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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기 Apr 13. 2016

독일-루트비히 2세 이야기

유럽 여행시 가장 애달펐던 두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내 개인적으로는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의 빈센트 반고흐 뮤지엄과 독일 퓌센의 노이슈반스타인 성을 꼽을 수 있을 것같다. 이유는 네델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독일 노이슈반스타인 성을 지은 루트비히 2세, 두 사람 모두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냉대를 받았지만 그들이 죽고난 후가 되어서야 천재성을 인정받고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네델란드의 빈센트 반 고흐뮤지엄과 독일의 노이슈반스타인 성을 보러오는 관광객들이 많기 때문에, 각 나라 관광산업에서 큰 비중을차지하고 있어 경제적인 효과도 매우 크다. 그들이 인정받지 못했던 당시와 대조적으로 현재는 국민적 영웅이된 것을 생각하며, 지금은 하늘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이 땅을 바라보길 바랄 뿐이다.

반 고흐 뮤지엄(Van Gogh Museum, Amsterdam)




루트비히 2세(Ludwig Ⅱ)는 1845년 바이에른 왕국의 왕인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로 태어나, 1864년 19세의 나이로 국왕이 되었다. 바이에른 왕국은 당시 강대국인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강한 왕을 원했다. 하지만, 루트비히 2세는 전쟁보다는 바그너의 오페라와 호숫가에서 백조를 보며 사색하기를 즐겼다. 바그너와는 너무 돈독했던 지라 주위에서 이상한 오해를 살 정도였다. 


그는 생전에 3개의 성(린더호프/Linderhof, 헤렌킴제/Herrenchiemsee노이슈반스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을 건축하게 된다. 모두 독일 내에서 대표적인 아름다운 성으로 꼽을 수 있다. 그 당시 유럽에서의 성 건축은 전쟁을 위한 건축이라기 보다는 제왕들이 자신의 권력과 예술성을 자랑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국고 소비로 인한 국민들의 원성을 자아냈다.     


루트비히 2세는 잘생긴 외모에 190cm가 넘는 장신으로서 국민들의 기대를 받았으나, 지속적인 현실도피와 국고 낭비로 인하여 국민들의 실망을 자아냈고, 급기야는 정신질환으로 판명, 1886년 폐위되었다. 그리고, 폐위된 며칠 후 호숫가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그 당시 자살로 판명되었지만 그의 죽음에는 의문이 많다. 

그가 지은 노이슈반스타인 성, 일명 ‘백조의 성’은 향후 디즈니(Disney) 의 모티브가 되었고, 현재에도 노이슈반스타인 성이 있는 슈반가우(Schwangau)는 독일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다. 당시에는 국고 낭비의 원인이었던 곳이 현재는 독일 관광 경제창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어 더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노이슈반스타인 성의 내부 그림은 바그너의 오페라가 배경이 된 경우가 많은데, 세부사항과 구성에 대하여 루트비히 2세가 직접 지시하였다고 하여 그의 천재성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추가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루트비히 2세의 먼 친척 누이이면서, 당대 최고의 미녀이자 시씨(Sissi)라고도 불리우는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의 오스트리아 엘리자베스 황후(1837 ~ 1898)이다. 그녀는 15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로 시집갔으나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격식있는 합스부르크가에서 적응하지 못 하였다.  

   

실제로, 루트비히 2세가 국정운영으로 괴로워할 때, 동병상련을 느낀 것인지, 자유분방한 성격의 시씨와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전해진다.    

 

한편, 시씨의 시어머니 소피아는 그녀의 자유분방한 성격이 교육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시씨가 아기를 낳은 족족 자신이 데려가 키웠다. 궁정생활이 점점 따분하였고, 아이조차 시어머니에게 빼앗긴 그녀는 궁 밖을 나가 유럽 전역을 여행하기 시작했고, 그녀를 가장 환대했던 헝가리를 좋아했었다.     


그녀의 유일한 아들, 황태자 루돌프는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정략결혼을 하게 되었으나, 시씨가 오랜 기간 동안 집을 비운 사이 루돌프는 당시 30세의 나이에, 17세의 남작부인 마리 베트세라와 사랑에 빠졌고, 급기야 둘은 주위의 비난에 못 이겨 자살하게 되었다.

    

루돌프가 죽은 후 시씨는 더욱 외로워했고, 더욱더 궁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898년 9월 막내딸과 스위스 제네바 여행 중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칼에 찔려 사망한다.     

인기 뮤지컬 <엘리자벳>은 바로 시씨에 관한 이야기이고, <황태자 루돌프>는 그녀의 아들 루돌프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이에른 왕가의 ‘동화왕’ 루트비히 2세, 그녀의 친척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시씨, ‘황태자’ 루돌프 모두 왕가에서 태어났지만 왕가의 생활이 그리 행복하게 보이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시씨를 제외하면 모두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어 빛을 발하였다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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