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와 함께한 독일 중소도시 여행
유럽을 여행하면서 지난 53년간 독일 스투트가르트 근교에서 살아오신 큰 고모와 함께 독일의 작은 마을 마르바흐(Marbach)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마르바흐는 문학가 실러(Schiller)의 고장으로 유명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큰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한 작은 동화 속의 중세마을과 같은 분위기였다.
좁은 골목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동화와 같은 마을 분위기이니 실러와 같은 문학가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왕왕 떠올랐다.
나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작고 알록달록한 집들과 옛 향기를 그대로 간직한 성곽에 신기해 하며 연거푸 마을곳곳의 사진을 찍었고, 고모는 나를 기다려 주시면서 잠깐 벤치에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셨다. 고모가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길냥이가 의자를 점령해 버렸다. 좁은 골목 한쪽에 만들어진 우물가와 벤치, 화분들이 조화를 이루었고, 지금은 말라버렸지만 사랑하는 연인이 물을 기르는 형상의 우물 조각상도 인상 깊었다.
전형적인 독일 전통 가옥이지만 그 앞에 주차된 현대식 자동차와 집앞에 쌓인 잘 잘려진 땔감들이 대조를 이루었다. 도대체 현대식 차가 다니는 이 시대에 땔감은 왜 필요할까? 마을곳곳과 성곽에는 이 건물이 몇 년도부터 지어졌는지 설명과 함께 자세히 적혀있었다. 어떤 곳은 1600년대, 어떤 곳은 1700년대 등등 오래된 건물들이 지금도 옛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이렇게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한 성곽과 마을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로텐부르크 옵데 타우버(Rothenburg ob der Tauber, 이하 로텐부르크)이다. 성곽부터 마을 전체가 잘 보전된 이 마을은 독일 여행코스 중 하나인 로맨틱가도의 하이라이트이며, 연간 100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찾는다.
독일의 성곽으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들 중 아기자기한 중세의 모습이 가장 잘 보전된 곳이어서 그런지 일찍부터 일본인관광객들이 많이 오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한국인, 중국인관광객들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서 자연스레 곳곳은 선물가게와 기념품 가게, 맛집들 등등 상업화의 물결이 일게 되었으며, 호텔에는 당연히 트립어드바이저마크가 있기에 관광지 느낌이 나는 점은 조금 아쉽기도 하다.
또 다른 하루는 고모와 버스를 타고 하이거로흐(Haigerloch)를 찾았다. 버스가 하이거로흐에 도착할 무렵 차내에는 고모와 나 밖에 없었고 우리는 산속 외딴 마을에 도착했다. 하이거로흐는 2차세계대전 당시 핵개발 실험 동굴이 있었던 곳이다. 그런만큼 은밀하게 숨겨진 마을이 언덕 아래로 펼쳐졌다.
숲 속에 숨겨진 마을인 만큼이나 신비하기도 했고 차도, 사람도 없이 한적했다. 로텐부르크에서 느꼈던 관광지의 느낌은 전혀 없었다. 신기했던 것은 이렇게 작은 마을에 있는 성당들도 내부는 상당히 화려함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창 밖으로 보이는 마을은 중세와 같은 느낌의 신비감을 더해주었다.
이때쯤 드는 생각,
하이거로흐가 숲 속에 숨겨진 작은 마을이어서 그런지 그러한 생각들이 더욱 배가되었다.
다음은 검은 숲(Schwarzwald) 북쪽 편에 있는 수로가 있는 마을, 홀브(Horb)로 향했다.
홀브는 성곽보다는 수로와 검은 숲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곳이었고, 언덕을 오르며 있는 집들이 개성적이었다. 어떤 집은 언덕에 있지만 그 사이 공간을 활용하여 밭을 일구는 곳도 있었고, 어떤 집은 언덕 계단을 따라 겹겹이 두 집이 붙어서 각 층의 문마다 우편함이 두 개였던 것도 신기했다.
마을 언덕 꼭대기에서 저 멀리 보이는 검은 숲, 그리고 그 아래 펼쳐진 마을들~
이 즈음에서 또다시 떠오른 생각,
이렇게 독일내의 작은 중세 마을들을 돌아보면 으레 그러한 생각이 든다. (물론, 스위스 산골짜기나 노르웨이 산 속 집들을 봐도 똑같은 질문을 하겠지만 그 물음의 의미는 다를 것이다.)
고모가 53년간 살아오신 마을이자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Kepler)의 고향으로 유명한 바일 데어 슈타트(Weil Der Stadt)로 돌아왔다. 고모부는 스투트가르트 대학의 공학교수로서 40년 이상을 근무하셨고, 그와 더불어 고모는 대부분의 인생을 이곳에서 지내오셨다. 고모에게 이 곳은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성곽을 따라 있는 해자, 1300년대와 1400년대에 지어진 성당들, 성벽에서 나오는 사람얼굴 형상의 분수, 옛모습을 간직한 집들과 시청사는 중세의 느낌을 자아냈지만 성내에서는 무료 와이파이가 가능했다.
고모와 함께 짐을 붙이기 위해 들어간 우체국은 겉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지만 내부는 현대식 컴퓨터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깔끔함과 모던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성벽 바로 옆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해맑게 뛰어놀고 있었다. 이렇게 독일 중세 마을에는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이 공존하고 있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기분이 묘했다.
훗날 체험한 라인강 유람선 투어중 마주친 ‘호텔로 변한 고성들’과 골목골목에서도 중세의 느낌은 느껴졌지만 이제는 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을~~
지금 그 곳은 호텔과 레스토랑, 관광객들을 접대하기 위한 기념품 가게들로 바뀌어 있다.
나는 지금 모든 여행을 마치고 한국 나의 집, 아파트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창 밖으로 모든 것이 획일적이고 콘크리트로 지어진 현대식 건물, 효율성을 극대화한 대도시의 아파트를 바라보며 그 때의 그 기억에 대해 대조적인 생각을 느끼고 있지만 한가지는 알고 있다. 나나 독일 중세마을의 그들이나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어떠한 기분으로 살아가는지 왠지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지, 그들에게는 아날로그 감성이 있겠지만 그들도 디지털시대를 살아간다. 오늘도 독일에 사는 친구 동생에게서 SNS 메시지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