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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XIOS, 광파리, 리멤버 나우

판단하지 않는 자들의 무거움

by HEROINES

최근 버즈피드와 바이스 미디어가 구조조정을 하는 와중에 AXIOS가 창업 2년만에 매출 2500만달러를 올리고 break even을 맞췄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물론 업력 10년이 넘는 버즈피드와 바이스가 일부 구조조정을 하는 것과 이제 2년된 신생 매체인 AXIOS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AXIOS가 (미국에서나마) 의미있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과거 제가 번역해 놓은 AXIOS의 manifesto를 읽어봤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편견없고 헛소리 없는 콘텐츠. 사람들은 더 스마트하고 빠르게 정보를 보고 싶어 한다


이번에 2500만달러 매출을 올린 뒤 창업자인 Jim Vendehei가 한 말 중 저는 이 한마디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Axios, I’d argue, is the best company to reach those audiences because we made a big investment in subject-matter experts"


동영상의 시대. 플랫폼의 시대. 펜기자들이 창업해서 글로 만드는 미디어가 거둔 성공. 이들이 내놓는 것은 쉽게 말하면 '좋은 정보'. 헛소리 안하고, 편견 없는, 좋은 정보가 있는 콘텐츠. 생각해 보면 분명합니다. 영상에 익숙해 진다고 해서 영상이면 전부가 될 수가 없잖아요. 옷을 아무리 예쁘게 입어도 그 안에 사람이 별로면 그게 멋있을 리가 없잖아요. 제대로 된 사람이 만드는 많은 정보가 담긴 콘텐츠를 효율적으로 전달. 그게 본질인 것이죠.




최근 광파리 선배(aka 김광현 창업진흥원장)를 만났습니다. 리멤버 블로그 인터뷰를 위해서였습니다. (인터뷰는 추후 공개될 예정입니다.) 김 선배를 알고 지낸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그'의 스토리만을 들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광파리 선배는 계속 하나를 강조했습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 큐레이터고 커뮤니케이터일 뿐" 그래서 속칭 '전문가 인터뷰' 섭외가 올 때 한번도 응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큐레이터나 커뮤니케이터가 '전문가' 보다 열등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큐레이터가 할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덧붙이시기도 했습니다.


기자생활만 26년. 1세대 대표 IT 블로거. 디캠프 센터장. 그리고 지금은 대한민국 창업진흥을 이끄는 사람.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에게 '전문가' 타이틀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수 많은 사람이 여전히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당신이 뭔데 창업진흥원장을 하냐고" 그런 유치하고 질투어린 공격에도 광파리 선배는 다 답을 해 줍니다. 그것조차 자신의 역할이라고. '커뮤니케이터' 니까.


30년 경력 큐레이터는 겸손했지만,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기반해서 자신의 미션을 분명히 설정했고, 이를 하나씩 이루고 있었습니다.




저는 기자들이 망가지는 순간을 "준엄하게 꾸짖기 시작할 때" 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아 이제 기자가 뭔지 알겠다" 싶은 정도의 짬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출입처에 대해 뭔가 다 알것 같고. 출입기자들끼리 모여서 얘기하면 스토리가 딱딱 맞아떨어지고. 그러다가 친구 쯤 되는 취재원을 통해서 출입처에 대해 뭔가 사소한 new fact를 하나 알게 되고. 그 new fact와 자신이 알던 스토리가 딱딱 맞아떨어지고. 그렇게 그 기사 안에서만 완벽한 논리정합성을 가진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해 냅니다. 그 스토리에 "이래서는 안된다"는 준엄한 꾸짖음을 한마디 섞기 시작하죠. 혹은 "정부의 시급한 대처가 필요하다"든지...


그러면 페이스북 등에서 그 작은 글 안에서의 완벽한 논리정합성에 반한 몇몇 팬들이 반응을 하고, 또 홍보팀이 뭔가 죄라도 지은 것 처럼 전화를 하고. 그러면 그 맛이 너무도 황홀해서 계속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너무도 당연하게도 그들의 준엄함이 진짜 현업에 있는 분들의 고민의 깊이를 이기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조지면 안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기자가 꾸짖을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준엄한 꾸짖음은 그저 '사실과 정보의 전달'이라는 것 뿐입니다. 제대로 된 사실과 정보를 모으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 '사실과 정보'가 출입처의 잘못이나 판단미스를 담고 있다면, 그게 다일 뿐입니다. 다시 한번 AXIOS의 menifesto가 떠오릅니다.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편견없고 헛소리 없는 콘텐츠. 사람들은 더 스마트하고 빠르게 정보를 보고 싶어 한다"




'리멤버 나우'를 작업하면서 이진우 기자랑 작업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도 이 지점입니다. 아무래도 플랫폼 입장에서 daily traffic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진우 쯤 되는 사람이 한마디만 해 준다면" 이런 유혹이 매일 매일 듭니다. 그러나 이 선배는 철저합니다. 좀처럼 판단하려 하지 않습니다. 매우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때는 확실히 대안을 제시하며 팩트 위주로 판단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한 쪽으로 힘을 확 줄 수 있는 사안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부분 "너도 옳고 너도 옳은" 황희 정승 스토리지요. 그래서 종종 콘텐츠에 야마가 안 잡힙니다.


그러다 최근 '리멤버 나우 필자들과 저녁식사 이벤트'를 진행 했습니다. 2000명 좀 안되는 분들이 응모해 주셨습니다. 그것만 해도 엄청난 숫자지만,"1만명 모아오겠다"고 CEO에게 호언장담을 했던 저는 상당히 쪽을 팔았습니다.


이벤트에 참여한 분들의 사연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당첨자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당첨자 분들께 리멤버의 '모임주소록' 에 명함을 올려달라고 했습니다. "어, 뭐지?" 당첨자의 면면이...뭐랄까...그냥 '셀럽' 이었습니다. 언론에 소개된 분들도 적지 않았고. 그러지 않더라도 그냥 이 사회 리더급 인사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분들이 왜 이런 이벤트에 신청하셨지? 밥 한끼 얻어먹는 게 급한 분들이 아닌데. 다시 한번 사연을 읽었습니다. "주의주장 없는, 편견없는 알찬 정보가 좋았습니다"




당첨자 분들이 본인 신분을 공개해 주신 다음에 안 일이지만, 이 분들은 대부분 리멤버의 헤비 유저시기도 했습니다. 리멤버의 헤비 유저라는 건, 그 만큼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 비즈니스 인맥을 소중히 관리하는 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수 많은 판단의 과정을 겪었으니 어떤 것을 '준엄하게 판단'하는 것의 가벼움을 아시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준엄한 판단'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편견없는 주의주장 없는 정보에 목마르셨겠죠. "벼는 익을 수록 머리를 숙인다"고 하면 너무 고루하고 꼰대같을까요? 그런데 연휴 내내 그 특유의 순수한 표정으로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라고 했던 광파리 선배의 얼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매일 "제목 꺼리좀 주세요"라고 졸라도 매몰차게 "그런 의도는 아닌데"라고 말하는 이진우 선배도. 그리고 AXIOS가 만들어 낸 의미있는 성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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