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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노 Feb 11. 2020

게임 좋아하는 아빠와 아들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어릴 때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단짝 친구와 오락실에 가서 게임을 했다. 
용돈이 많아서 오락실에 간 것은 아니다. 
돈이 없어하지는 못해도 동네 형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뒤에서 보기만 해도 재미있었다. 
동전을 넣지도 않은 게임기를 만지작 거리고 
가끔 오락실 주인이나 동네 형들이 선심 쓰듯 한판을 던져주면 
실실거리며 좋아했다. 


'어떻게 아셨을까?'  

어머니는 귀신 같이 나를 찾아 오락실로 오셨다.  
개처럼 끌려간 나는 집에 돌아와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성당에 가서 헌금을 해야 할 돈으로 오락실에 갔던 기억도 있다. 
어머니의 연락을 받은 수녀님 손에 끌려 나갔던 걸로 기억한다.  


하루는 아버지와 동생이 오락실에 찾아왔다. 
어머니에게 인계(?)되기 전 아버지에게 들은 
말 목 자른 '김유신 장군' 이야기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아버지 옆에서 안쓰럽게 쳐다보는 동생의 눈빛도 생생하다.  
'이제 오빠의 목이 잘려 나가겠지...' 하는 눈빛 말이다. 

나와 오락실에 같이 갔던 단짝 친구는 천주교 신부님이 되었다. 
지금은 오락실 하나 없는 쿠바에 가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가끔 게임을 하고 철도 기관사로 살고 있다. 
친구와 나는 게임을 했지만 
어머니와 수녀님께서 걱정하는 심각한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가끔 어머니와 동생과 그때 얘기를 하면 나는 이렇게 말을 한다. 


"왜 그렇게 걱정을 했어." 
"알아서 잘하잖아." 



이제는 나를 닮은 첫째 아들이 게임을 좋아한다. 
일말의 양심은 나에게 있으니 당연히 게임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밝게 웃고 장난치며 건강하게 크는 모습에 하루하루 감사할 뿐이다.    

신혼 생활을 하고 있는 이모는 '추억의 오락실 게임기'를 샀다.   
아이는 이모 집에 있는 '오락실 게임기'를 하고 싶다며 졸랐다. 
집들이를 핑계로 우리 가족은 이모 집에 놀러 갔다.  
정말 어릴 때 내가 하던 그 '오락실 게임기'가 집에 있었다. 
동전을 넣고 해야 하는 방식 그대로였다. 

아이는 엄마와 이모 주변을 맴돌았다. 
게임기를 켜려면 허락을 맡아야 하는데 그들은 쉽사리 게임을 시켜 주지 않았다.  
'어릴 때 내 모습도 이랬을까?' 
나는 게임기를 몰래 켜주었다. 

아이는 이모에게 동전 5개를 받았고 
정말 신중하게 게임을 했다.  
그때 알았다. 
왜 아이가 집에서 이모 줘야 한다며 
학교에서 만든 팽이를 가져왔는지. 
출발하면서 기껏 모아놓은 저금통을 만지작 거렸는지 말이다. 
돈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나는 가지고 있는 동전 전부를 꺼내 게임기 위에 놓아주었다. 


'그때 나를 찾아서 학교 앞 오락실에 왔던 어머니 마음도 그랬을까?'  
'돈도 없이 게임하는 형들 뒤에서 쳐다보고, 
빈자리에 가서 게임기 만지작 거리던 모습을 어머니도 봤겠지?'
'나처럼 마음이 아프고 속상했을까?'

게임을 했다며 좋아하는 아이.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거 같다. 
그런데... 속상하다. 
나를 오락실에서 끌고 가던 어머니 마음도 알았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고 
이 글을 보면서 이런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 

"왜 그렇게 걱정을 했어." 
"알아서 잘하잖아. 걱정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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