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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Apr 12. 2023

아이가 된 아빠

아빠와 식사를 하며

노환으로 팔다리를 거의 못쓰고 누워만 지내시는 아빠가 이제 혼자 식사하시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누군가 앞에서 입으로 떠먹여 줘야 하는 아빠는 이제 어린아이로 돌아가셨다.  아빠를 돌보느라 몸이 아프신 엄마를 대신해 친정집에 가서 아빠의 식사를 먹여 드렸다. 싸간 나물들과 반숙한 계란프라이를 얹어서 입맛을 돋울만한 비빔밥을 만들어 된장국과 함께 밥상을 차렸다.


한 입씩 아빠 입에 떠 넣어 드리는데, 아빠는 " 더..더"를 연발하시며 맛나게 드신다. 오래전 아들에게 밥을 떠먹이던 생각이 났다. 숨을 고르며 오물조물 밥을 먹던 아이들의 통통한 뺨과 입....

그때 내 앞에 있던  아이들 대신 이제는 주름지고 핼쑥한 아빠의 모습이 있다.


숨을 고르며 찬찬히 밥을 씹어 드시는 아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예전에 우리 아빠가 나를 이렇게 밥을 먹여 주셨겠지. 입 짧고, 깡마른  어린 맏딸이 세상으로 당당히 나가서 살도록  목발을 짚고 부엌에서 고기를 다져 햄버거를 만드시고, 어떤 날은 어묵을 잔뜩 넣어서 어묵탕을 끓여 주셨던 아빠의 모습이 생각난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그렇게 음식을 차려 주시곤 했던 아빠가 언제까지나 그 모습 그대로 건강하게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다.


그러나 그때의 단발머리 소녀가 이제 아들 셋을 거느리고 늘어가는 주름을 걱정하는 엄마가 된 것처럼, 그때 정정했던 아빠는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노인이 되었다. 그때 아빠가 딸을 위해 정성껏 밥을 차려 주셨던 것처럼, 이제는 아빠의 딸이 밥을 차리고 수저를 들어 한 입씩 입에 넣어 드린다.


인생은 이렇게 돌고 도는 건가 보다. 언젠가는 나의 아이들이 엄마의 곁에서 이렇게 도와줄 날이 올까?

그날이 오기 전에 아이들의 곁을 떠나는 게 돕는 길일 것 같다. 살기에도 바쁜 아이들이 엄마를 돌보느라 힘들어하는 모습은 차마 보기 힘들 것이기에.

남편과 함께 건강하게  욕심 없이 노후를 평안히 지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실 때, 조용히 떠나고 싶다.


아빠모습을 세상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을 때, 그간 못해준 것만 생각나서 후회가 밀려와 가슴을 후빌까 봐 나는 갈색 그을린 듯한 피부, 스산한 주름이 움푹 패인 눈가, 뼈가 튀어 나올 정도로 야윈 손등, 말씀하시며 숨차하시는 가쁜 숨소리까지 하나하나 기억에 저장한다


아빠가 아이가 돼서 예전 받았던 사랑을 갚을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그 사랑을 깊을 시간이 부족해 늘 미안하다. 일상에 바쁜 내가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딸을 두고 도맡아서 고생하시는 엄마께도 미안한 마음만 한가득이다.  아빠를 돌보시느라 엄마의 건강도 예전같지 않고 자주 아프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부족한  자식은 뒤늦은 후회와 자책에 몸을 떤다. 그저 할  수 있는 최대한 곁을 지켜드리겠노라 속으로 다짐할 따름이다.


오늘 하루도 우리가 살아있음에.... 같은 하늘  아래에서 마주 보며 삶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매일의 평안한 일상이야말로 삶이 주는 가장 찬란한 기적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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