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철도 유산 답사기(전북 남원시 옛 서도역)

by 레이노

폐역을 찾아 떠도는 형이 있다. 형은 노량진역에서 역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일하다 쉬는 날이면 으레 떠난다. 사용하지 않는 간이역을 살려보겠다고 그런다. 숨은 보물을 찾듯 폐역을 찾는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이다. 이런 느지막한 자유에는 고독이 따른다. 형은 아직 결혼을 안 했다. 아이들 방학이 시작되면 부모는 두려움이 시작된다는 걸 형은 언제 느낄까. “시간 되면 같이 가자”는 형의 권유에 나는 이렇게 뿌리쳤다.

“형, 나는 하루하루가 폐역이다.”


형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600여 곳의 폐역들을 돌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형이 제정신일까’ 생각했다. 그러다 어쩌다 보내오는 사진들에 마음이 홀렸다. 형이 반쯤 돌기 시작할 무렵 나도 돌았다. 몇몇 폐역들을 눈여겨보다가 서도역으로 향하는 형을 꼬드겨 아내를 구워삶았다.

“나는 진작부터 안 간다고 했지, 형 알지? 어찌나 졸라대는지 나도 어쩔 수 없네.”

형은 우리 가족들과 잠깐 마주했었다. 만남은 늘 소중하다. 그 한 번의 만남으로 가족들에게 형은 ‘모르는 형’에서 ‘아는 형’이 되었다. 아내는 두 손을 들었고 나는 만세를 불렀다. 어디가 좋을까. 나는 서도역을 골랐다. 서도역은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손꼽히니까.


전라선 철길은 전북 익산에서 전남 여수까지다. 서도역은 전라선에 있다. 기차를 타고 익산을 지나 전주에서 남원으로 내려가다 보면 서도역이 보인다. 1932년 지어진 서도역은 2002년 전라선 개량공사를 하면서 새로 지어졌고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서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한때는 사람 넘치던 역이 지금은 폐역이 되었다. 사용하지 않는다고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쓸모 있다고 해서 마구 대해서도 안 된다. 서도역은 세월을 버티고 흔적을 간직했다. 철길 옆으로 뻗은 꽃길과 메타세쿼이아 나무 길이 오래된 일본식 목조건물과 잘 어우러진다.


아름답지만 사연을 품은 서도역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다. 1900년대 초, 일본이 조선에 침략 수위를 높여가던 시기에 조국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구동매(유연석)가 애기씨(김태리)에게 짝사랑을 들킨 곳이다. 조선을 떠난 일본 낭인 구동매가 선로 침목에 앉아 묵묵히 애기씨를 기다렸다. “오지 마라, 오지 마라”고 빈말을 중얼거리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애기씨는 조선의 의병이다. 일본 낭인과 의병의 만남. 서로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면 사람이 소중해지고 마음은 무너진다.

“난 해도, 자넨 못 할듯싶은데.”


‘미스터 션샤인’ 마지막 장면도 기차와 사랑이 있다. 유진 초이(이병헌)는 사랑하는 애기씨(김태리)를 객차에 두고 일본군들과 함께 객차 앞 칸으로 향한다. 객차 연결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대는 나아가시오. 나는 한 걸음 물러나니.”


하루가 짧다. 하고 싶은데 못 하는 일들이 쌓여간다. 선배들은 “정신없는 때가 좋은 거다. 애들 크면 아빠는 없어져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그때가 오긴 오는 건지, 언제 오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빠져나왔고 친한 형과 좋아하는 여행까지 했다. 나는 했고, 아내는 못 했다. 나는 나아갔고, 아내는 물러섰다. 이쯤 놀고 나니 미안해진다. 서도역에서 평소 느끼지 못한 감정을 느낀다. 어쩌면 아내는 나를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https://youtu.be/ZqlUZhzDnIw?si=kIiNpxR65vRr7ghM



https://youtu.be/thTX8k0echw?si=AOpIWuBIsWMUZSi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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