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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Feb 14. 2023

내가 좋아하는 라떼

아빠의 라떼는 말이야

아빠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날, 주말에 모처럼 남편이 동행을 해줬다.   내가 혼자서 휠체어를 끌 때보다 남편이 끌어주니 아빠는 한결 듬직하신가 보다. 전보다 표정이 훨씬 편안해 보인다.


병원을 다녀온 뒤, 평상시에는 힘들어서 바로 쓰러져 누우시는 아빠가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계신다.   그런 아빠가 적적하실까 봐 남편과 아빠 앞으로 간다.  

오는 길에 사 온  만두를 내미니 속이 영 안 좋아 못 드시겠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만두를 좋아하시는 아빠는 앉은자리에서 접시를 다 드시곤 했다. 그러나 이제 소화기능이 떨어져서 만두 한 개도 조심스러워하신다. 반팔 내의를 걸친 아빠의 팔이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앙상해졌다. 예전에는 힘줄이 드러날 정도로 단단하고 굵은 팔이었는데... 지금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앙상하게 피부가 늘어졌다.


통 움직이지 않으시니 근육이 다 소실되나 보다. 만두 한 개도 못 드실 정도로 근육이 소실되어 앙상한 아빠의 팔을 보며 자꾸 눈가가 촉촉해진다.


딸과 사위와 마주 앉자 아빠는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옛날 얘기를 풀어놓으신다.


 바닷가에 혼자 가셨다가 바다를 보고 너무 좋아 목발을 짚고 물가로 다가가다 모래사장에 빠져서 고생한 얘기를 하시길래

" 아빠, 언제 그런 적 있었어요?" 하고 놀란 눈으로 물으니

"응, 1970년대에 그런 적이 있었어."라고 하셔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친구들과 수업을 빼먹고 산 정상에 오른 얘기를 신나게 하시길래

"아빠, 그 목발 짚고 괜찮으셨어요?"라고 물으니

"그럼, 그때는 누구보다 생생했는걸..."라고 하신다.


아빠의 옛날이야기는 끝날 줄을 모른다.

 추억을 더듬으면서 이야기를 풀어내시는 아빠의 얼굴은 갑자기 이전에 볼 수 없던 생기로 빛난다.


아빠의 '라떼는 말이야'는 결국 우리 모두 피곤에 지쳐 낮잠을 자느라 끝났다. 구세대의 입에 밴 말, '라떼는 말이야'를 극도로 싫어하고, 나도 안하려고 애썼는데 아빠의 '라떼는' 예외가 되었다.


아빠의 '라떼는 말이야'는 아직도 아빠가 우리 곁에 살아계심, 여전히 정신이 온전하심, 그리고 아직도 삶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뜻하니까....


지난 11월 아빠와 병원에 다녀온 뒤 쓴 글입니다. 지금은 몸이 안 좋아지셔서 휠체어를 타고 병원 가시는 게 불가능해졌어요.   그래도 아빠는 여전히 제 눈에는 세상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큰산이고, 의연한 거인이십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거인과의 추억이 소멸될까봐 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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