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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기 May 07. 2017

나이들면 멈춰지지가 않아

지하철을 탈 때 내가 개인적으로 안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분홍색의자에 앉는 남자사람과 휴대폰을 보면서 문 가운데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사람들이다. 이와 함께 요즈음 좋게 생각해 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승차장 줄 뒤쪽에 서 계시다가 열차가 들어올 때 즈음 스크린도어 가운데에 서 계시다가 문이 열리면 순서없이 바로 빈자리로 달려가시는 분들이다. 마치, 표적을 본 치타처럼 달리신다. 그런 분들 보면 일부러라도 한번 부딪혀 드리고 싶다. 본인들의행동으로 본인 자신이 다칠 수도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요즈음 어머니가 집에서 나와 자주 부딪히신다. 테이블 옆 좁은 공간에서도 맞은편에 내가 있는 것을 아시면서도 계속 돌진하시다가 부딪히신다. 어머니는 일흔이 넘으셨다. 일흔 살 어머니가(할머니 아님) 길이 183cm, 무게 88kg 짜리 바퀴 달린 냉장고로 돌진하셔서 부딪힌다고 생각해 보자. (전 냉장고처럼 네모나지는 않습니다.^^)



두 사람이 부딪히면 과연 누가 아플까? 


몇 번 멍이 드셨을 것 같은데~ 그래도 여전히 부딪히신다. 


“몸이 그렇게 생각처럼 안되~”


‘아~ 그렇구나’ 그렇게 하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미 행동은 먼저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이후부터는 내가 최대한 부딪히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어머니 앞에서는 더 천천히 움직이거나 아예 피한다. 내 쪽에서 피하면 된다. 어머니는 지하철에선 뒤에서 천천히 경로 우대석으로 가셔서 앉으시니 다행이다. 


다시 지하철로 돌아가보자. 


순서를 지키지 않는 그분들, 양보가 없는 그분들, 나이 들어서 한가지 표적을 보시면 멈출 수 없는 그분들, 그분들도 어찌보면 노약자이다. 이미 나이가 들어서 생각과 마음, 행동을 절제할 수 없는 노약자~!!! 


만약, 지하철에서 내리기 위해 문 앞에 섰는데, 스크린 도어가 열리고 반대편 타는 쪽 문 앞 한가운데에 자신의 어머니가 길을 막고 서있으면 그 어머니를 안아줄까? 아님 부딪히면서 상처를 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어머니를 안아드릴 것이다. 



생각과 행동이 절제가 되지 않는 어른들을 보면 잠시 옳고 그름은 내려놨으면 좋겠다. 

젊은 사람들에게 넓은 아량이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의 여유~ 


‘지금 반드시 자리에 앉지 않아도 나보다 더 피곤한 사람이 있을 수도있어~’ 


오늘 지하철에서는 한번 봐주자. 

이렇게 말하면서도 사실 나도 잘 안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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