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의 눈 깜빡임은 안과에서는 알러지라고 했다. 요즘 미세먼지가 안 좋고 황사도 있고 그래서 눈에 알러지가 생긴 거라고. 일단 안약을 처방받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은 원인을 알기만 해도 사라지는 부분이 있다. 안약을 수시로 잘 넣어주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안약을 넣기만 해도 아이가 눈을 덜 깜빡이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일단 하나는 숨 돌렸다.
하지만 내게는 자식이 둘 더 있고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각자 다르다.
둘째 아이는 목욕을 시킬 때마다 명치뼈가 앞으로 살짝 나와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유아검진 때 물어보니 '새가슴'인 것 같다고 해서 대학병원에 갔더니 새가슴이 맞단다. 가슴뼈가 약간 튀어나오는 증상인데 아직 뼈가 말랑말랑한 나이라 수술 대신 교정기만 몇 달 잘해도 뼈가 들어간단다. 빨리 알아차려서 병원에 왔고, 벨트처럼 생긴 교정기만 일정시간 채우면 충분히 교정이 가능하대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밤마다 둘째는 교정기를 하지 않겠다고 찢어지게 울었다. 듣고 있기가 힘들 정도였고 울음소리가 격해지면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아무래도 뼈를 누르는 벨트라 답답해서 그런 듯했다. 어른이라면 교정을 하는 게 중요하니 불편함을 감수하라고 하겠지만, 아이입장에서는 갑자기 가슴에 벨트를 매라니 난감할 수밖에. 얼굴이 빨개지도록 하기 싫다고 빽빽 우는 아이를 바라보며 내가 지금 뭘 하는 건가, 이렇게까지 하기 싫다는 애를 잡고 억지로 교정기를 하는 게 맞는 건가 회의가 들었다.
종국에는 내가 임신 중에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 아이의 가슴뼈가 튀어나오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쌍둥이라서 안 그래도 자궁이 좁았을 텐데 얘가 더 아래에 있어서 위에 있는 쌍둥이 동생에게 짓눌려서 그런 건가?
이런 생각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원인을 자꾸만 찾는 것은 현실을 바꾸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배경음악처럼 자동적으로 재생되는 거라 제어가 안된다.
내가 임신 중에 무얼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가슴뼈가 튀어나올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원인과 결과가 일대일로 대응되는 것은 아니다.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임신 중에 무슨 잘못을 해서?라는 질문을 마음속에서 박박 지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질문을 새긴다.
그래서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교정기를 3주간은 매일 20시간씩 채우고, 그다음 한 달은 12시간씩만 교정기를 채우면 된다.그다음엔 6시간 이런 식으로 착용시간이 줄어든다고 했다. 지금은 12시간만 채우는 시기니까 잠들기 전에 교정기를 채우고 아침에 풀어주면 된다. 내가 할 일은 다음 진료까지 12 시간 채우기를 매일 설득해서 하는 일이다. 너무 길게 내다보며 걱정하거나, 쓸데없는 원인을 찾는 일은 그만하고 하루하루에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자.잘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만나는 문제상황들이 대부분 어떤 잘못이라기보다 그냥 일어나는 일인 게 많다.내가 뭘 잘못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라 그저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제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자연스레 겸손해졌다. 어쩌면 자식을 키우는 과정은 겸손해지기 위한 끊임없는 트레이닝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내가 잘해서 애들이 잘 크는 게 아니라, 만약에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면 감사해야 할 일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