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어느 날 하와이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모든 사람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난 북극권의 추위를 뒤로하고 런던 게트윅 공항, 뉴욕 JFK공항을 거쳐 하와이에 다다랐기 때문에 내 발에는 스웨덴에서 산 두꺼운 부츠가, 손에는 두꺼운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물론 머리엔 노르웨이 국기가 그려진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Aloha~ Mahalo~”
내일 우리 가족은 내가 지금 있는 여기 하와이 오아후에서 모인다. 어머니와 작은 누나는 서울에서, 큰누나 가족은 옆에 있는 빅아일랜드에서 올 예정이다. 잠시 화장실에서 모든 무거운 옷을 벗고 비교적 얇다고 생각하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하지만 지난 몇 개월간 북유럽에 있었기에 가방에 더 이상 넣을 공간이 없어 부츠는 그대로 신고 다녔다. 버스를 타고 미리 예약한 와이키키에 있는 호스텔로 이동했다.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오아후의 높은 건물들과 알라모아나 쇼핑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러 프랜차이즈 식당들 또한 많이 보였다. 거리에는 명품 브랜드 샵이 넘쳐났다.
‘하와이도 미국은 미국이로구나.’
호스텔이 있는 와이키키에 다다르자 하늘색 바닷물과 새하얀 백사장에서 사람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따스함, 생명, 열정, 낭만, 활기참이 느껴졌다. 그리고 엄청난 행복과 환희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지난 몇 개월간 있었던 북극권 너머에선 하늘, 땅, 나무 모든 것이 흑과 백으로 나누어졌었다. 하늘은 회색이었고 바닥은 흰 얼음으로, 잎 없이 말라비틀어진 가지만 남은 나무들은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반면 이곳은 다채로운 색이 있었고 그 빛은 살아 숨 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생명의 활기로 다가왔다.
버스에서 내려 호스텔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남의 눈을 의식하는 가장 험난한 시간이 시작됬다. 발에는 부츠, 등에는 물건이 가득 담긴 백팩, 손에는 적당히 큰 캐리어가 들려있었고 누가 보기에도 하와이가 아닌 히말라야에 가는 사람의 완전 군장이었다. 사실 하와이에서 모이자는 계획은 내 여행 초기에는 없었다. 그래서 북유럽 여기저기를 떠돌며 기념품도 사고 그렇게 갖고 싶어했던 노르웨이 스웨터와 털모자도 샀는데 어머니의 가족 소집으로 급작스럽게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지상낙원 하와이가 마지막 행선지가 된 것이다. 더위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길이 험난한 것은 와이키키에서 나와 마주친 모든 이가 날 보며 비웃기 때문이었다. 만화에서 쥐가 쥐구멍으로 들어가듯 우당탕탕 달려 게스트하우스로 쏙 들어갔다. 그곳에서 마주친 직원들의 시선에 대해선... 생략하겠다.
와이파이 비번과 방 키를 받은 후 10인실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니 널부러진 옷들, 테이블 위에 다 먹은 컵라면 용기 그리고 몇몇의 유럽에서 온 친구들, 일본에서 온 친구들이 있었다. 간단히 인사하고 시차가 있어 피곤했는지 잠시 침대에 누웠다.
몇 시간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이미 늦은 오후의 해가 지기 시작한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조금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한 후 바닷가로 나갔다. 남국의 따스한 선셋.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에 나와 낭만스런 모습으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염없이... 나도 지난 수개월동안 보지 못한 남국의 바닷가 선셋을 바라보았다. 주변에 보이는 야자수, 볼을 따라 스치는 따스한 바람, 짧은 옷과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 백사장에 타올을 깔고 선셋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낭만적이었다. 연하늘색 그리고 연주황빛의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하와이를 방문한 모두에게 특별한 시간이었다. 이제 하늘이 점점 검게 변하면서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와이키키가 어두워지자 이제 시끌벅적한 파티시간이 시작되었다. 곳곳의 레스토랑, 몰, 펍, 바에 사람들이 가득 찼으며 와이키키는 축제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혼자라는 고독함도 더 커져갔다. 하와이는 정말 여럿이 몰려와 놀기좋은 섬이다.
지난 수개월 동안 있었던 북유럽에서 그 나라 친구들에게 나는 가끔씩 이야기했다. 너희 북유럽 사람들은 상당히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길거리에 가방을 내려놓아도 누구도 가져가지 않을만큼 정직하다고. 반면 내가 한발짝 다가서면 두발짝을 물러선다고. 상당히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서도 어떤 때는 굉장히 냉정해 보인다고. 재미있는 사실은 덴마크 친구도, 스웨덴 친구도, 노르웨이 친구도 모두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지난 몇 주간 있었던 북유럽 북극권 너머에서는 모든 것이 검고 희고 회색 빛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자연으로부터 볼 수 있는 빛깔은 한밤중 오로라의 녹색이었다. 그래서 오로라가 더 빛나 보였다. 이곳과 대조적으로 그곳에서의 물은 검은색이었다. 마찬가지로 외딴 곳에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고 모든 것이 고독했기 때문에 오랜기간 여행하는 동안 나는 고독함에 익숙해졌던 것 같다. 북유럽의 겨울은 오후 3시만 되면 캄캄해진다. 개인적으로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서리 거인들이 사는 이러한 약간 어두운 날씨, 모든 것이 추위에 얼어버린 듯한 곳을 좋아했다.
반면 하와이는 파란 하늘과 하얀 백사장, 에메랄드 빛 물, 모든 것이 다채로웠다. 햇살이 빛났고 가는 곳마다 에너지가 넘쳐났으며 활기가 느껴졌다.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활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러한 지상낙원에선 사람들 또한 상당히 사교적이었다. 어느 곳에서나 친근감있게 인사하고 다가왔다. 이렇게 사교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고 시끌벅적한 곳에서 어느 하나 같이하지 못하는 것이 더 고독하게 느껴졌다. 와이키키를 걸으며 유명 레스토랑이자 펍인 하드락 카페, P.F. CHANG, 치즈 케익 팩토리를 지나쳤다. 와이키키 명품 샵, 백화점, 쇼핑센터에서 쇼핑백을 한 움큼씩 쥐고 다니는 사람들도 마주쳤다. 후드 트럭에서 새우요리나 포케, 무수비(스팸 주먹밥)를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거리를 걸으며 들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음악 소리, 춤추는 모습과 애정 넘치는 커플들. 그들 속에서 나는 완벽한 타인이었다. 모든 곳이 밤을 넘어 새벽이 지나도록 환희에 넘치는 이곳에서 나는 혼자이기에 더 큰 고독감을 느낀다. 나는 아웃사이더였다. 하지만 무슨 생각이었는지 이 길을 조금 더 오래 돌았다. 해변가부터 쇼핑몰과 레스토랑이 밀집되어있는 와이키키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돌면서 느꼈던 점은 지난 몇 개월간 북유럽과 독일을 여행하면서는 혼자 다니는 것에 너무 익숙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진 부탁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이곳에선 사진 부탁하는 것도 선뜻 내키지 않았고 혼자 다닌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하룻밤만 지나면 가족들이 온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은 내일부터 시작한다. 그러한 마음으로 내일의 희망을 기약하며 호스텔로 돌아왔다. 같을 방을 쓰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는데 대부분이 일본 사람들이었다. 하와이에는 일본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곳곳에 일본어로 된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와이 경제의 많은 부분을 일본사람들이 차지한다고. 지금이 한밤중이긴 하지만 불야성과 같은 와이키키 거리를 생각하며 조금 적적해서 뭐라도 한잔하러 나가려 했으나 예의 바른 일본 사람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바깥은 파티와 축제로 가득찼지만 우리 호스텔의 이방은 그렇지 않았다. 상당히 진중한 사람들로만 모인 듯이 보였다. 심지어 그들 중 일부는 학회 참석차 온 것이었다.
‘하와이에서 학회라니. 이 지상낙원에서?’
누군가 우리의 모습을 보면 패색이 짙은 아웃사이더와 같은 모습으로 파티로 가득한 하와이의 밤을 조용한 방안에서 보내고 있다고 안쓰럽게 볼 수도 있지만 여기는 그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당당한 사람들만 모여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과 이러한 경험 하와이에선 누구도 못 해보리라. 하하하. 하와이에서의 첫째 날 밤은 달빛 가득한 남국의 바다에 유유자적하게 홀로 떠다니는 돛단배처럼 그렇게 지나갔다.
※ 1년 8개월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의 여행이었기에 그동안 정리하지 못한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아직도 있어서 이제야 여행수필을 작성하네요. 뒤늦은 정리이지만 부디 좋게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참고로 친구의 아이디어로 쓰게 된 예전에 일일조회 15만을 기록했던 하와이 관련 두 개의 글을 링크합니다.
제목이 이렇지만 저는 아직 미혼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