 안아주고 남편에게 다정하게 대하고 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어야겠다. 아이들 덕에 나도 좀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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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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