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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Sep 13. 2022

아빠, 맏딸이에요

아빠께 드리는 편지

아빠,

맏딸 인경이에요.

올 추석은 아빠가 내내 아프셔서 마음이 계속 아렸어요. 견디다 못한 아빠가 병원을 가자고 하셔서 연휴 마지막 날 앰뷸런스에 아빠를 싣고 병원을 갈 때 겉으로는 희미하게 웃으며 농담을 했지만 , 아파서 땀이 송골송골 밴 아빠의 모습을 보며 마음은 무너져 내렸어요.


의사 선생님이 아빠의 어깨 관절이 다 상해서 뼈끼리 부딪히니 당연히 잠도 못 주무실 정도로 아팠을 거라고 당장 수술해야 된다고 하셨는데... 묵묵히 듣고 난 뒤 아빠의 대답

" 아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 내 나이에 그거 수술한다고 되겠니? 어차피 갈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주사나 맞으며 버틸까 한다."


아빠, 많이 아프셨군요. 허리 , 골반, 숨 쉬는 것까지 아프고 부대낀다고 고통스러워하셨는데 얼마나 힘드셨을까?  오늘 아침 무심히 청소를 하는데 욱신거리는 어깨를 부여잡고 나는 이 정도에도 아파서 힘들어하는데 아빠는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생각하며  오열이 터졌어요.


 아빠의 고통과 아픔에 무심한 채로 이나마  살아 계시니 다행이라고 했던 말, 죄송해요.

아빠는 죽을 만큼 아프고 힘드셨는데 제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어요.


엄마가 아빠와 마지막 명절이 될지 모르니 다 같이 가족사진 한 번 찍자고 하셨는데 아빠는 그 잠시도 못 일어나셔 결국 사진을 못 찍었지요.  

그러고 보니, 나는 아빠와 찍은 사진이 별로 없네요.   아빠의 모습이 더 사그라지기 전에

단 둘이라도 사진을 찍어서 남기고 싶어요.


오늘 아침은 아빠를 위해 오래 기도했어요.

2년 전 아버님의 죽음을 목도했잖아요.

그때 나무 조각처럼 단단해진 아버님을 부여잡고 119에서 시키는 대로 심장을 마사지하며 살아나시길 기원했지요. 결국 차가운 안치실에서 다시 아버님을 뵈었을 때 양말이 벗겨진 채로 평온히 주무시던 모습에  권서방이 신겨드리며 주저앉아 울었어요. 그때 알았어요.  

평생에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돌아가시면 후회만 밀려온다는 것을.

아빠. 나는 그런 죽음을 다시 볼 용기가 안 나요. 나는 아직 아빠가 많이 필요해요.


이대로 아프시더라도 우리 곁에 오래 남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아빠의 아픔을 덜어달라고, 남은 여생을 덜 아프게 해달라고 간구해요.


돌이켜 보니 나는 아빠의 손을 잡고 걸어본 적이 없네요.    아빠는 목발을 짚으시느라 내게 건네줄 손이 없으셨지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아빠의 손을 틈나는 대로 잡아 드리리라 다짐했어요. 삐쩍 마르고 힘없는 손이지만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그 손을 잡고 함께 나란히 걷는 꿈을 꿔요.


너무 아프시니 우리 집 옆 요양병원으로 모시자고 하니 딸에게 부담될까 봐 한사코 거절하셨지요.

아빠, 나는 괜찮아요.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나는 아빠의 병석 옆을 매일 지키고 싶어요.


우리에게 얼마나 시간이 남았을까요?

남은 시간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섬기길 기도해요.


아빠가 내 옆에 계신 한, 나는 아빠를 닮은 영원한 맏딸이니까요.


아빠가 나의 아빠여서 많이 감사해요.

그리고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제대로 못 드려서 죄송해요.

정말 많이 사랑해요.


아빠는 내 생애 만난 사람 중  가장 아름답고 용기 있는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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