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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Apr 25. 2023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차라리 나의 선택은

매주 금요일마다 아빠를 목욕시켜 드리는 도우미가 온다. 아빠는 아저씨들이 목욕탕으로 이동시켜 주시면 혼자서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를 힘겹게 가누며 목욕을 하신다.  나나 동생은 밖에서  지키고 있다가 욕 후 아빠를 방으로 끌어서 옮긴다.


근력이 많이 떨어진 아빠지만, 우리가  혼자서 방까지 끌어서 모시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팔다리를 못 가눠서 한 번 목욕탕 들어갈 때마다 보통 3-4시간씩 온수를 틀어놓고 씻으시는 아빠를 도우미 아저씨들이 계속 기다릴 수가 없어 그 이후는 온전히 가족들의 몫이다.


아저씨나 딸들이  씻겨 드린다고 해도 아빠는 맨몸을 보이기 싫어 한사코 거절하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빠가 목욕하시는 동안에는 목욕탕 문 앞에서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마냥 대기한다. 그동안 목욕을 하시면서 여러 고비를 넘겼다. 목욕하다 의식을 잃은 뒤 심한 몸살로 수 일간 앓으셨고, 몸을 가누지 못해서 욕조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혀 눈가가 심하게 찢어진 적도 있었다. 목욕하는 날마다 아빠의 몸에는 크고 작은 짓붉거나 푸른 상처들이 늘어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왜 그토록  목욕을 원하실까? 아마도 당신 몸에서 나는 특유의 체취를 없애서 가족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고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시느라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할 따름이다.

거동을 못하고 자리에 오래 누워 지내시는 분들에게서는 특유의 체취가 있다. 아빠는 당신에게서 나는 그 체취를 못 견뎌하셨다. 이전에도 깔끔한 성격으로 매일 씻으시던 아빠이기에 일주일 한 번 하는 목욕도 당신에게는 많이 부족할 것이다. 그래서 매일 누워만 계시지만 아빠는 냄새가 전혀 안 난다. 오전에 오시는 요양보호사님이 자주 패드 등을 갈아 주시기도 하지만 아빠도 나름 깨끗하게 자신을 단장하느라 애쓰시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아빠가 목욕탕에서 나오시지 못했다. 밖에서 4시간 넘게 기다리던 동생이 나에게 다급하게 나에게 sos를 쳤다. 집이 멀어 단숨에 갈 수 없던 나는 부근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외근 중이었던 남편이 아빠에게 한달음에 달려가 간신히 목욕탕에서 끌어내 방으로 모셨다고 한다.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가쁜 숨을 들이키며 돌아온 남편은 아빠를 옮기느라 나름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날 밤, 남편이 나지막이 한 말이 귓가에 아프게 박혔다.

"아버님이 아무래도 단명하려 하시는 것 같아."

남편의 말에 마땅히  응수할 말을 끝내 찾지 못한 채,

그 밤을 온통 하얗게 뒤척이며 샜다.

다음 날, 엄마가 교회분들과 모처럼 나들이 약속이 잡혀서 내가 아빠를 돌보기 위해 친정으로 갔다.

식사 후 아이처럼 고단한 숨을 가릉가릉 가누며 주무시는 아빠.


오후 늦게서야  촉촉하게 충혈된  눈으로 간신히 잠에서 깬 아빠. 늘 누워만 계셔 소화가 안된다며 아빠는 최소한의 끼니만 드시고, 간식도 좀처럼 드시지 않는다. 스스로 그렇게 곡기를 끊으며 죽음에 근접해 가시는 걸까.


"아빠, 많이 힘드시지요?"

"응. 몸의 기능이 하나씩 떨어지는 게 느껴져 이렇게 살아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드네. 차라리 한 번에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이렇게 죽음을 향해 가는 건 너무 잔인하고 지친다. 어제도 목욕하다가 몸에 입은 상처를 봐라. 몸이 꼼짝을 할 수 없어 그냥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데 나는 그 순간 이대로 그냥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몸에 아직도 선혈처럼 곳곳에 박혀있는 상처들이 그 시간 동안의 절망적인 상황을 선명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거듭 물었다.

"아빠, 그래도 나쁜 맘먹으면 안 돼요. 사는 날까지는 사셔야지요. 더 아픈 분들도 있잖아요."

아빠는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정신은 말짱한데 육신의 감옥에 갇힌 느낌이다. 꼼짝달싹할 수 없는 몸이라 더 비참하다. 차라리 내가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면 아무 생각이 없어 편할 텐데.... 멀쩡한 정신에 육체는 이 모양이니.... 하루속히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런데 그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내가 팔다리를 쓸 수 있어야 스스로 죽기라도 하지."


아빠의 온전한 정신이 팔다리를 전혀 가누지 못하는 육체의 절대 한계에 갇혀 있다. 감옥이라고 칭해진

그 절대한계 속에서 아빠는 삶의 모든 의욕을 잃어간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예전에 안락사 문제를 다룬 영화 '미비포유' 가 떠올랐다.  주인공 남자는 자신을 돌보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녀의 삶에 짐을 지우기 싫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죽음을 선택한 그가 역설적을 그녀에게 남긴 말은 "Just live.'


영화를 보면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남자의 심정을 아빠를 보면서야 마침내  이해해 간다. 그러나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짐이 될 때, 나조차도 그 짐을 감당 못해  생을 끝내고자 할 때,  죽음의 선택지는 실상 거의 없다.


그래서 아빠가 하셨던 말씀이 귓가에 오래도록 맴돌았다.

"내가 이렇게 남아서 가족들에게 더 짐이 되면 어떡하니? 적당한 때에 모두 편하도록 내가  가줘야지."



 일전 읽은 응급의학과에서 일하는 남궁인 작가의 칼럼 한 구절이  떠올랐다.

죽음은 어느 순간 불시에 찾아오고 우리는 막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매 순간 치열하게 사랑하는 것이 답일까. 그 또한 완벽한 정답이 아닐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표현되지 않고 우리는 마지막을 모른다.  모든 순간을 빠짐없이 사랑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운명을 피할 수 없어 원천적으로 삶은 슬프고 치명적이다. ㅡ남궁인ㅡ


불시에 찾아와서 막을 수 없고 선택도 불가능한 죽음. 그 죽음의 형태를 영화처럼  선택하는 게  불가능하기에 나는 치명적인 삶을 차라리 뜨겁게 살자고 다짐한다.


아빠가 힘겹지만 버텨 주시고,   내가  최선을 다해  섬기는 치열한 삶.   그것이 결국 우리의 죽음도 이별도 결정함을 믿는다.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건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이기에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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