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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Oct 28. 2022

나도 엄마를 닮아가나 보다

수액을 맞으며

근 10년 만에 위 대장 내시경 검사 예약을 했다.  예전에 비해 검사 전에 할 일들이 꽤 있었다.

안내 사항들을 보니 3일 전부터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고, 당일 날에는 흰쌀 죽을 먹으라고 한다.


 이제 나이가 있어서인지 3일 전부터 고기, 나물, 김치, 김 등을 먹지 않는 게 만만치 않았다.

우리 집은 거의 매일 고기를 먹는 집인데 먹던 고기를 수 일간 끊으려니 갑자기 체력이 달리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검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나는 금요일 오전이 검사인데,  매일 일정을 꾸역꾸역 소화해냈고, 검사 전날도 분주한 하루를 보내 체력이 방전되었다.


그런 상태로 저녁부터 금식 들어가고 약을 먹는데 하룻밤 내내 잠 한 숨 못 자고 장을 비우느라 거의 탈진 상태가 되었다.  오전에 위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은 뒤 집에 돌아와서 간신히 간단한 정리를 마친 뒤 그대로 쓰러졌다.  주말에도 하루 종일 자리보전을 하고 누웠는데 친정엄마가 전화 와서 빨리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으라 하신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쉬면 낫겠거니 했지만 급기야 월요일 기다시피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았다. 상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의사 선생님은 평상시 약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용량을 처방해 주셨다. 몸이 많이 허약하고 탈진해서 그 정도는 맞아줘야 한다고 한다.


2시간 30분 동안 수액을 맞고 집에 돌아와서 오후 수업을 다음으로 미룬다고 양해를 구한 뒤 그대로 죽음과 같은 깊은 잠에 빠졌다.

주사약의 효과 때문일까?


다음날 화요일부터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확실히 기분이 달랐다.  옅게나마  활기가 돌고, 일상이 덜 버겁게 여겨졌다.


수액 덕분인가? 신기해하면서 엄마께 전화드렸다.

" 엄마, 어제 주사를 맞고 몸이 한결 나아졌어요. 거의 죽다시피 했는데 오늘은 숨을 쉴 것 같아요. 효과가 참 빠르네요."

엄마는 "나도 너희 키우느라 힘들 때 그렇게 주사 맞아 가면서 버텨왔어. 이제 너도 틈틈이 맞으면서 힘들 때는 좀 쉬면서 해라."

딸이 아프다는 소식에 계속 마음 졸이셨다는 엄마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비로소 우리 엄마는 왜 주사를 저리 자주 맞으실까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궁금증이 비로소 해소되었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전선에서

세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일하셨던 엄마. 가녀린 체구로 힘에 부칠 때마다 엄마는 어디에도 하소연하지 못하시고 주사 아줌마를 불러 주사를 맞으셨던 것이다. 그렇게라도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야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었으니까...


어린 시절 방 한편에서 주사 아줌마가 놓아주는 주사를 맞으셨던 엄마의 모습이 이제 내 모습 위에 오버랩되었다. 그때의 엄마처럼 나도 병원 한편 침대 위에서 한 병의 수액을 맞으며 몸을 추스른다.  


나는 언제까지나 엄마보다 젊고 생생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나도 여지없이 예전 엄마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축 늘어진 야윈 팔에 주사 바늘을 꽂은 채 깊은 잠을 청했던 엄마처럼 , 나도 주사 바늘에 의지해 낙엽처럼 버스럭거리는 한 줌  몸을 추스른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엄마를 닮아가나 보다.

엄마처럼 고단하게 살기 싫다고 했건만, 나도 세 아들 뒤치다꺼리로  허덕이고, 날로 쇠잔해지는 체력의 한계로 매일 영양제를 한 줌씩 챙겨 먹는다.  


내가 과연 엄마만큼 아이들을 끝까지 제대로 키워낼 수 있을까?  그렇게 억척스럽고 강인하게 아이들의 곁을 지켜주며 엄마의 역할을 다해줄 수 있을까?

우리 가정을 든든히 받쳐주는  자상한 버팀목으로 언제까지나 함께 하고 참아줄 수  있을까?


자식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순화시켜 주며, 인생의 의미와 깊이를, 그리고 참사랑을 일깨워 주는 눈물을 흘려줄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이재철 '아이에게 배우는 아빠'중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처럼 그런 큰 은총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은총인 엄마와 오랫동안 함께 하길 소망한다.


쩍 생각이 많아진 가을 어느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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