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더빌의 "꿀벌의 우화"(The Fable of the Bees: or, Private Vices, Publick Benefits)를 아시나요?
18세기 초 영국의 철학자이자 의사인 버나드 맨더빌(Bernard Mandeville)은 개인의 이기심에 기초한 악덕 (허영심, 탐욕, 욕구 등)이 모여서 사회의 번영을 만들어 낸다는 주장을 꿀벌에 비유하여 설명했습니다.
한 마리의 꿀벌은 꿀과 꽃가루를 탐하는 것이지 벌집의 번영을 목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욕구를 기반으로 한 행동이 모여서 꿀벌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죠.
맨더빌은 전통적인 도적적, 윤리적 의무로서의 노동과 소비가 아닌 개인의 동기와 욕망을 기반으로 한 행동들이 사회를 풍요롭게 만든다는 당시로선 도발적인 우화를 작품에 담았습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
저축, 투자 등 경제적 활동에 관심이 많은 인간을 의미하는 좁은 의미를 넘어 인간을 합리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 존재로 묘사할 때 사용하는 개념입니다.
인간은 합리성에 둔 선택을 한다는 호모이코노미쿠스의 행동 제 1원칙은 개인의 최대 이익 추구입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이 합리적인 선택들이 모여서 경제적 효용이 극대화되는 사회를 구성합니다.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작동 원리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듭니다.
우리는 매 순간 경제적 효용이 가장 극대화되는 선택을 하고 있나요?
<사례 1>
현대차 영업사원은 어쩜 그렇게 말이 청산유수인지 듣는 내내 홀려갑니다.
중고차 단지도 다녀왔지만 차는 역시 새차겠지요.
이번달에 계약하면 취득세도 50% 지원해 준다고 합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죠.
아반떼로 생각하고 왔는데 상담을 받아보니 혜택도 풍부하고... 역시 차는 소나타죠?!
60개월 할부로 결제하였습니다.
<사례 2>
국세청에 신고된 2022년 국내 기부금 규모 총액은 약 15.1조 원으로 2021년보다 약 5천억 원 줄었다고 한다.
법인 기부는 전년대비 9천억 원 감소하면서 최근 10년간 가장 적은 금액이었으나, 개인 기부는 팬데믹 기간에도 전년도 보다 약 4천억 원 늘어 약 10.7조 원으로 기록되었다.
판데믹 기간 동안이어진 경기 침체로 개인의 삶은 팍팍해졌지만 개인 기부 규모는 도리어 늘어난 것이다.
<링크>
<사례 1>의 주인공이 경제적 효용이 극대화되는 합리적인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일상적인 이동시 발생하는 대중교통 비용 = 기존 비용 A
차량 구매 비용 + 세금 + 유지비 (유류, 보험 등) = 신규 비용 B
중고차 매각 비용 = 회수 가능한 비용 C
차량 이동으로 발생하는 부가 가치 = 창출 가치 D
A > B-C 인 차를 구매하는 것이 유리하다.
또는 D > B-C 인 경우에도 차를 구매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A > B-C를 위해 신규 비용인 차량 구매 비용을 낮춰야 합니다.
아반떼도 아닌 소형차를 구매하는 게 더욱 합리적이죠.
그리고 지출과 회수 가능 금액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중고차를 구매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최대한 감가 된 차량으로요.
또한 이 사례에서 주인공은 차량이 영업 목적은 아닌듯하니 구매로 창출될 가치는 0으로 수렴하겠네요.
모름지기 호모이코노미쿠스라면 이 같은 합리적인 비교와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는 것이 당연하지만 실제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디자인이 예뻐서, 급매물이 나와서, 할인률이 좋아서, 가족이 선호해서 등 이유로 구매할 차량을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사례를 살펴봅시다.
판데믹 기간 동안 법인 기부는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법인 기업은 경기가 침체되고 기업 활동이 위축되면 비영업활동인 기부를 줄이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개인은 다르네요. 오히려 기부 규모가 늘어났습니다.
물론 저 중에는 세금 감면의 목적으로 확대 신고된 개인 기부가 있을 수도 있지만 법인 기업의 감소분을 고려하면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기부라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최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호모이코노미쿠스의 행동으로는 해석되기 어려운 부분이죠.
그러니까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의 선택을 좌지우지하는 이유는 '개인의 이익/ 경제적 효용의 극대화'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맨더빌의 꿀벌 우화로 돌아가 봅시다.
멘더빌은 인간의 행동은 항상 합리적이진 않으며 이기심, 욕망, 과시, 비도덕성, 사치, 탐욕, 호혜성 등 다양한 내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풍자하였습니다.
그는 이 개인의 욕망을 '악덕, 비도적적' 행동으로 정의하고 악덕에 기반한 행위만이 사회를 번영시킨다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좀 무리하게 들립니다.
인간의 사치와 과욕이 번영을 무한하게 할까요? 개인의 단합, 단결, 동기부여를 비도적적 원인에만 기댈 수 있을까요?
두 개념 모두 18세기말 19세기 초 시작된 것으로 개인의 선택을 설명하기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호모이코노미쿠스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동에, 멘버빌의 우화는 과도한 단순화와 사회의 지속 성장에 대한 의문을 남겼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개인을 설명하기 위한 심리학연구들이 시작되고 1970년대에 이르면 이 연구들이 경제학과 통합되면서 그 유명한 '행동경제학'이 태동하게 됩니다.
수세기에 이어진 '사람은 왜 그런 선택을 할까?'라는 질문에 대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 기업들에게 '고객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할까?'로 이어집니다.
다음 주부터는 고객이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게되는 ‘원인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선택한 원인을 알면 거꾸로 유도할 수도 있겠죠.
한줄 요약 : 인간은 개인의 이익과 경제적 효용을 극대화하는 합리적인 선택만을 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