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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Jul 23. 2022

아빠의 그 한마디 '나는 괜찮다'

친정 엄마에게는 주 1-2회 안부 전화를 드리나 아빠에게는 자주 전화를 하지 않는다.

전화드릴 때마다 이것저것 얘기를 꺼내며 긴 통화로 이어지는 엄마와 달리 아빠는 전화 걸면

 늘 단답형으로 대답하시기 때문이다.


"아빠, 요새 건강은 어떻세요?"

" 응. 나는 괜찮다. 늘 그렇지 뭐."

" 뭐, 필요한 건 없으세요?"

"필요한 게 뭐 있겠냐? 엄마가 다 해주니 걱정 말아라. 괜찮다."

"......"

한동안 무거운 정적이 흐른다.



아빠와의 대화는 늘 패턴이 정해져 있다.

아빠가 가장 많이 하시는 대답은

  ''괜찮다... 괜찮다...."


몸이 불편하긴 하셨지만,  3년 전 골반의 골절을 당하신 이후 아빠는 아예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그 이후 주변의 도움 없이는 전혀 외출을 할 수 없으셔, 집안에 갇혀 사신다.


이전에는 가끔  혼자 휠체어를 타고 주차장까지 내려가셔서 장애인용 자가용을 몰고 드라이브를 다녀오곤 하셨다.

혼자 동해바다 등을 다녀오신 뒤 , 무용담처럼 아빠가 본 바다 얘기를 신나게 해 주셨다.


그러나 날로 몸이 쇠잔해져 이젠 그마저 힘들어지셨다.  휠체어를 혼자 타는 것, 운전 등의 일상이 모두 불가능해졌다.


그 이후부터 아빠는 부쩍 표정이 어두워지셨다.

골반을 처음 다치셨을 때 온 가족이 아빠가 이대로 영영 일어나시지 못하면 어쩌나 발을 구르며 염려했다.

아빠는 결국 힘든 투병생활을 이기고 일어나셨지만 대신 하반신을 영영 잃어버리셨다.


낮동안 엄마는 사무실에 나가고, 아빠는 홀로 정적뿐인 집을 지키신다.

오전에 요양사 아줌마가 다녀가시지만 , 일하기 바쁘셔서 아빠와는 거의 대화가 없다.


아빠는 혼자 하루 종일 무얼 하실까?

연세 드시면서 섬유 근육통이 부쩍 심해진 아빠는 이제 속절없이 방안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지내신다. 예전에 손주들과 찾아갈 때면 반가운 표정으로 마루로 몸을 끌어서라도 나오셨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부쩍 버거워하신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는데, 그런 때마다 아빠는 모처럼 찾아온 딸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시며 나의 사는 모습을 궁금해하곤 하셨다. 나는 항상 "아빠, 지낼만해요. 애들이 좀 커서 괜찮아요." 하고 미소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 아빠의 안부를 물으면 항상 하시는 말씀.

나는 괜찮다



세월이 흘러 아빠는 80대, 나도 50대에 접어드니 이제 그 괜찮다는 말의 의미가 이전과는 다르게 들린다.


" 섬유근육통이 심해 밤새 잠을 설치고, 낮동안은 외로워서 이렇게 살아 뭐하나 하는 회의도 든다. 너희들 얼굴 보는 게 낙인데 그나마 하나같이 딸들이 바쁘니 좀 아쉽구나. 그래도 괜찮다.

네가 고생하는 거 다 안다. 사는 게 만만치 않지?  아빠는 더한 세월도 견뎌 왔다. 괜찮다. 애야, 사랑하는 내 딸. 잘 살아낼 거다."


딸이 걱정할까 차마 다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아빠의 가슴속에 가득 고인 말이 내 심장으로 스며들어 온다.

못난 딸은 아빠의 차마 하지 못하신 말을 빤히 알면서도 태연히 고개 돌려 외면한다.  

그러신 거 다 알지만 내가 마땅히 해드릴 게 없다는 걸 알기에.....


아빠가 자리에 홀로  누워 계셔도 이대로 오래 우리 곁에 계시면 좋겠다.

아빠의 "나는 괜찮다."라는 말을 오래도록 듣고 싶다. 그러면 삶의 험난한 파고도 아빠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이겨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주에는 친정을 찾아뵐 것이다.

그리고 아빠의 그 말을 들으며 삐쩍 마른 투박한 당신의  두 손을  꼭 잡아드리고 싶다.


아빠와 모처럼 사는 얘기들을 진솔하게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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