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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Jan 27. 2023

아빠와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다

사랑할 시간이 남아 있어 감사하다

설 명절 전날 시댁에서 막 돌아와 피곤한 몸을 잠깐 누이는데 급작스레 걸려온 엄마의 전화.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명절날 가족이 다 모인 김에 가족사진을 찍으러 사람 불렀다. 준비하고 와라."라고 하신다.


아빠의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지셨던 작년 추석 즈음, 엄마는 가족이 다 모인 김에 함께 가족사진을 찍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아빠는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셨고, 가족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통해서일까?

설을 같이 보낼 수 있을까 조마하던 차에 아빠와

설 명절을 보내고 가족사진도 마침내 찍게 되었다.

아빠는 명절 전에 나에게 전화해서 "할아버지 추모 예배를 명절 때 한 번도 같이 드린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함께 드리고 싶으니 일찍 와라."라고 당부하셨다. 딸만 셋인 집이라 정작 명절 당일 아침이면 자녀들이 안 와서 매년 부모님 두 분만 예배를 드리셨다. 나는 흔쾌히 수락하고 명절날  1부 예배를 본 뒤 바로 서울로 향했다.


그러나 아빠는 자리에서 통 일어나지 못하셨고, 우리는 결국 추모예배를 함께 드리지 못했다. 그래도 아빠가 환하게 "우리 딸 왔구나." 하고 웃어주셔, 내가 아빠와의 약속을 지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동생네 가족까지 모이니 세 자매 부부 6명, 손주 8명으로 집안이 꽉 찬다. 상기된 표정으로 모처럼 모인 감회를 나누고, 그간의 안부를 묻느라 분주하다. 고만고만한 10대 남자애들 7명, 대학생이 된 여자애 한 명인 손주들은 벌써 끼리끼리 모여 윷놀이를 하며 웃음꽃이  만발한다.


저녁 6시가 되자 사진사가 오고, 집안은 이제 무거운 정적에 싸인다.  우리는 조용히 옷을 갈아입고 카메라 앞에 선다. 아빠가 이 날을 위해 고이 모셔 두었던 아끼던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으시고, 구석에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던 가발을 정성껏 손질해 머리에 얹는다. 핼쑥한 안색에 영 기운이 없어 보이는 아빠는 애써 통증을 참으시며 거실 한가운데 의자에 자리를 잡으신다. 촬영은 아빠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최대한 빨리 진행해야 한다.


가족들은 모두 침묵 속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수십 번의 셔터가 눌러지는 동안 말없이 미소를 띤다. 아빠와 함께 찍는 마지막 가족사진.


초등학교 시절, 엄마 손에 이끌려 사진관으로 끌려간 나는 난생처음 가족사진을 찍었다. 사진 중앙에서 10대의 반항을 상징하듯 맘에 안 든다고 직접 깡뚱맞게 자른 앞머리에 잔뜩 골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 속 엄마, 아빠는 눈부시게 젊고 아름다웠다.


한동안 집안의 사업이 기울면서 수 차례의 이사와 경제적 부침을 겪느라 가족사진을 찍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30세가 다되어 결혼식을 올리는 날 초등학교 시절 이후 처음으로 우리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었다. 그 이후에는 동생들 결혼식, 아이들 돌잔치 날, 부모님 환갑잔치, 칠순 날 차례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출산과 육아 등으로 동생이 빠져 있거나,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손주들이 빠진 사진이었다. 아빠가  팔순을 지나시고, 아빠의  딸들이 50을 목전에 두고서야 우리는 마침내 완전체로 모여서 아빠가 그토록 사랑하시던 손주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더 이상 부모님은 젊고 아름답지 않지만 대신 우리의 아이들이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 있다.


셔터가 한창 눌러질 때, 아빠가 가느다란 음성으로 호소하신다. "너무 힘들어. 그만하자."

가슴속에서 펌프질을 하듯이 참았던 눈물이 울컥 치밀었다. 힘겨워하는 아빠를 가족들이 뒤에서 부축하며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사진 찍기를 마무리한다. 채 몸을 추스를 경황도 없이 땀에 흥건히 젖은 셔츠를 갈아입고  아빠는 깊은 잠에 빠지셨다.


 뒷정리를 한 뒤 엄마가 영정사진을 못 찍었다고 아쉬워하신다.  "영정사진은 더 멋진 사진으로 골라요. 오늘은 아빠가 많이 아파 보이시니까..."라고  말했다.  아빠의 영정사진은 예전의 더 젊고 멋진 사진이면 좋겠다. 조문 온 분들이 아빠의 사진을 볼 테니, 우리 아빠의 가장 멋지고 온화한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다.


아빠는 명절날 마주 앉아서    "나는 전쟁통에 월남해서 고향이 이북이잖니. 명절 때마다 여기서 갈 곳이 없어 쓸쓸했는데 다행히 네 엄마 고향이 안성이어서 명절마다 내려가니 그게 참 행복하더라. 나도 여기서 고향이 생긴 것 같아서 뿌듯했고..."라고 하셨다.


자리에 누워 가쁜 숨을 고르시는 아빠를 보며 생각한다.

아빠, 최선을 다해 지금까지 견디고 살아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들의 헌신적이고 용감한 아빠이자 자랑스러운 할아버지가 되어주셔 감사해요.   
아빠가 계신 고향이 있어 저도 좋아요.

집을 나설 때 누워 계신 아빠의 앙상한 몸을 힘껏 안아드린다. 아빠는 가녀린 손으로 맏딸의  등을 토닥여 주신다. 아빠 손의 따뜻한 온기 속에서 어느덧 나는 아빠와 함께 떠들고 웃던 어린 소녀로 돌아간다.

아빠와의 마지막 가족사진을 남겨서 감사하다.

아직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어 감사하다.

내가  찾아 올 고향, 부모님의 집이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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